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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사자의 서』, 주문과 지도로 두아트를 통과하기

by DrLeeHC


『이집트 사자의 서』, 주문과 지도로 두아트를 통과하기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죽음은 대개 끝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은 육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존재 자체가 소멸한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관문으로 보았으며, 그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정교한 안내서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사자의 서, Book of the Dead』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이 책을 '루 누 페레트 엄 헤루 (ru nu peret em heru)'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빛으로 나오기 위한 책'이라는 뜻입니다. 독일의 고고학자 칼 리하르트 렙시우스 (Karl Richard Lepsius, 1810-1884)가 1842년에 '죽음의 서'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실제로는 죽음에서 벗어나 빛으로 향하는 여정을 다룬 희망의 책이었던 셈입니다.


『사자의 서』는 단순한 경전이 아닙니다. 이는 사후세계인 두아트 (Duat)를 통과하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안내서입니다. 마치 현대인이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지도와 여행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듯이,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 이후의 여정을 위해 이 책을 미라와 함께 관에 넣었습니다.


두아트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상상한 사후세계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천국이나 지옥이 아니라, 복잡하고 위험으로 가득한 거대한 미로입니다. 죽은 자의 영혼인 카 (Ka)가 바 (Ba)의 형태로 미라에서 빠져나와 이 지하세계로 내려갑니다. 두아트의 구조는 놀랍도록 정교합니다. 이곳에는 수많은 관문들이 있고, 각 관문마다 무시무시한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이 문지기들의 이름은 '뱀을 먹고 사는 자', '피 속에서 춤추는 자' 같은 기괴한 것들입니다. 관문을 지나려면 각 문지기의 정확한 이름을 알고 적절한 주문을 외워야 합니다.


두아트에는 문지기들 외에도 온갖 괴물들이 돌아다닙니다. 딱정벌레, 하마, 악어, 뱀의 형상을 한 괴물들과 악마들이 죽은 자의 영혼을 노리고 있습니다. 또한 오시리스 (Osiris)를 대신하여 불의한 자들을 죽이는 '살해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주의를 피하고 공격을 막아내려면 특별한 주문과 대응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묘사가 단순한 상상의 산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두아트는 매우 현실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 이후에 실제로 이런 여정을 겪게 된다고 믿었고, 따라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자의 서』는 두아트를 통과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주문은 약 192개이며,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주문은 죽은 자에게 신비로운 지식을 주고, 어떤 주문은 신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합니다. 또 다른 주문들은 각종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거나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도와줍니다. 주문 17은 창조신 아툼 (Atum)에 대한 긴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주문 26부터 30까지는 심장과 관련된 주문들로, 스카라브에 새겨져 미라의 심장 위에 놓였습니다. 가장 유명한 주문 125는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을 다룹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사자의 서』가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사후세계로 나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문을 직접 선택해서 개인 맞춤형 사본을 만들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긴 내용의 파피루스를 주문하고 관이나 무덤 벽에 화려한 삽화와 함께 새겨 넣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중요한 부분만 관에 새기거나 가족들이 일부를 낭송하는 의식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개별화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죽음을 획일적인 경험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믿음에 따라 달라지는 고유한 여정으로 이해했습니다.


두아트의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나면, 마침내 오시리스의 법정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죽은 자는 생전의 행동에 대한 최종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입니다. 심판 과정은 현대의 법정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오시리스가 판사 역할을 하고, 지혜의 신 토트 (Thoth)가 서기 역할을 합니다. 아누비스 (Anubis)는 저울을 조작하고, 호루스 (Horus)는 검사처럼 죽은 자의 고백을 유도합니다.


