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미래를 알려고 하는가? 불확실한 삶 앞에서 우리는 점을 보고, 굿을 하고, 종교를 찾는다. 나에게 그 행위는 언제나 엄마로부터 시작되었다.
굿을 했다. 어릴 적 내가 무척 아프면 엄마는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무당을 통해 굿을 하면 웬만한 병은 다 나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계셨다.
어린 나는 엄마를 따라 병원 대신 굿판과 점집을 드나들다 보니 점집과 굿판은 낯선 미신의 세계가 아니라 어느덧 삶의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스며들었다.
나의 결혼을 위해 날을 잡고 엄마가 가장 먼저 한 일 역시 굿이었다. 결혼 전에 하는 굿의 이름을 ‘혼인연탐굿’(婚姻緣探굿)이라고 했다. 혼사가 있음을 조상들에게 미리 알려 복을 받기 위하여 행하는 굿이었다. 외갓집에는 오래된 단골무당이 있었다. 중요한 대소 행사를 앞두었을 때는 늘 무당과 의논했다. 그 내력은 엄마를 통해 우리 집에도 영향을 끼쳤다.
광나루 근처 길가에 자리 잡은 조그만 무당집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곳은 사실상 하나의 기업이 되었다. 겉으로 보면 2층 양옥집이었는데 내부로 들어가면 소리의 울림과 방음을 위해서 그랬는지 거실의 층고가 엄청 높았고 가운데가 뻥 뚫려 있었다. 음식을 쌓은 높이가 평소 제사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굿판 비용과 음식값은 별도였다. 고객의 형편에 맞춰 음식이 준비된다는 의미였다. 굿판의 구성은 보통 무당 두 명이 교대로 굿을 하고 북을 치는 박수 한 명, 장고 치는 사람 한 명, 피리 부는 사람 한 명, 여기에 음식 준비를 돕는 사람들로 보통 예닐곱 명 정도가 참여한다.
무당의 몸을 통해서 조상님이 등장하면 우리 엄마는 누구인지 바로 알아채시고 인사를 하신다.
“아버님 오셨어요?”
엄마의 첫마디에서 엄마가 이 조상님을 어떤 태도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오시면 너무나도 반갑게 맞이하셨다. 그런데 간혹 엄마가 모르는 조상님이 있을 때가 있다. 엄마가 어떤 조상님인지 갸우뚱하고 있으면 무당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단골무당에게 굿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상님을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조상님이 진짜 들어온 것처럼 귀신 같이 사정을 말한다. 난 사실 이 접신(接神)이 굿에서 가장 신기하면서도 이해가 잘 안 되었다. 굿을 할 때마다 조상님이 언제나 시간을 맞추어 딱딱 등장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무당이 결코 돈을 쉽게 버는 것이 아니라고 늘 말씀하셨다. 굿은 일반적인 제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크고 복잡한 행사이기 때문이다. 의뢰인이 쏟는 막대한 비용과 준비 과정의 정성을 생각하면, 어쩌면 굿의 영험함이란 신비로운 힘 그 자체보다도 그 과정에 투입된 지극한 정성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결과가 아닐까 싶다.
크리스마스 전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마석에 모시고 나서 집에서 ‘자리 굿’을 했다. 자리 굿의 의미는 고인이 산소에서 자리를 잘 잡으라고 하는 굿이었다. 단골무당은 ‘자리 굿’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모가 적합한 무당을 소개했다. 발인한 날 저녁에 마장동 우리 집 마루에서 자리 굿이 열렸다.
무당은 굿판이 시작되면서부터 말없이 계속 소주를 마셨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이모가 한마디 덧붙인다.
“형부가 이렇게 혼자 말없이 술만 드신 거죠?”
그 말에 마치 그랬구나 하고 동조하듯 한편에서는 훌쩍거리는 소리들이 들리기도 했고, 절규하듯 ‘아버지, 형님, 형부’ 하며 우는 소리들이 곳곳에서 마루 공기를 타고 울렸다.
아버지가 혼자 술을 마시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극적으로 재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굿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많은 친인척들은 무당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소리들을 하며 감탄했다.
그 후 ‘자리 굿’이 계속 진행되어도 무당의 행위는 똑같았다. 무당은 혼자 소주를 연거푸 마셨다. 그때마다 이모는 아까와 똑같은 말을 건넸다. 그러다 갑자기 무당이 마루에 쓰러졌다. 아버지 병환의 중대함을 행위로 보여준 듯해 다시 한번 실내 분위기는 엄숙해졌다. 쓰러진 무당의 다음 행위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유럽 여행 왜 혼자 갔어?”
무당이 갑자기 일어나 아버지로 접신하며 엄마를 향해 이렇게 말한 것 같았다.
‘그럴 줄 몰랐어?
혹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가장 서운해하던 최근의 사건이었지만 엄만 치매와 파킨슨병에 걸린 아버지와 유럽 여행을 함께 갈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선은 무당으로 따라갔다. 여전히 누워있다. 이모가 무당 옆으로 갔다. 그래도 무당은 요지부동이다.
이제는 이모가 무당을 점점 더 세게 흔들었다.
길거리에서 쓰러진 사람을 깨워 일으키듯, 거칠고 다급하게.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그저 술에 취한 사람으로 보였다.
무당이 술에 취해 제대로 굿을 이어갈 수 없게 되면서, 의식은 허무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저 굿이 아버지가 자리를 잘 잡으셨다는 징표이기를 바랐다. 믿음이라기보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마음에 가까웠다.
