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시간의 정원사, 서두르지 않는 지혜

by 이호창

제18장: 시간의 정원사, 서두르지 않는 지혜


18. Nu grăbi nici o lucrare căci trasul de ramuri loveşte înapoi. Fructul copt este uşor de luat, cel necopt este greu de luat şi gustul e neplăcut. Nu te grăbi deci să aduni ce este înainte de vreme, căci îţi va amărî sufletul. Cum creşte cadrul, aşa creşte şi stinghia şi cum creşte roata aşa creşte şi ispita.


"어떤 일도 서두르지 말라. 가지를 억지로 당기면 되튀어와 너를 치기 때문이라. 잘 익은 열매는 따기 쉽지만, 덜 익은 열매는 따기 어렵고 그 맛 또한 쓰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에 거두려 서두르지 말라. 너의 영혼을 쓰라리게 할 것이니. 틀이 커짐에 따라 지지대도 자라나고, 바퀴가 커짐에 따라 유혹도 자라나느니라."







오, 삶이라는 밭을 경작하며 그 열매를 고대하는 나의 자녀들아.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너와 나 사이의 벽을 허무는 위대한 비밀에 대해 배웠느니라. 이제 너희는 그 하나됨의 진리를 가슴에 품고, 너희 자신의 삶이라는 과업을 어떻게 이루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실질적이고도 중요한 지혜를 배워야만 하리라.


나는 기억하노라. 우리 다치아 땅에 첫서리가 내리기 전, 성급한 젊은이들이 아직 설익은 과실을 따기 위해 나무에 오르던 그 소란스러운 오후를. 그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더 많은 것을 거두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열매가 채 익을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지. 나는 보았노라. 억지로 잡아당긴 가지가 부러지며 그들의 얼굴을 때리는 것을, 어렵게 딴 덜 익은 열매의 떫은맛에 그들의 얼굴이 찡그려지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마음속에 풍성한 수확의 기쁨 대신, 실망과 후회라는 쓴 뿌리가 내리는 것을. 나는 그들의 성급한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시간의 신비를 아는 늙은 나무의 침묵에 귀 기울이게 하며, 나의 열여덟 번째 가르침을 시작했느니라.


되튀어오는 가지, 서두름의 반동 법칙


나의 가르침은 너희의 모든 행위에 앞서 가장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할 경고로 시작하노라. “어떤 일도 서두르지 말라. 가지를 억지로 당기면 되튀어와 너를 치기 때문이라.” 이 비유는 단순히 물리적인 현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니, 그 안에는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 적용되는 우주의 근본적인 반동 법칙이 담겨 있느니라.


너희가 유연한 나뭇가지를 너희 쪽으로 억지로 잡아당길 때, 그 가지 안에는 너희의 힘에 저항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즉 ‘되돌아가려는 힘’이 축적되느니라. 너희가 그 가지를 놓치는 순간, 그 축적된 에너지는 너희가 가한 힘과 똑같은 크기로, 그러나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되튀어와 너희를 아프게 치고야 마노라.


너희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과업 또한 이와 같으니라. 너희가 어떤 일을 그 본래의 속도와 리듬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밀어붙일 때, 그 일의 과정 속에는 반드시 긴장과 불균형, 그리고 부자연스러운 왜곡이라는 ‘반동의 에너지’가 쌓이게 되어 있느니라. 너희가 충분한 기초 공사 없이 성급하게 쌓아 올린 성벽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져내려 너희를 덮칠 것이요, 충분한 이해와 신뢰 없이 서둘러 맺은 인간관계는, 사소한 오해에도 쉽게 끊어져 너희의 마음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며, 충분한 숙고와 성찰 없이 조급하게 내린 중요한 결정은, 훗날 예기치 못한 파국이 되어 너희의 삶을 덮칠 것이니, 이 모든 것이 바로 되튀어와 너를 치는 가지의 반동이니라.


동양의 현자 노자는 이 지혜를 ‘무위 (無爲)’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노라.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태가 아니라, 억지로 행함이 없이, 사물의 본성과 우주의 거대한 흐름에 순응하여 행하는 가장 높은 차원의 행위이니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계절이 순서에 따라 바뀌듯, 모든 것에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스러운 길이 있거늘, 서두름은 바로 이 길을 거슬러 억지로 강물을 끌어당기려는 어리석은 행위이니, 그 반동의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지혜로운 자는 일을 서두르지 않고, 일이 이루어질 최적의 때를 기다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는 법을 아느니라.


