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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렴, 알알이 스며드는 맛

청계천변 식당의 역사와 맛의 유래


마장동은 김영진을 설명하고 포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브랜드이다. 마장에서 태어나서 지금껏 마장에서 살고 사업하고 있는 기본 뼈대가 있다. 또한 나에 하루 24시간이 상당수 마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마장에는 청계천이 있고 청계천 하류 1.6km를 흐르고 있다. 마장 청계 주변에는 1930년대부터 야채시장이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야채 시장 주변에 하나둘씩 국밥집이 생겨났다. 설렁탕 원조라고 티브이에 나온 옥천옥, 우거지가 잔뜩 들어간 선지 해장국이 유명한 대중옥, 간판도 없이 운영하는 갈비탕 전문 금호식당, 청계천 지류인 용두천에 곰보추탕 등 식당들이 즐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 ‘왕십리’ 속에 주인공인 준태가 자주 가는 식당이 바로 ‘대중옥’이었다. 청계천에 자리를 잡은 식당들의 특징은 24시간 영업을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술꾼들이 어디선가 술을 먹다가 새벽녘에 성업한 곳을 찾아오는 곳이 바로 청계천 국밥집이었다. 마무리로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곤 했던 곳들이다. 대중옥에는 우랑(숫소의 정낭)과 송치(암소 배 속에 든 새끼) 등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독특한 메뉴가 있었다. 또한 통 미꾸라지를 통째로 걸쭉하게 끓여 내는 서울식 추탕도 있었다. 


  마장동 국밥집들에 두 번째 공통적인 특징은 ‘토렴’에 있었다. 밥이나 국수 따위에 따뜻한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며 데우는 방식을 토렴이나 한다. 이런 토렴을 하려면 육수가 하루 종일 끊고 있어야 가능했다. 


  밥은 미리 지어두면 찬밥이 되기 마련이고, 이를 따뜻하게 만들어 먹기 위하여 찬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밥을 따뜻하게 만들어 손님에게 내는 방법이 바로 토렴이다. 이렇게 토렴하면서 국물로 여러 차례 밥을 덥히므로 밥을 넣고 끓인 것에 근접하게 되어 따뜻한 국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쌀밥 낱알마다 국물이 배어들게 되므로 밥 자체가 맛있어지게 된다. 토렴에 횟수를 더 많이 반복할수록 국밥은 더욱 맛있어진다고 한다. 그릇에 밥을 담고 뜨거운 장국으로 토렴한 후 그 위에 고기와 달걀지단을 얹으면 하나의 국밥이 완성된다. 한마디로 토렴은 국밥집 주인장이 손님에게 내미는 첫인사이자 정성이라고 볼 수 있다. 노련한 주인장은 때로는 토렴을 하면서 손님과 인사로 말도 붙인다. 토렴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국밥 맛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을 보면 토렴이 상당한 솜씨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관계에서 나오는 토렴 맛에 끌려 수십 년간을 단골로 찾아가고 그 맛에 내 입에 인이 박여서 지금껏 나 역시 찾아가고 있다. 

  토렴의  역사는 이랬다고 한다. 배고픈 사람이 끼니를 요구할 때, 집 안에 새로 지은 밥이 남은 게 없고 먹다 남은 보리밥을 줄 때가 있는데, 그땐 뜨거운 장국으로 토렴해서 주는 게 없는 사람에게 베푼 최소한 도리였다고 한다. 

  잠시 마장동과 청계천 국밥 토렴을 생각해 보았다. 토렴은 수고이고 정성이고 솜씨이다. 우리네 사람 관계도 토렴처럼 때로는 소통 안 되는 사람들과도 계속 반복적인 시도를 하는 수고를 하고 그것이 솜씨로 발휘되어서 차가운 관계가 뜨거운 관계로 변화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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