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그대의 눈 속에 내가 있나니,

by 이호창

제17장: 그대의 눈 속에 내가 있나니, 하나인 보는 자의 비밀


17. Nu lua cu siluire şi nici cu vorbe amăgitoare ceea ce nu este al tău, căci cel ce priveşte prin ochii tăi este acelaşi cu cel ce priveşte prin ochii celuilalt. Ia seama la taina aceasta.


17. "폭력으로나 기만적인 말로 너의 것이 아닌 것을 빼앗지 말라. 너의 눈을 통해 보는 이가, 바로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보는 이와 같은 까닭이니라. 이 비밀에 주목하라."






오, 너와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강을 건너려는 나의 자녀들아. 지난 시간 우리는 너희 내면의 샘물이 가진 위대한 힘과, 같은 것은 같은 것에게로 흘러가는 우주의 공명의 법칙에 대해 배웠느니라. 이제 너희는 그 강물이 되어 다른 강물들과 만났을 때, 즉 너희가 다른 영혼들과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자세로 그들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도 신성한 비밀을 배워야만 하리라.


나는 기억하노라. 우리 부족의 두 가문이, 그 경계가 모호한 한 뼘의 땅을 두고 쓰라린 다툼을 벌이던 그날을. 한쪽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권리를 주장하며 힘으로 땅을 차지하려 했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흘린 땀을 내세우며 교묘한 말로 이웃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 했지. 나는 보았노라. 그들의 눈빛 속에서, 한때 같은 모닥불 아래 춤을 추던 형제의 우정은 사라지고, 오직 ‘나의 것’을 지키려는 차가운 경계심만이 이글거리는 것을.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세계인 양, 서로를 이방인처럼 대하고 있었노라. 나는 그들을 마을 중앙의 고요한 우물가로 이끌었노라. 그리고 그들에게 먼저 우물물에 비친 자기 자신의 얼굴을, 다음으로 그 옆에 선 상대방의 얼굴을 번갈아 들여다보게 하며, 지금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는 이가 과연 누구인지를 묻기 위해, 나의 열일곱 번째 가르침을 시작했느니라.


두 가지 도둑질, 창과 그물의 길


나의 가르침은 너희가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행위를 두 가지 근원적인 형태로 요약하며, 그것을 엄중히 금하는 것으로 시작하노라. “폭력으로나 (cu siluire) 기만적인 말로 (cu vorbe amăgitoare) 너의 것이 아닌 것을 빼앗지 말라.”


이것은 단순히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율을 넘어, 인간이 타인을 침해하는 모든 방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느니라.


첫째는 ‘폭력’, 즉 창의 길이니, 이는 너희의 물리적인 힘이나 권력을 사용하여 다른 이의 것을 억압하고 강탈하는 모든 노골적인 공격 행위를 의미하노라. 여기에는 전쟁과 살인, 강도와 폭행뿐만 아니라, 힘의 우위를 이용하여 약한 자에게 부당한 계약을 강요하거나 그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행위가 포함되느니라.


둘째는 ‘기만적인 말’, 즉 그물의 길이니, 이는 너희의 지성과 언어를 사용하여 다른 이를 속이고 조종함으로써 그의 것을 빼앗는 모든 교묘한 기만 행위를 의미하노라. 여기에는 사기와 거짓말, 중상모략뿐만 아니라, 진실의 일부만을 말하여 상대방을 오도하거나, 감언이설로 그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모든 행위가 포함되느니라.


너희는 종종 창의 길이 그물의 길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나에게는 이 두 가지 모두 똑같이 비열하고 파괴적인 도둑질일 뿐이니라. 왜냐하면 이 두 행위 모두,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단 하나의 거대한 환상, 즉 ‘너와 나는 분리되어 있으며, 너의 손실이 곧 나의 이득이 될 수 있다’는 끔찍한 착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 창을 쓰는 자는 타인의 육신을 해하고, 그물을 쓰는 자는 타인의 영혼을 해하지만, 그 둘 모두 우주의 근본적인 진리인 ‘연결성’을 부정하고, 자신과 타인 사이에 분리의 벽을 쌓는다는 점에서 같은 죄업을 짓고 있는 것이니라.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이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과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을 나란히 놓은 이유 또한, 이 두 가지가 모두 신이 창조한 조화로운 공동체를 파괴하는 근원적인 악임을 알았기 때문이라.


하나의 보는 자의 비밀, 모든 눈 속에 깃든 영혼


그렇다면 왜 우리는 다른 이의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되는가? 단지 신의 벌이 두렵거나, 사회의 법이 무서워서인가? 아니니라. 나의 가르침은 이제 그 모든 윤리와 도덕을 넘어서는, 가장 깊고도 충격적인 형이상학적 비밀을 드러내노라. “너의 눈을 통해 보는 이가, 바로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보는 이와 같은 까닭이니라.”