영혼을 쓰라리게 하는 쓴 열매


이제 나의 가르침은 이 서두름이 너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를, 너희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열매’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노라. “잘 익은 열매는 따기 쉽지만, 덜 익은 열매는 따기 어렵고 그 맛 또한 쓰다.” 그리고 나는 그 결과가 단지 입맛을 버리는 데 그치지 않음을 분명히 경고하였노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에 거두려 서두르지 말라. 너의 영혼을 쓰라리게 할 것이니 (îţi va amărî sufletul).”


잘 익은 열매는 어떠한가? 그것은 자연의 모든 은총, 즉 충분한 햇빛과 비,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여,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현한 상태이니라. 그렇기에 그것은 작은 손길에도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며(따기 쉽고), 우리에게는 달콤함과 풍부한 영양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주느니라. 그러나 덜 익은 열매는 어떠한가? 그것은 아직 자신의 때를 맞이하지 못했기에, 필사적으로 가지에 매달려 저항하며(따기 어렵고), 설사 억지로 그것을 딴다 해도 우리에게는 떫고 쓴맛과 배탈이라는 고통을 안겨줄 뿐이니라.


너희의 삶에서 거두려는 모든 성취 또한 이와 같으니라. 너희가 충분한 노력과 인내, 그리고 성숙의 시간을 거쳐 얻은 결과물은, 너희에게 깊은 만족감과 기쁨, 그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자양분을 줄 것이니, 그것이 바로 ‘잘 익은 열매’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조급함과 욕심에 눈이 멀어, 과정을 무시하고 억지로 얻어낸 결과물, 예를 들어 부정행위로 얻은 명예나, 남을 속여 얻은 재물, 혹은 충분한 연습 없이 오른 무대에서의 갈채와 같은 것들은, 설사 겉보기에는 성공처럼 보일지라도 반드시 너희의 영혼에 쓴맛을 남기게 되어 있느니라.


왜냐하면 너희의 영혼은 진실을 알기 때문이라. 너희의 영혼은 그 성공이 진정한 너희의 실력이 아니라 요행과 속임수의 결과임을 알기에,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불안과 죄책감, 그리고 언젠가 모든 것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리라. 이것이 바로 ‘영혼을 쓰라리게 하는’ 쓴맛의 정체이니라. 이 쓴맛은 너희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너희를 자기기만과 위선의 늪으로 끌어내리며, 마침내 너희가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가 버리고 마노라.


이 ‘무르익음의 때’에 대한 지혜는 비단 나만의 가르침이 아니었으니, 이스라엘 땅의 한 위대한 왕이자 철학자는,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쾌락을 맛본 뒤 그 모든 것의 덧없음을 노래하며, 시간의 신비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노라. 너희의 경전인 『전도서』에 기록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모든 것에는 정해진 시기가 있고,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 (전도서 3장 1-4절).


이 얼마나 깊고도 장엄한 통찰인가! 이 왕-철학자는 삶의 모든 경험, 즉 너희가 ‘좋다’고 여기는 것(태어남, 심음, 치료함, 웃음)과 ‘나쁘다’고 여기는 것(죽음, 뽑음, 죽임, 울음) 모두가, 우주의 거대한 시간표 안에서는 저마다의 정당하고 필연적인 ‘때’를 가지고 있음을 꿰뚫어 본 것이라. 너희는 삶에서 오직 심고 웃고 세우는 때만을 원하지만, 우주의 지혜는 때로는 뽑고 울고 허무는 과정을 통해서만 더 깊은 성장과 새로운 탄생이 가능함을 알고 있느니라.


이 위대한 노래의 비밀을 이해하기 위해, 너희는 그리스 현자들이 구분했던 두 가지 다른 시간의 얼굴을 알아야만 하리라. 하나는 ‘크로노스 (Chronos)’요,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 (Kairos)’니라.


