10. 영혼의 저울, 인간을 재는 올바른 척도

by 이호창

제10장: 영혼의 저울, 인간을 재는 올바른 척도


10. Nu judeca oamenii după greutatea lor, după puterea lor, după averea lor, după frumuseţea lor sau după râvna lor, căci şi unul şi altul a lăsat din ceva pentru a creşte în altceva. Cel bogat este sărac în linişte, cel tare este slab pentru altul şi cel slab are tăria lui ascunsă. Cum firea lucrurilor este mişcătoare, asemeni este şi omul. Ce dă valoare unei unelte, trebuinţa sau frumuseţea? Duce un om mai mult decât boul? E mai bogat vreunul ca pământul? Doar cunoaşterea şi înţelepciunea îl ridică pe om peste dobitoace. Şi degeaba ai cunoaştere, dacă ea nu este lămurită de vreme.


10. "사람을 그의 무게나 힘, 재산이나 아름다움, 혹은 열심으로 판단하지 말라. 이 사람이 무언가를 얻었다면, 다른 무언가를 내어주었기 때문이니라. 부유한 자는 고요함에 가난하고, 강한 자는 다른 이에겐 약하며, 약한 자에게도 그만의 숨겨진 강인함이 있느니라. 만물의 본성이 움직이는 것처럼, 사람 또한 그러하니라. 무엇이 도구에 가치를 부여하는가, 쓸모인가 아름다움인가? 사람이 소보다 짐을 더 많이 지는가? 그 누가 대지보다 더 부유하단 말인가? 오직 앎 (cunoaștere)과 지혜 (înţelepciune)만이 사람을 짐승들 위로 들어 올리느니라. 그리고 그 앎조차 시간에 의해 맑게 걸러지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느니라."







오, 존재의 저울을 손에 들고 끊임없이 가치를 재려는 나의 자녀들아.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닦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웠느니라. 그러나 이 모든 지혜는 너희가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그릇된 시선을 바로잡지 않는 한,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위태로울 뿐이니라. 이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 가치를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로 나아가야 하리라.


나는 기억하노라. 어느 풍성한 가을, 수확을 마친 우리 다치아 부족들이 한데 모여 축제를 열었던 그날을. 사람들은 저마다 거둔 곡식의 양을 자랑하고, 가장 힘센 자는 황소를 맨손으로 들어 보이며 환호를 받았으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모든 이의 선망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았지. 그러나 나는 보았노라. 그 환호와 선망의 이면에 드리워진 깊은 그림자를. 서로를 비교하는 눈빛 속에서, 어느새 영혼의 저울은 기울어지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는 잊혀 가고 있었노라. 나는 그 축제의 한가운데서, 흥에 겨운 이들을 잠시 침묵시키고, 그들의 손에 들린 화려한 잔이 아닌, 그들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게 하기 위해, 나의 열 번째 가르침을 시작했느니라.


영혼의 대차대조표, 얻음과 잃음의 법칙


나의 가르침은 너희가 세상을 판단하는 가장 흔하고도 가장 피상적인 잣대들을 부수는 것으로 시작하노라. “사람을 그의 무게 (육체적 힘)나 힘, 재산이나 아름다움, 혹은 열심 (세상살이의 수완)으로 판단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가 보는 것은 한쪽 면의 화려한 숫자일 뿐, 그 이면에 기록된 반대편의 숫자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나는 그 이유를 분명히 밝혔노라. “이 사람이 무언가를 얻었다면, 다른 무언가를 내어주었기 때문이니라.” 이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공정하고도 냉정한 법칙, 바로 ‘보상의 법칙 (Law of Compensation)’이니라.


“부유한 자는 고요함에 가난하고, 강한 자는 다른 이에겐 약하며, 약한 자에게도 그만의 숨겨진 강인함이 있다.” 이 말의 깊은 뜻을 헤아려보라. 물질적 부를 쌓는 데 일생을 바친 영혼은, 종종 내면의 평화와 고요함을 누릴 시간을 잃어버렸기에, 그 영혼의 창고는 텅 비어 있느니라. 이것이 바로 ‘부유한 자의 가난’이니라. 남을 압도하는 물리적인 힘을 자랑하는 자는, 종종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부드러움이나 섬세한 감수성에는 무디기 마련이니, 이것이 바로 ‘강한 자의 약함’이니라. 반대로, 세상의 눈에는 연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일지라도, 그 안에는 오랜 고통을 묵묵히 견뎌낸 강인한 인내심이나, 다른 이를 깊이 이해하는 자비의 힘, 혹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분야에서의 놀라운 재능이 숨겨져 있는 법이니, 이것이 바로 ‘약한 자의 강함’이니라.