그날 이후로 나는, 굿판에서 울고 웃던 감정의 상당 부분이 실제가 아니라 연극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우리 집과 점집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이모에게 정말 용하다는 점쟁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래서 엄마를 모시고 금호동 달동네 점집을 찾아갔다. 가서 보니 무격(巫覡, 남자무당)이었다. 보통 신점에서는 태어난 시 없이 출생 연도와 월, 일만 알면 점을 봐준다. 우리 엄마는 점쟁이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주를 넣고 어떠냐고 물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주게 저승길이 멀다 더니 아침 전에 갔다 오리다”
이런 장송곡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부채로 책상을 크게 여러 번 친다. 그다음 엄마 어깨를 부채로 내리치더니, 이내 벼락같은 큰 소리로 말한다.
“감히 날 시험해”
이 말에 엄마는 정말 놀랐다. 바로 잘못했다고 두 손 모아 빌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셨다. 하도 잘 맞춘다고 해서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이다.
엄마는 그날 이후 그를 더 믿게 되었고, 나는 그날 이후 점쟁이들이 사람 마음을 붙잡는 방식을 알게 되었다.
몇 번 더 갔고, 아니 많이 더 갔고 그 점쟁이와 엄마와 관계가 편해질 때쯤 무당은 ‘대주’(大主, 집안의 바깥주인)가 크게 다치거나 아플 수 있다고 했다. 이 당시 대주는 형을 의미했다. 박수무당은 강력하게 굿을 권했다. 그래서 굿 하는 공간을 빌려주는 북한산 숨은벽 가는 길목 초입에 자리 잡은 국사당에서 결국 큰돈을 주고 굿을 했다.
이 박수무당 사건 이후, 나는 엄마에게 점이 ‘논리’가 아니라 ‘심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수무당은 엄마의 마음을 알고 집요하게 접근했던 것이다.
결국 이 박수무당은 굿 판 한 번 벌리고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엄마는 왜 또 점을 보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엄마에게 점은 누군가의 인생을 점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붙잡는 방법에 가까웠다.
그럼 도대체 점을 왜 보고 싶은 걸까?
우리 엄마가 점을 보려고 했을 때는 대부분 이랬다. 자식은 언제 결혼하나? 아들의 사업은 앞으로 어떤가?
내가 지금 사놓은 부동산이 오르는 시기는 언제일까? 마장동 부동산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우리 엄마는 다른 사람의 궁금함 또는 인간관계 때문에 점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본인의 삶 속에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와의 깊은 인연으로 우리 동네에서 사주를 보고 있는 점쟁이 아저씨가 있다. 지금 90세이시고 현재도 우리 동네에서 이 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꽤 오랜 세월 동안 엄마가 의지했던 점쟁이 아저씨였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이 아저씨와 관계가 멀어졌고 발길을 끊었다. 이유는 점괘 때문이었다.
엄마가 원하고 바라던 점 풀이가 아니고 반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엄마는 운이 그렇게 나왔다 하더라도 좀 좋게 포장해서 미래의 꿈을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내게 호소했다. 어쩜 그럴 수 있느냐, 사람이 변했다며 나에게 속상함과 서운함을 토로했다. 수십 년 동안 정말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던 아저씨와 이 사건으로 단절이 될 정도로 엄마에게는 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아픈 점괘였다.
왜 우리는 내가 듣고 싶은 답이 아니면 점괘를 부정하는가?
나는 점보다는 가끔 인사와 궁금한 것들에 대한 수다를 목적으로 점쟁이 아저씨와 인연을 현재까지도 이어가고 있는데 최근 그때 일이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아저씨, 그때 생각나세요. 엄마는 꽤 충격을 받으셨어요”
“난 풀이가 나온 그대로 말해드렸어. 네 엄마 부동산 운세가 하락세라고 이야기했지.”
“그 운세를 뛰어넘는 방법은 없었을까요? 예를 들어 사주에는 돈이 없는데 잘 사는 사람, 사주에는 덕이 없는데 베풀며 잘 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부단히 노력하고 기도하면 사주도 달라질 수 있지”
예전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사주 편을 방송한 적이 있다. 3분 차이로 출생이 다른 여자 쌍둥이가 있었다. 둘은 성격도 완전히 달랐고 언니는 가정을 이루고 나름 행복하고 살고 있지만 3분 차이의 쌍둥이 동생은 완전 반대의 삶을 살고 있었다. 도대체 3분 차이의 쌍둥이 자매의 다른 삶을 어떻게 사주로 해석할 수 있는가였다.
영화 ‘관상’에서 내경이라는 주인공 관상가(송강호역)는 자기 아들이 수양대군으로 인해 한쪽 눈을 잃을 것이라는 미래를 읽지 못했다. 그때 마지막 대사가 참으로 삶의 울림을 준다.
“그 사람의 관상만 보았지. 시대를 보지 못했네.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보았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쌍둥이 자매의 다른 삶도, 내경이 보지 못한 ‘시대’도 결국 같은 말을 건넨다. 사주와 관상은 파도 모양은 짐작하게 해도, 어디로 휩쓸릴지는 끝내 말해주지 못한다.
주식을 본업처럼 열심히 매일 거래하고 있는 친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점을 본다면 주식이 상한가여도, 하한가여도 그 주식의 앞날이 궁금할 듯하다. 삶은 주식 종목과도 같다. 온통 미래에 궁금한 것투성이다.
이 불확실성 앞에서 누군가는 주식 차트를 보고, 누군가는 점을 보고, 누군가는 종교를 찾는다.
나 역시 불확실한 내일을 마주할 때마다 묻는다.
어디로 갈 것인가? 그것이 본질이다.
결국 우리는 점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견딜 수 있는 한 줄기 말을 들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