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발라의 핵심: 유배된 신성과 세계를 복원하는 인간

by DrLeeHC

카발라의 핵심: 유배된 신성과 세계를 복원하는 인간


인간의 사유가 마주하는 가장 오래고도 깊은 질문 중 하나는, 완전하고 선한 신이 창조했다고 믿어지는 이 세계에 왜 이토록 많은 고통과 결핍, 그리고 악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왜 조화롭지 않고 파편화되어 있으며, 인간은 왜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분리된 듯한 실존적 유배와 고독감에 시달리는가? 수많은 철학과 종교가 이 물음에 나름의 해답을 제시해왔지만,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만큼 대담하고도 장대한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이 문제의 핵심을 파고든 전통은 드뭅니다. 카발라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이 세계의 깨어짐이 단순한 인간의 타락이나 선의 부재가 아니라, 창조의 과정 자체에 내재된 하나의 우주적 드라마, 즉 신성(神性) 내부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의 결과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비극의 한가운데에, 인간을 단순한 피조물이 아닌, 이 깨어진 세계와 신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동반자이자 우주적 행위자로 세워 놓습니다.


이 장대한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신에 대한 카발라의 이중적 이해에 있습니다. 카발라는 신의 본질에 대해, 인간의 모든 사유와 언어, 심지어 상상력마저 초월해 있는 궁극적 실재인 ‘아인 소프(Ein Sof)’, 즉 ‘무한자’와, 그 무한자가 자신을 드러내고 세계를 창조하며 관계를 맺는 열 개의 빛나는 권능들인 ‘세피로트(Sephirot)’를 구분합니다. 아인 소프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지만 그 자체로는 어떠한 속성도, 의지도, 이름도 없는 절대적 침묵이자 신비의 심연입니다. 반면, 세피로트는 그 침묵의 심연에서 흘러나온 열 줄기의 빛이자,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며 관계 맺을 수 있는 살아있는 인격의 다양한 얼굴들입니다. 이 구도를 통해 카발라는 완전하고 변하지 않는 초월적 신과, 역사 속에서 고뇌하고 행동하는 인격적 신 사이의 철학적 모순을 극복합니다. 신은 자신의 본질에 있어서는 영원한 신비로 남아있지만, 자신의 발현된 모습인 세피로트를 통해서는 유한한 세계와 소통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됩니다.


카발라 사상의 정점을 이룬 16세기 이삭 루리아(Isaac Luria)의 가르침에 따르면, 창조는 이 신성한 빛이 펼쳐지는 순탄한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태초에 무한자인 아인 소프는 창조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를 ‘축소(Tzimtzum)’하는 고통스러운 자기 제한의 행위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 신성한 공(空)의 공간으로 한 줄기 빛이 뻗어 나와 세피로트라는 열 개의 그릇(Kelim)들을 형성했지만, 그 상위의 세 그릇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그릇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신성한 빛의 강렬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바로 이 ‘그릇들의 깨어짐(Shevirat ha-Kelim)’이야말로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우주적 파국으로 인해, 신성한 빛의 불꽃(Nitzotzot)들은 그들을 담고 있던 그릇의 파편들과 뒤섞인 채, 어둠과 혼돈의 영역으로 흩어지고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이 깨어진 그릇의 파편 혹은 껍데기가 바로 악의 형이상학적 근원인 ‘클리포트(Qliphoth)’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이 물질세계는 바로 이 신성한 빛의 불꽃과 악의 껍데기들이 뒤섞여 있는 혼돈과 유배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결핍, 그리고 인간 영혼이 느끼는 근원과의 단절감은 모두 이 태초의 깨어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우주적 파국을 해결하고 흩어진 빛들을 구원할 주체는 누구인가? 카발라는 바로 인간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인간은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한 유일한 존재이며, 이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의 구조 안에 열 개의 세피로트로 이루어진 생명의 나무가 그대로 각인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은 우주 전체의 구조를 그 안에 품고 있는 ‘소우주(Microcosm)’입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모든 창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물질세계와 신성한 세피로트의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으며, 의식적인 행위를 통해 천상의 세계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됩니다. 인간은 이 우주적 드라마 속에서 길을 잃은 신의 불꽃들을 다시 그들의 근원으로 되돌려 보내는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이 사명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티쿤(Tikkun)’, 즉 ‘복원’ 혹은 ‘치유’의 과정이며, 이것은 토라에 명시된 계율(Mitzvot)을 올바른 신비적 의도(Kavanah)를 가지고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카발리스트에게 계율의 준수는 더 이상 사후의 보상을 위한 행위나 신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주의 근본 구조에 직접 개입하여 파괴된 질서를 바로잡는 하나의 ‘신성 작용(Theurgia)’입니다. 각각의 계율은 세피로트의 특정 측면과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이 지상에서 하나의 계율을 올바르게 수행할 때, 그 행위는 클리포트의 껍데기 속에 갇혀 있던 신성한 불꽃 하나를 해방시켜 위로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예를 들어, 자선을 베푸는 행위는 자비(Chesed)의 세피라를 강화하고, 정의로운 판결은 심판(Din)의 세피라에 깃든 파괴적인 힘을 균형 잡힌 힘으로 되돌립니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윤리적, 종교적 실천은 우주적 치유 행위가 됩니다. 이 관점에서 신은 더 이상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흩어진 빛들을 모으기 위해 인간의 협력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고통받는 존재가 됩니다. 인간과 신은 이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넘어, 깨어진 세계를 함께 복원해나가는 운명 공동체이자 동반자가 된 것입니다.


카발라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이처럼 신과 인간, 그리고 세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합니다. 그것은 정적이고 완성된 세계관이 아니라, 파국과 유배, 그리고 복원이라는 역동적인 드라마의 세계관입니다. 신은 자신의 일부를 유배 보내는 위험을 감수했고, 인간은 그 유배를 끝낼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 존재의 의미는 주어진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어진 것을 온전하게 만들고 흩어진 것을 하나로 모으는 창조적인 행위 속에서 발견됩니다. 카발라가 우리에게 던지는 최종적인 메시지는, 이 우주가 우리 각자의 행동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지는, 무한한 가능성과 책임을 지닌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작은 생각과 말 한마디, 그리고 선한 행위 하나하나가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파문을 일으키며, 신의 심장에 닿아 그의 고통을 위로하고 그의 기쁨을 창조한다는 이 심오한 비전이야말로, 카발라가 인류의 영적 유산에 남긴 가장 위대하고도 빛나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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