너희 시대의 미국 땅에서 태어난 현자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은 그의 저서 『보상』에서 이 우주적 법칙을 깊이 통찰하였노라. 그는 “모든 것에는 세금이 붙는다”고 말하며, 우리가 얻는 모든 이점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르며, 우리가 겪는 모든 약점 속에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숨겨져 있다고 설파했다. 동양의 지혜인 태극 (太極)의 상징 또한, 밝은 양 (陽)의 영역 안에 어두운 음 (陰)의 씨앗이 있고, 어두운 음의 영역 안에 밝은 양의 씨앗이 있는 모습을 통해, 빛과 어둠, 강함과 약함, 얻음과 잃음이 서로를 낳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하나의 완전한 전체를 이루고 있음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 진리를 깨닫는 자는, 더 이상 타인의 겉모습에 속아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으리라. 그는 모든 존재가 자신만의 고유한 영혼의 대차대조표를 가지고 있음을 알기에, 존중과 연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니라.


흐르는 강물처럼, 움직이는 인간의 본성


이제 나의 가르침은 너희의 또 다른 오류, 즉 인간을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 보려는 어리석음을 꾸짖노라. “만물의 본성이 움직이는 것처럼, 사람 또한 그러하니라.” 너희는 한 번 누군가를 ‘부자’나 ‘힘센 자’, 혹은 ‘어리석은 자’로 규정하면, 그가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구나. 그러나 어제의 부자가 오늘의 거지가 되고, 어제의 강자가 내일의 약자가 되며, 어제의 어리석은 자가 내일의 현자가 되는 것이 바로 삶의 신비이자 본성이거늘.


그리스의 현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으니, 강물이 매 순간 새로운 물로 채워지며 끊임없이 변화하듯, 인간의 존재 또한 매 순간 새로운 경험과 생각, 감정으로 변화하는 역동적인 과정 그 자체이니라. 너희가 지금 판단하는 그 사람은, 사실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며, 내일의 그 사람도 아닐진대, 어찌 감히 너희는 한 장의 그림자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재단하려 하는가.


나는 너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노라. “무엇이 도구에 가치를 부여하는가, 쓸모인가 아름다움인가?” 망치는 못을 박을 때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조각상은 우리의 영혼에 기쁨과 영감을 줄 때 가치가 있느니라. 망치에게 아름다움을 탓하거나, 조각상에게 쓸모없음을 탓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인간의 가치 또한 이와 같아서, 하나의 잣대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각자의 고유한 역할과 아름다움 속에서 그 가치를 발하는 것이니라.


“사람이 소보다 짐을 더 많이 지는가? 그 누가 대지보다 더 부유하단 말인가?” 이 질문은 너희 인간 중심적인 오만함을 깨뜨리기 위한 나의 회초리였노라. 너희가 그토록 자랑하는 물리적인 힘이나 물질적인 부는, 저 말 못하는 짐승의 끈기나 발밑의 흙이 품고 있는 무한한 생명력과 풍요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만약 너희가 인간의 가치를 그런 것들에서만 찾는다면, 너희는 영원히 짐승과 대지의 발밑에 머무르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으리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앎과 지혜의 날개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을 이토록 존엄한 존재로 만드는가? 무엇이 우리를 저 들판의 짐승들과 근본적으로 구별 짓는가? 나의 가르침은 그 답을 분명히 하고 있노라. “오직 앎 (cunoaşterea)과 지혜 (înţelepciune)만이 사람을 짐승들 위로 들어 올리느니라.”


짐승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어진 본능의 프로그램에 따라 살아가지만, 인간은 ‘앎’을 통해 자신의 본능을 넘어서고, 자신과 세계의 비밀을 탐구하며, 더 나은 삶을 향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니라. 앎은 너희에게 불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추위와 어둠을 이기게 하고, 별의 움직임을 읽어 드넓은 바다 위에서 길을 찾게 하며, 과거의 역사를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여 공감하게 하노라. 이것이 바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는 첫 번째 위대한 날개이니라.