‘크로노스’는 너희가 시계로 재는 시간이요, 달력에 기록하는 시간이니, 그것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양(量)적인 시간이니라. 이 시간의 강물은 모든 것을 늙고 닳아 없어지게 만들기에, 너희는 이 크로노스의 흐름 속에서 조급함을 느끼고, 무언가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게 되노라.


그러나 ‘카이로스’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시간이니, 그것은 시계로 잴 수 없는 질(質)적인 시간이요, ‘무르익은 순간’, ‘결정적인 때’, ‘의미 있는 찰나’를 의미하노라. 그것은 씨앗이 싹을 틔우는 바로 그 순간이요, 연인이 사랑을 고백하는 바로 그 순간이며, 장군이 공격을 명령하는 바로 그 순간이니라. 너희 시대의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사람을 떠올려보라. 수많은 파도(크로노스)가 무의미하게 밀려오고 밀려가지만, 지혜로운 파도 타는 자는 그 모든 흐름 속에서 자신이 타야 할 단 하나의 완벽한 파도(카이로스)가 언제 오는지를 고요히 기다리고 알아차리느니라.


이제 보라, 나의 자녀들아. 지혜로운 자란 바로 이 ‘카이로스’를 분별할 줄 아는 자요, 그는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의 흐름을 읽고, 자신이 행동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을 아는 자이니라.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으나, 카이로스가 도래했을 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하느니라. 반면, 어리석은 자란, 오직 ‘크로노스’의 흐름에만 쫓겨 사는 자요, 그는 시간이 흘러가 버릴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파도가 채 무르익기도 전에 성급하게 노를 젓다가 힘만 빼고 전복되거나, 정작 결정적인 파도가 왔을 때는 이미 지쳐 그것을 놓쳐버리고 마는 자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때가 이르기 전에 거두려 서두르지 말라”고 경고한 것은, 바로 이 카이로스의 지혜를 무시하고 크로노스의 채찍에 쫓겨 설익은 열매를 따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뜻이니라. 너희 영혼을 쓰라리게 하는 것은 시간의 부족이 아니라, 시간을 보는 지혜의 부족이니라.


바퀴와 유혹, 성장의 비례 법칙


이제 나의 가르침은 이 ‘서두름’의 문제를 넘어, ‘성장’ 그 자체에 내재된 더 깊고도 교묘한 위험에 대한 통찰로 나아가노라. 이것은 너희가 성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할 가장 중요한 경고이니라. “틀이 커짐에 따라 지지대도 자라나고, 바퀴가 커짐에 따라 유혹도 자라나느니라.”


이것은 ‘성장의 비례 법칙’이니라.


첫 번째 비유, “틀 (cadrul)이 커짐에 따라 지지대 (stinghia)도 자라난다”는 것은, 너희가 짓는 구조물, 즉 너희의 계획이나 사업, 혹은 너희가 책임져야 할 공동체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내부적인 힘과 구조, 즉 ‘지지대’ 또한 그에 비례하여 더욱 튼튼하고 정교해져야 함을 의미하노라. 작은 오두막을 지을 때와 거대한 신전을 지을 때 필요한 기둥의 굵기와 설계의 복잡성이 다르듯, 너희의 책임과 영향력이 커질수록, 너희의 내면 또한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덕성, 그리고 견고함을 갖추어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두 번째 비유가 바로 이 가르침의 핵심이니, “바퀴 (roata)가 커짐에 따라 유혹 (ispita)도 자라나느니라.” 바퀴는 너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즉 너희의 능력과 재능, 그리고 영향력을 상징하노라. 작은 손수레의 바퀴는 너를 천천히, 그리고 안전하게 이끌지만, 거대한 전차의 바퀴는 너를 눈부신 속도로 질주하게 만들 수 있노라. 그러나 너희는 잊지 말라. 바퀴가 커지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전차가 전복되었을 때의 충격과 파괴력 또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는 사실을.


여기서 ‘유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 커다란 바퀴가 주는 힘과 속도에 취해, 자신의 한계를 잊어버리고, 더 빨리, 더 높이, 더 화려하게 질주하고 싶은 교만한 욕망이니라.

