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굿도 궁합도 필요 없다

엄마는 굿을 했고 나는 뒷풀이를 했다.

by 플레이런너

“동궁웨딩타운이 어디 있어?”

“딴~ 딴딴딴, 딴~ 딴딴딴”

나의 웨딩마치가 울려 퍼진 곳.

왕십리에서 강 하나 건너면 강남이지만

그 시절 마장동 사람에게 지금의 청담동은 꽤 먼 세상이었다.

이 결혼식장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해를 넘기기 싫어서였다.

날짜가 가능해서 그냥 계약했다.

비용이나 다른 것은 따지지도 않았다.

그 시절 마장동에서 청담동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지금도 버스나 전철로 한 번에 가는 길은 없다.

최소 두 번은 갈아타야 한다.

당시 마장동 사람들에게 강 건너 청담동은 심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낯선 곳이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결혼을 했다.

장인어른 하객 대부분이 마장동 지인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사실은

결혼 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그해에 식장을 잡겠다’는 집념 하나로 청담동을 택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신랑이었다

이번 선우의 결혼식 장소가 마장동과는 좀 떨어져 있는 수서역 근처 ‘수서식물원 PH’였다.

청첩장을 돌리자 왕십리에도 웨딩홀이 있는데 왜 여기서 하냐고 물어보는 지인들이 제법 있었다.

식물원이 야외 같으면서 실내이고

실내 같으면서 통창 너머로 야외 같은

그 독특한 웨딩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나의 결혼 청담동이 떠오른 이유였다.

내가 결혼 이벤트를 위해 준비한 것은 결혼식 장소를 선택한 것이 전부였다.

결혼과 관련된 나머지 모든 몫은 엄마의 역할이었다.

“장의사 집 빼고는 전부 가는 것이 결혼 준비야”

피로연 음식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갈 곳이 참 많다는 말씀이었다.

참기름, 고춧가루부터 기본 재료를 모두 새로 만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피로연 음식 준비 때문에 결혼식 며칠 전부터 작은엄마, 이모, 외숙모, 작은엄마 친지들이 우리 집에 합숙을 하셨다.


드디어 혼인여탐굿(婚姻女探굿)을 시작으로 나의 결혼 준비는 시작되었다.

혼인여탐굿의 의미는 결혼을 앞두고 신부의 운과 혼인 길흉을 살피고 신랑·신부의 궁합과 혼인의 앞날을 점치고 액운을 막는 굿이다.

굿은 결혼 한 달전쯤 엄마의 오랜 단골무당이 진행했다.

신부에게는 아예 얘기도 안 했고 신랑인 나만 광장동에 있는 굿당에 참석했다.

엄마에게는 누나, 형 결혼 때도 했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하는 집안의 예법 의식이었다.

굿이 시작되자

무당이 혼인 운세 탐굿을 진행했다.

“두 사람의 인연을 신이 허락하셨느냐?”

북소리가 둥둥 울리고 무당이 목을 길게 빼며 힘차게 외친다.

“이 혼인 길이 열렸느냐?”

“열렸다!”

열렸다는 무당의 공수에 엄마는 함박웃음을 띄우며 티브이에서 보는 북한 사람들처럼 열정적인 박수를 쳤다.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인연이지만

그 인연이 오래 가게 하려면 하늘의 뜻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

엄마와 무당의 지론이었다.

난 엄마의 아들이다.

요즘 가족들은 외모, 하는 짓, 성격까지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이구동성이다.


아들 결혼식 끝나고 친가와 처가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용인 펜션에서 저녁 뒷풀이를 했다.

“너네 엄마가 계셨다면 그런 뒷풀이 안 했겠니? 영진이가 정말 엄마를 똑 닮았구나”

누나에게 들었다며 이모가 내게 해준 이야기였다.

ChatGPT Image 2026년 3월 14일 오전 06_35_28.png 용인한방페션에서의 뒷풀이


부정할 수 없었다. 내 안에는 엄마의 흥과 기질이 그대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굿을 하며 결혼을 준비했던 집안에서 자란 나는, 이번 아들의 결혼에서

점도,

궁합도

보지 않았다.

심지어 아직

며느리의 사주조차 모른다.


선우 결혼식 하객으로 우리 엄마와 인연이 매우 깊은 점쟁이 아저씨가 축하해 주기 위해 오셨다.

어릴 때 내가 아프면 병원을 찾지 않고 굿에 의지했고 엄마는 궁금한 일이 생기면 늘 점쟁이 아저씨에게 묻곤 하셨다.

작년 8월 30일 상견례를 했을 때만 해도 내년 3월 8일은 참으로 멀게 느껴졌던 결혼식이 훌쩍 다가왔다.


선우 결혼식 당일 아침 6시 30분, 청담동에 도착했다.

멋을 내기 위해서였다.

신의 뜻도 아니고 나의 뜻도 아니고 선우와 다솔이의 뜻이었다.

청담동 미용실에 들어서자 카운터 직원이 묻는다.

“어떻게 오셨죠?”

고개를 숙여 리스트를 쳐다본다.

"임다솔 님 시부모님이 맞으세요? "

"예, 그렇습니다. "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양쪽으로 흔든다.

"정말요? 신랑, 신부처럼 보이세요. 두 분 다 아주 아주 젊으시네요."

내가 웃으며 답변했다.

"이 헤어숍이 잘 되는 이유가 있군요. 그래도 기분은 좋아요. 복 많이 받으세요.“

결혼식 날 아침이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선우와 다솔이는 이 결혼을 대략 6개월 정도 준비한 듯하다.

결혼식 당일 곳곳에 붙어 있던 포스터와 액자 속 사진들은

꽤 정성이 들어간 웨딩 포토였다.

액자 속 사진과 포스터는 마치 드라마 촬영의 사진 같았다.

어쩜 그것을 촬영하기 위해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

신혼부부 관련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 식물원 PH 이야기를 들었다.

“요즈음 가장 결혼하고 싶은 곳”

2층과 3층을 계단으로 다니는 것이 다소 불편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배우와 신랑·신부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다양한 이벤트가 있는 결혼식이었다.

처음에는 주류가 한 박스면 충분할 것이라고 관계자가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소주가 세 박스, 맥주가 네 박스 나갔다. 식물원 안에는 하객들의 웃음소리와 오가는 술잔으로 벌게진 얼굴들이 어우러져 잔치 분위기가 활짝 꽃피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굿 대신 붙여놓은 흥의 ‘부적’ 같았다.

결혼을 마치고 많은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인사를 받았다.

”결혼식 장소가 특이하다. 결혼식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음식이 맛있더라 "

이런 이야기보다 감동을 주는 말이 있었다.

“정말 그 많은 예식장을 다 다녀봤지만 선우의 결혼식은 더없이 아름다운 한쌍이었습니다. 또한 가족의 모습이 참으로 선우 아빠 축사처럼 행복하고 화목해 보여서 참 좋았습니다.”

굿도 궁합도 필요 없는 두 사람의 인연을 아버지는 마음 깊이 축하한다.

ChatGPT Image 2026년 3월 13일 오후 11_07_26.png 나의 결혼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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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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