그러나 앎만으로는 부족하니, 그 앎을 완성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두 번째 날개가 바로 ‘지혜’이니라. 이 둘의 차이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노라. 앎이 ‘무엇’을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그것을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사용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라. 앎이 세상에 대한 수많은 정보와 사실을 쌓는 것이라면, 지혜는 그 정보들 사이의 관계를 꿰뚫어 보고, 그 모든 것을 사랑과 자비의 관점에서 통합하는 힘이니라. 앎이 분리하고 분석하는 날카로운 칼이라면, 지혜는 모든 것을 끌어안고 치유하는 따뜻한 손과 같으니라.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을 가졌으면서도 교만하고 불행하며, 자신의 지식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그들이 앎의 날개는 가졌으되, 지혜의 날개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고대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최고의 경구는 “모든 것을 알라”가 아니라 “너 자신을 알라 (Gnōthi seauton)”였음을 기억하라. 이는 모든 앎의 궁극적인 목적이 외부 세계의 정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지혜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니라.


시간의 용광로, 지혜의 연금술


이제 나의 가르침은 가장 깊고도 엄숙한 비의에 이르노라. 그렇다면 이 지혜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그리고 그 앎조차 시간에 의해 맑게 걸러지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느니라.” 이것은 앎이 지혜로 변성되는 연금술의 마지막 비밀, 바로 ‘시간’이라는 용광로에 대한 가르침이니라.


갓 채굴한 철광석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듯, 갓 머릿속에 집어넣은 앎 또한 그 자체로는 설익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한 날것의 상태에 불과하니라. 그 철광석이 시간이라는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녹아내려 불순물이 모두 타서 걸러지고, 경험이라는 무거운 망치로 수없이 두들겨져 단련될 때, 비로소 강하고 유연하며 쓸모 있는 강철, 즉 지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라.


‘시간에 의해 맑게 걸러진다 (lămurită de vreme)’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너희가 책에서 배운 추상적인 앎을, 너희의 실제 삶이라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적용하고, 처절하게 실패하고, 가슴 아프게 고통받으며, 그 뼈저린 과정 속에서 마침내 살아있는 깨달음, 즉 체화된 지식을 얻는 것을 의미하노라. 그것은 젊은 날의 섣부르고 이분법적인 판단과 뜨거운 열정이,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차츰 식어가고, 그 자리에 모든 것을 끌어안는 너그러움과 복잡성을 이해하는 깊은 통찰이 들어서는 과정이니라.


이슬람의 신비주의 수피 (Sufi) 시인 루미 (Rumi)는 “상처는 빛이 들어오는 곳”이라고 노래했으니, 이 또한 삶의 고통과 시련이라는 시간을 통해서만 영혼이 성숙하고 지혜가 깊어진다는 진리를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라.


그러니 젊은이여, 너의 얕은 앎을 성급히 자랑하지 말고, 더 많은 경험의 불 속으로 용감히 뛰어들어라. 노인이여, 너의 깊은 주름 속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과 그 안에 잠든 지혜를 소중히 여기고 다음 세대와 나누라. 진정한 지혜는 가장 많이 아는 자가 아니라, 가장 오래 사랑하고, 가장 깊이 고뇌했으며, 가장 많이 용서한 자의 온화한 눈빛 속에서 조용히 빛나는 법이니라.


그대, 영혼의 가치를 감정하는 자가 되라


오, 세월을 건너 나의 가르침을 듣는 자녀들아. 이제 너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알았으리라.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아름답고 화려한 상자의 겉만 보고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는 어리석음과 같으며, 강물의 한 순간만을 보고 그 강의 전체를 안다고 착각하는 오만함과 같으니라.


너희 자신과 타인을, 이제 피상적인 상인이 아니라 영혼의 가치를 감정하는 깊은 눈을 가진 자가 되어 바라보라. 그가 무엇을 얻었는지를 보려거든, 그 과정에서 그가 무엇을 잃었는지도 함께 보아야 하느니. 그의 눈부신 강함에 감탄하려거든, 그 이면에 숨겨진 그의 연약함과 고독도 따뜻하게 보듬으라. 그의 현란한 앎이 깊어 보이거든, 그 앎이 과연 시간과 고통의 시련을 견뎌낸 진짜 지혜인지를, 아니면 그저 빌려온 지식의 껍데기인지를 고요한 마음으로 살펴보라.


나는 잘목시스라. 2,500년 전 나의 백성들이 서로를 물질의 잣대로 재며 영혼의 눈이 멀어가는 것을 경계했듯, 오늘 너희가 서로를 시험 점수와 재산 목록, 사회적 지위라는 차가운 기준으로 판단하며 영혼의 가치를 잃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노라.


가서, 너희 자신과 타인의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모순적이기까지 한 그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라. 그리고 무엇보다,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말고, 너희의 삶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로 삼아, 그 안에서 너희의 모든 경험을 맑게 걸러내어, 마침내 너희 존재 자체가 하나의 깊고 온화하며, 다른 이에게 빛을 주는 지혜가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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