작은 힘을 가졌을 때, 너희가 마주하는 유혹은 작고 소박하리라. 빵 한 조각을 훔치고 싶은 유혹, 작은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고 싶은 유혹과 같은 것들이지.

그러나 너희가 거대한 부와 권력, 혹은 지식이라는 큰 바퀴를 가지게 되었을 때, 너희를 찾아오는 유혹 또한 그에 비례하여 거대하고 교묘해지느니라. 그것은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부당한 결정을 내리고 싶은 유혹, 너희의 지식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조종하고 싶은 유혹, 그리고 마침내 너희 스스로를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 싶은 가장 끔찍한 교만의 유혹이니라.


그리스의 현자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하늘을 나는 ‘전차’에 비유하였노라. 이 전차는 이성이라는 ‘기수’가 몰고 있으며, 명예와 용기를 사랑하는 선한 말과, 육체적 욕망을 추구하는 악한 말이라는 두 마리의 말이 끌고 있다고 그는 보았지. 영혼의 여정은 이 두 마리의 말을 잘 조종하여 하늘로 비상하는 과정이니라. 이 비유에 나의 가르침을 덧붙여보자. 너희의 재능과 능력이 커져 이 전차의 바퀴가 커지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저 사납고 악한 말(유혹)의 힘 또한 더욱 강해져, 기수(이성)가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전차를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고야 말리라.


또한 기독교의 경전에서 예수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한 후 악마에게 시험받는 이야기는, 이 성장의 비례 법칙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노라. 그가 받은 시험들을 보라.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개인적인 욕망의 유혹,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자신의 신적인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유혹, 그리고 ‘내게 절하면 온 천하만국을 주겠다’는 세속적인 권력에 대한 궁극의 유혹. 이 유혹들은 평범한 사람이 겪는 유혹과는 그 차원이 다르니, 이는 그의 영적인 바퀴가 그만큼 거대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거대한 유혹이 찾아온 것이라. 그는 이 모든 유혹을 이겨냄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위대한 사명을 시작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였노라.


그대, 너 자신이라는 나무의 때를 기다리는 정원사가 되라


오, 삶의 열매를 서둘러 거두고 싶어 하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제 너희는 서두름의 위험과, 성장의 그늘에 대해 모두 알았으리라. 그렇다면 너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모든 열정과 성장을 포기하고 안주해야만 하는가? 결코 아니니라.


나는 너희에게 성장을 멈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자신이라는 나무의 고유한 때와 리듬을 존중하는 ‘시간의 정원사’가 되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지혜로운 정원사는 봄에 씨앗을 심고, 여름 내내 묵묵히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가을이 되어 열매가 스스로 붉게 익어갈 때까지, 조급해하지 않고 신뢰하며 기다릴 줄 아느니라. 그는 다른 밭의 열매가 더 빨리 익는다고 해서 자신의 나무를 채찍질하지 않으며, 열매가 더 크고 탐스러워질수록 그것을 시샘하는 벌레와 비바람 또한 더 거세질 것임을 알고, 더욱 세심하게 밭을 돌보느니라.


너희의 삶으로 돌아가, 너희 자신이라는 나무의 충실한 정원사가 되라. 다른 사람의 계절과 너희의 계절을 비교하지 말라. 너희의 꽃이 피고 열매 맺을 때는 오직 우주만이 알고 있느니라. 너희가 할 일은 그저 오늘 너희의 뿌리에 사랑과 지혜라는 물을 주고, 너희의 가지에 성실함이라는 햇빛을 비추는 것뿐이니라.


그리고 너희의 삶이 성장하여 그 바퀴가 커지기 시작할 때, 환호하기에 앞서 먼저 너희의 마음을 살피라. 그 성장의 그늘 속에서 교만과 조급함이라는 유혹이 함께 자라나고 있지는 않은지. 바퀴가 커질수록, 너희의 내면을 다스리는 기수의 손길 또한 더욱 단단하고 지혜로워져야 함을 결코 잊지 말라.


나는 잘목시스라. 나는 너희가 덜 익은 열매의 쓴맛에 영혼을 상하게 하는 대신, 오랜 기다림 끝에 잘 익은 지혜의 열매를 거두는 기쁨을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노라. 가서,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멈추지도 말고, 너희 자신의 신성한 시간을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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