죽은 자는 먼저 마아트 (Maat)의 42명의 평가자 앞에서 부정 고백을 해야 합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같은 42개의 죄를 짓지 않았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때 각 심판관의 정확한 이름을 알고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고백이 끝나면 실제 저울질이 시작됩니다. 저울 한쪽에는 정의와 진실의 여신 마아트의 깃털을, 다른 쪽에는 죽은 자의 심장을 올립니다. 이집트인들은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심장의 무게가 그 사람의 도덕성을 나타낸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심장이 깃털과 균형을 이루거나 더 가볍다면, 죽은 자는 천국인 세케트 아아루 (Sekhet-Aaru, 갈대밭)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가 많아 심장이 깃털보다 무겁다면, 괴물 암무트 (Ammit)가 즉시 심장을 삼켜버립니다. 심장을 잃은 영혼은 영원히 사후세계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아야 합니다. 심판을 통과한 죽은 자가 도착하는 갈대밭은 현실 세계의 낙원 같은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들판과 곡물, 소와 사람, 수로가 있는 이집트 생활 방식의 풍요롭고 풍성한 버전입니다. 갈대밭의 묘사는 쾌적하고 풍성하지만, 육체 노동이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합니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내세를 완전한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더 나은 조건에서의 지속적인 삶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자의 서』에 담긴 주문들은 단순한 종교적 문구가 아닙니다. 이들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지침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문지기를 만났을 때 어떤 이름을 불러야 하는지, 어떤 주문을 외워야 하는지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사자의 서』에는 도덕적 완전성과 주술적 지식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나타납니다. 주문 30B와 125는 심장이 불편한 진실로 자신을 반박하는 것을 막는 주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설령 완전히 순수하지 않은 삶을 살았더라도, 올바른 주문을 알고 있으면 내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 점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도덕적 절대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다른 학자들은 실용적 접근법을 나타낸다고 봅니다. 제럴딘 핀치 (Geraldine Pinch)는 부정 고백이 본질적으로 악마로부터 보호하는 주문과 유사하며, 성공의 열쇠는 도덕적 행동보다는 심판관들의 참된 이름에 대한 신비로운 지식에 있다고 제안합니다. 이런 해석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종교관이 단순한 선악 이분법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에게 사후세계의 성공은 도덕적 완전성과 지식, 그리고 적절한 준비가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사자의 서』와 함께 중요한 장례 문헌으로 『암두아트, Amduat』가 있습니다. 이는 태양신 라 (Ra)가 서쪽 지평선에서 해가 진 후 두아트를 여행하여 다시 동쪽에서 떠오르기까지의 12시간 여정을 서술한 책입니다. 『암두아트』는 『사자의 서』와는 다른 관점에서 사후세계를 다룹니다. 여기서 죽은 자는 태양신과 함께 여행하며, 각 시간마다 다른 신들과 적들을 만납니다. 태양신이 어둠의 뱀 아포피스 (Apep)와 싸워 이기면서 새로운 아침을 여는 과정은 죽은 자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원래 『암두아트』는 왕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제3중간기 이후에는 고위 관료들도 사후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보조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사자의 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 이집트 종교의 민주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고왕국 시대에는 왕만이 내세에서 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피라미드의 현실 벽에만 주문들을 새겼습니다. 이것이 '피라미드 텍스트 (Pyramid Texts)'입니다. 중왕국 시대에 들어서면서 귀족이나 부자의 관 속에도 사후세계에 관한 기록인 '관구문 (Coffin Texts)'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신왕국 시대에는 일반인도 『사자의 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특히 제17왕조 시대부터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자의 서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심장의 무게 달기' 모티프는 하트셉수트 (Hatshepsut, 재위 기원전 1479-1458년)와 투트모세 3세 (Thutmose III, 재위 기원전 1479-1425년) 시대인 기원전 1475년경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사자의 서』는 일반적으로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쓰였고, 텍스트는 화려한 삽화로 장식되었습니다. 제3중간기에는 전통적인 상형문자뿐만 아니라 신관문자로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신관문자 버전은 더 저렴한 버전으로, 삽화는 거의 없고 더 작은 파피루스에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더 넓은 계층에 확산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사자의 서』는 아니 (Ani) 파피루스입니다. 아니는 이집트 서기관으로, 그의 파피루스는 1888년 룩소르에서 발견되어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파피루스는 길이 23.6미터, 높이 42센티미터로 매우 방대한 규모입니다. 세밀한 그림과 정교한 상형문자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으며, 특히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 장면은 이집트 미술의 걸작으로 평가됩니다. 아니 파피루스에는 죽은 자의 머리 위를 떠도는 바의 모습도 그려져 있습니다. 바는 새의 형태로 표현되며, 낮에는 무덤에서 나와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밤에는 미라로 돌아온다고 믿어졌습니다.


『사자의 서』는 단순한 고대 문헌을 넘어 인간의 죽음과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자 칼 융 (Carl Jung, 1875-1961)은 『사자의 서』를 개성화 과정의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했습니다. 두아트의 위험한 여정은 무의식의 어두운 면과 마주하는 과정이고, 심장의 무게 달기는 자아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인들도 인생의 전환점마다 일종의 '두아트'를 경험합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을 때, 상실과 슬픔을 겪을 때 우리는 익숙한 세계를 떠나 낯선 영역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사자의 서』와 같은 지혜와 준비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음 이후의 여정을 위해 구체적인 주문들을 준비했듯이, 현대인들도 인생의 변화와 도전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지식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고,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려움 앞에서 무력하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한다는 태도입니다. 『사자의 서』가 제시하는 또 다른 중요한 통찰은 도덕성과 지식의 균형입니다. 부정 고백에서는 윤리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문지기들의 이름을 알고 적절한 주문을 외우는 지식의 중요성도 부각합니다.


이는 현대적 관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선한 의도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반대로 지식이나 기술만으로도 진정한 성취를 얻을 수 없습니다. 도덕적 성찰과 실용적 준비가 함께 이루어져야 인생의 어려운 국면들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에서 보듯이,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입니다. 하지만 그 평가를 받기까지의 과정에서는 충분한 준비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런 균형감각은 현대인들이 성공과 의미를 추구할 때 참고할 만한 지혜입니다.


『사자의 서』의 또 다른 특징인 개인 맞춤화는 매우 현대적입니다. 표준화된 버전이 없고, 각자가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문들을 선택했다는 점은 종교나 신념이 획일적이고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과 내세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개인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한 개별적 접근을 허용했습니다. 현대인들도 인생의 의미와 방향을 찾을 때 다른 사람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상황과 가치관에 맞는 고유한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사자의 서』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을 넘어선 삶의 연속성입니다.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변화였고, 새로운 형태의 존재로 이어지는 통로였습니다. 현대인들은 종교적 신념과 관계없이 이런 관점에서 배울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들, 영향을 준 사람들, 남긴 기억들은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일종의 '갈대밭'을 준비하고 있는 셈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갈대밭이 어떤 모습일 것인가입니다. 우리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 어떤 영향을 주변에 미치고 있는지가 결국 우리가 남길 유산을 결정합니다.


『이집트 사자의 서』는 죽음에 관한 책이지만, 역설적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두아트의 험난한 여정과 심장의 무게 달기, 그리고 갈대밭의 영원한 삶은 모두 현재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준비를 할 것인지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파피루스에 새긴 주문들처럼, 우리도 각자의 인생에서 마주할 어려움들을 위한 지혜와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자의 서』가 수천 년을 넘어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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