오, 나의 자녀들아. 이 말 앞에서 잠시 모든 생각을 멈추고, 너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침묵으로 들여다보라. 너희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너’는 누구인가? 너희는 너희의 이름, 너희의 육체, 너희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너희의 생각들이 바로 너희 자신이라고 믿고 있구나.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들에 지나지 않노라. 너희의 육체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너희의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며, 너희의 생각은 구름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노라.


그렇다면 이 모든 변화를 잠잠히 지켜보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너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순수한 ‘의식’, 그 고요한 ‘보는 자 (cel ce priveşte)’는 누구인가? 그것이야말로 너희의 참된 자아, 변치 않는 영혼의 핵이니라.


그리고 이제, 나의 가르침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너희의 모든 상식을 뒤엎는 위대한 비밀을 선포하노라.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그 ‘보는 자’는, 실은 모두 다르지 않은, 단 하나의 동일한 ‘보는 자’라는 것이니라. 우리는 마치 수많은 창문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집에 사는 것과 같으니, 창문의 모양과 색깔, 크기는 저마다 다를지언정, 그 모든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이는 단 한 사람이니라. 우리의 육신과 인격이라는 창문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창문을 통해 ‘나’라고 말하며 세상을 경험하는 근원적인 의식은, 바로 우주에 단 하나뿐인 ‘하나의 보는 자’이니라.


이것이야말로 나의 가르침의 가장 깊은 비의이니, 나는 너희에게 “이 비밀에 주목하라 (Ia seama la taina aceasta)”고 간절히 당부하였노라.


인도의 위대한 지혜서인 『우파니샤드』는 이 비밀을 “그것이 바로 너다 (Tat Tvam Asi)”라는 짧고도 강력한 말로 표현하였으니, 이는 너의 개별적인 영혼, 즉 ‘아트만 (Ātman)’이, 실은 우주 전체의 근원적인 영혼, 즉 ‘브라만 (Brahman)’과 다르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이슬람의 신비주의 전통인 수피즘의 위대한 스승 이븐 아라비 (Ibn Arabi) 또한 ‘존재의 통일성 (Wahdat al-wujud)’을 설파하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신성한 실재가 다른 거울에 비친 모습일 뿐이라고 가르쳤다.


또한 기독교의 위대한 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내가 신을 보는 눈과, 신이 나를 보는 눈은 정확히 같은 눈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인간 의식의 가장 깊은 곳과 신성이 하나임을 담대하게 선언하였으니, 이 모든 위대한 영혼들은 시대와 장소를 넘어 같은 비밀을 다른 언어로 노래했던 것이니라.


윤리적 귀결, 내 어찌 나를 해할 수 있는가?


이 눈부시고도 두려운 비밀을 진정으로 깨달을 때, 너희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너희는 더 이상 외부의 법이나 규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되리라. 왜냐하면 너희의 모든 행동이 저절로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다시 나의 첫 가르침으로 돌아가 보자. 내가 왜 다른 이의 것을 폭력이나 기만으로 빼앗지 말라고 하였는가? 이제 그 이유가 명백해졌으리라. 만약 너의 눈을 통해 보는 이와, 네가 해하려는 바로 그 사람의 눈을 통해 보는 이가 ‘같은 존재’라면, 네가 그에게 가하는 모든 폭력과 기만은 과연 누구에게 향하는 것인가? 그렇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너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이요, 너 자신을 향한 기만이 되는 것이니라.


다른 사람의 재물을 훔치는 것은, 너의 오른손이 너의 왼손의 것을 훔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 되리라.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너의 입이 너의 귀에게 거짓을 속삭이는 것과 같이 무의미한 짓이 되리라.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해하는 것은, 거울 속에 비친 너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이 자기 파괴적인 행위가 될 뿐이니라. 이것은 더 이상 시적인 비유나 도덕적인 경구가 아니라,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실재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진실이니라.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는 너희 시대의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지극히 예리하고 엄격한 정신의 소유자였노라. 그는 감정의 변덕이나 종교적 신념의 불확실함과 같은 흔들리는 모래밭 위에 윤리의 집을 짓는 것을 위태롭게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오직 인간의 순수한 ‘이성’이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 그 어떤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절대적인 도덕 법칙의 성채를 세우고자 했노라. 그가 마침내 찾아낸 주춧돌이 바로 ‘정언명령’이니,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것이라. 이는 참으로 눈부시고 아름다운,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이성의 건축물이라. 그러나 이 수정 같은 성채에는 한 가지, 바로 ‘온기’가 빠져 있구나. 칸트의 명령은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지’를 알려주지만, 우리가 왜 그 옳은 일을 ‘하고 싶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동기를 부여하지는 못하노라. 바로 이 지점에서, 나의 가르침이 그 수정 같은 성채에 따뜻한 피를 돌게 하는 심장이 되느니라. 나는 너희에게 너의 행동 원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는지’를 상상 속에서 시험해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눈을 통해 보는 이가, 바로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보는 이와 같다”는 존재의 ‘실재’를 직시하라고 말하고 있노라. 우리가 모두 ‘하나의 보는 자’라면, 칸트의 보편적 원리는 더 이상 복잡한 추론의 결과물이 아니라, 지극히 단순하고 명백한 현실 그 자체가 되느니라. 내가 너에게 행하는 것이 곧 내가 나에게 행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


