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왜 이렇게 늦게 뛰어?”
잠실종합운동장을 힘겹게 들어섰을 때, 어린 선우가 툭 던진 말이다.
〈부자의 호흡〉 편에서 남산 달리기 이야기의 주인공도 선우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연재에서 달리기 후 아빠와 친구들이 뒤풀이 하며 나눈 ‘아이들의 놀이 문화’ 이야기의 한 축 역시 선우였다.
복학 후 선우는 동아리를 고를 때 조언을 구했다.
“아빠, 어떤 동아리가 좋을까?”
“아빠 생각에는 연극반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는 동아리가 좋겠다. 몸을 써야 하고, 빠질 수 없고, 함께 뛰어야 하는 동아리 말이다.”
그렇게 몇몇 동아리를 후보로 놓고 선우가 최종 선택한 것은 마라톤 동아리였다.
처음엔 의외였다.
마라톤 동아리는 무조건 뛰어야 하는 것 아닌가?
거기서 무슨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달리는 모습을 지켜본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선우는 내 예상과 달리 마라톤 동아리에 푹 빠졌다.
달리기도 무척 열심히 했다. 그 결과 풀코스 기록이 3시간 30분.
내 기록과 무려 한 시간 이상 차이가 난다.
같은 런너로서 부럽기 그지없다.
마라톤 동아리의 활동은 단순히 달리기에 그치지 않았다.
선우는 아빠처럼 동아리 회장까지 맡아 학내 대회, 교외 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직접 기획했다.
공부하는 모습은 낯설었지만, 달리는 선우의 모습과 대회 포스터를 만드는 그의 모습은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가을, 선우의 생일날 동아리 회원들이 보드판에 축하 메시지를 만들어서 선물했는데 그 숫자와 정성이 상당했다.
이렇게 달리기를 통해 자신을 단련해 온 선우가 이제 인생의 새로운 코스, 결혼이라는 긴 레이스를 시작한다.
나는 선우에게 어떤 아빠였을까?
그 질문을 오늘 처음 해본다.
나는 선우에게 어떤 페이스메이커였을까?
아니면…
페이스메이커는커녕,
그저 나 혼자 앞만 보고 달린 아빠는 아니었을까?
선우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 태어난 순간 이미 나는 아빠였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환불도, 교환도 없이
우리는 지금까지 부자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부자 관계도 주식에 비유할 수 있겠다.
자식을 투자 대상으로 비유하자면, 선우는 ‘가치주’다.
가치주는 시간이 흐를수록 조용히 진가가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선우를 언제나 장기투자 중이다.
중학교 때, 아빠의 연극 〈택시 드리벌〉 무대에 선우를 세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하나의 가치주 투자였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언제나 응원이 가능하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는 어떤 종목이었을까?
혹 관리종목이나 부실주는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선우야,
그래도 아빠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선우를 끝까지 응원하는 존재로 남고 싶다.
축사
안녕하세요?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신랑의 아버지,
그에 걸맞은 가장 아름다운 며느리를 얻은
마장동 김 씨, 김영진입니다.
이 귀한 날, 두 사람을 축복해 주시기 위해
바쁘신 걸음에도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는
제 인생에서 손꼽히게 특별한 순간입니다.
삼십여 년 전에는 신랑의 자리에서 이 길을 걸었고,
오늘은 아버지의 자리에서 그 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때는 설렘과 흥분이 앞섰다면
오늘은 감사가 먼저 앞섭니다.
이렇게 많은 친지와 지인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을 보니 이것은 기적입니다.
저를 아는 모든 지인이 한 장소에, 같은 시간에 모였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우가 태어났을 때부터 ‘할아버지를 꼭 닮았다’며 유난히 예뻐해 주신 할머니,
그리고 같은 마장동에서 늘 선우의 용돈을 챙겨 주시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 8월 30일 상견례 이후,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해 주신 사돈 어르신과 가족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선우를 예쁘게 봐주신 외할머님과 삼촌께 아버지로서 마음 깊이 고맙다는 말씀 올립니다.
저는 선우와 선경이를 어릴 때부터 희망, 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이름은 ‘희망과 꿈이 사는 집’, 행복하우스라 부릅니다.
그런데 행복하우스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왔습니다. 며느리, 다솔입니다.
그녀를 나는 이제 행복이라 부릅니다.
행복하우스로 찾아왔으니까요.
오늘 희망과 행복이 만났습니다.
희망과 행복이 함께 사는 집은 늘 설렘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응원과 축하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아주 중요한 비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집중해서 들어봐 주시겠어요.
사실 다솔이가 저에게 축가를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제가 노래를 너무나도 잘해서 오늘 주인공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여러분을 보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합창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잔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첫 잔은 희망
두 번째 잔은 행복입니다.
자, 우리의 희망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다 같이 한 번 더!
자,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선우야, 다솔아.
결혼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름다운 식물원에서 봄날처럼 오늘 하루 즐기시기 바랍니다.
혹시 오늘 이곳에서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브런치에는 3월 8일 00시에 공유, 지인들은 3월 9일 공유 예정
*오늘 결혼식은 11시30분 수서에 있는 식물원PH에서 진행.
*현재 시간 새벽 세 시, 잠이 완전히 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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