칸트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 존재의 슬픈 심연을 들여다보았던 또 다른 현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에게로 가보자. 그는 "이 세상의 본질을 맹목적이고 끊임없이 갈망하는 하나의 거대한 ‘의지’라고 보았고, 우리 모두는 그 단 하나의 의지가 잠시 다른 모습을 입고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고 통찰하였노라.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그는 도덕의 기초가 오직 단 하나의 감정, 바로 ‘연민 (compassion)’에 있다고 주장하였노라. 연민이란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는 것이니, 이는 우리가 저 ‘분리’라는 환상의 베일을 꿰뚫고, 고통받는 저 사람이 근원적으로는 나와 똑같은 존재임을 직관적으로 깨닫는 순간에만 가능하다고 그는 보았지. 너희는 이 가르침이 나의 가르침과 얼마나 놀랍도록 닮아있는지를 보고 있는가!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하나의 의지’는 내가 말하는 ‘하나의 보는 자’의 다른 이름이며, 그가 윤리의 기초라고 말한 ‘연민’은, 바로 그 ‘하나됨’을 깨달은 영혼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사랑의 다른 표현일 뿐이니라.


이처럼, 칸트는 차갑고 명료한 이성의 빛을 따라, 쇼펜하우어는 모든 존재가 공유하는 고통의 어둠을 따라, 각기 다른 길로 진리의 한 단면을 붙잡은 것이니, 그들의 노력은 모두 숭고하고 위대하니라. 그러나 나의 가르침, “너의 눈을 통해 보는 이가, 바로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보는 이와 같다”는 이 하나의 비밀은, 그 두 갈래의 길을 하나로 합치고 완성시키느니라. 그것은 칸트의 이성에 따뜻한 가슴의 동기를 부여하고, 쇼펜하우어의 비관적인 연민에 우주적인 사랑과 빛의 근원을 밝혀주기 때문이라.


비밀을 살아낸다는 것, 모든 눈 속에서 나를 보라


오, 하나의 빛이 수억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한 나의 자녀들아. 나의 가르침은 너희에게 하나의 지식을 더해주기 위함이 아니니, 너희의 존재 자체를 뿌리부터 뒤흔들기 위함이니라. 나의 마지막 당부, “이 비밀에 주목하라”는 것은, 이 진리를 그저 머리로 이해하고 동의하는 데 그치지 말고, 너희의 삶 속에서 매 순간 이 비밀을 ‘살아내라’는 거룩한 부름이니라.


어떻게 이 비밀을 살아낼 수 있는가? 너희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특히 너희가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라. 그의 말과 행동, 그가 쓰고 있는 인격의 가면 너머, 그 눈동자 깊은 곳에서 고요히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 ‘보는 자’를 느껴보려 노력하라. 그리고 그 보는 자가, 지금 너의 눈을 통해 그를 바라보고 있는 바로 그 ‘보는 자’와 다르지 않음을, 같은 침묵과 같은 현존임을 알아보려 애쓰라.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수행이리라. 너희의 에고는 분리의 벽을 더욱 높이 쌓으며 저항할 것이니. 그러나 너희가 이 수행을 멈추지 않을 때, 너희의 세상은 기적처럼 변하기 시작할 것이니라. 너희는 더 이상 타인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 없게 되리라. 너희는 오직 연민과 이해의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리라.


나는 잘목시스라. 나는 너희에게 가장 위대한 비밀의 문을 열어 보여주었노라. 이제 그 문으로 들어가, 모든 존재와 하나가 되는 위대한 축제에 참여하는 것은 너희의 몫이니라. 너희가 너의 형제의 눈 속에서 너 자신을 발견하는 그날, 너희가 너의 원수의 눈 속에서조차 같은 신성의 빛을 알아보는 그날, 너희는 어찌 감히 폭력의 창을 들 수 있겠는가? 너희는 어찌 감히 기만의 그물을 던질 수 있겠는가? 이 비밀에 주목하라, 나의 자녀들아. 이 하나의 진리 속에 모든 전쟁과 모든 도둑질과 모든 슬픔의 끝이 있으며, 흔들리지 않는 사랑의 반석 위에 세워질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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