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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세계 수필부문 당선- '오이지'

어머니가 떠나신 후  우리 집 가정문화에 대해서 생각해보며 쓴 첫 수필

수필부문 심사평

 어머니의 향기,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김영진 님의 『오이지』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투고된 작품은 수필의 특징 중 하나인 깊은 삶의 미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이는 곧 수필이 대중들로부터 사랑받을 수밖에 없음을 증명해 주는 문학적 산물임을 보여주었다.

  특히 ‘오이지’라는 소재를 감칠맛 나고, 어머니의 향기 가득한 주제로 승화시키는 저력 또한 확인 시켜 주었다.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장르이지만, 그 속엔 항상 진실성과 평이성이 내재되어 있어야 비로소 그 깊은 맛이 나올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매우 우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처음 시작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연결되는 문장과 문장의 흐름이 매끄러웠고, 주제가 부각되도록 긴장감을 유발시킨 곳곳의 문학적 장치가 매우 돋보였다.

  수필가는 문장의 달인들이다.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재를 많이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동을 생산하는 최고의 수필가로 대성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윤형복, 도창회, 윤제철, 김천우



  집집마다 문화라는 것이 있다. 가정문화, 잔치 문화 뭐 이런 식으로 흔히 불리는 것들 말이다. 특히 가정마다 음식문화가 다르게 마련인데 우리 집은 좀 유난한 편이다. 입는 것보다는 먹는 것을 훨씬 중히 여겼다. 어렸을 적에 춘천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춘천터미널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어느 교도소 근처에  있는 막국수 집을 갔다.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딱 막국수만 먹고 다시 서울행 버스에 올라탔다. 힘들게 간 춘천인데 그 근처 볼거리를 한 군데 정도라도 들러 볼 수 있을 텐데 우리 가족의 목표 막국수를 먹었기 때문에 다른 곳은 안중에 없었다. 우리 집은 이런 음식문화를 갖고 있다. 아버지는 외식문화를 좋아하셨고 어머니는 집에서 창작하는 음식들을 선호하셨다.  

 

  우리 집의 대표적인 음식이 오이지, 고추장아찌, 동치미, 열무물김치이다. 오늘은 그중에서 오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봄이 되면 어머니는 오이지를 담기 위해 오이를 시골 비닐하우스에 가서 직접 사 오셨다. 보통 봄에 담갔다가 여름에 시원하게 먹는 음식이 오이지이다. 그러나 우리 집 오이지는 그런 계절을 따지지 않는다. 때와 상관없이 어머니는 오이지를 만든다. 어머니가 한 번 사시면 네다섯 박스를 사신다.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며느리 생각에는 왜 이렇게 많은 오이를 사야만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며느리 딴에는 그도 그럴만한 것이 딱히 줄 만한 대상이 있어서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많이 해서 그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에게 어머니는 오이지를 나누어 주셨다. 그래도 대상은 주로 친인척들이다. 우리 어머니에게 밉보인 친척은 작년에는 오이지 수혜를 입었다 해도 올해 또 그런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오이지를 먹기 위해서는 우리 어머니와 평소 인간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머니만의 생각이었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다지 오이지가 반갑지만은 않았다. 오이지에 대한 은혜를 입게 된 친척은 그냥 편하게 앉아서 받은 면 좋으련만 그것이 그렇게 되지 못했다. 오이지 물류 체계 때문에 그랬다. 

“내가 오이지를 줄 테니 가지러 와라.” 

  어머니 입장에서는 내가 오이지를 담가서 준다고 했으니 바로 뛰어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들은 차일피일 미루는 적이 보통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오이지에 골난다고 빨리 가져라 하며 재촉 전화를 받을 때 마지못해 움직인다. 그도 아니면 몇 집은 우리가 일요일 또는 평일 저녁에 한꺼번에 수송을 해준다. 이것은 우리 집 물류체계의 자존심을 꺾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삼촌이 말했다. 


“난 네 엄마가 해주는 오이지 정말 싫어. 귀찮아서 싫어. 그런데도 내가 니 엄마 삐질까 봐 가지러 온다.” 


  내가 일찍이 예상했던 것처럼 삼촌 역시 반기는 오이지가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마지못해 오셨던 것이다. 고추장아찌, 동치미, 물김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의 일을 삼사십 년 하신 어머니에 삶의 습관이었다. 그 생활은 누가 알아주는 문제가 아니라 본인만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당면 숙제였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집안의 갈등은 오이지류 같은 우리 집 전통 음식들이었다. 아들과 며느리 입장에서는 제발 우리 식구들만 먹을 수 있는 정도만 하시기를 바라지만 단 한 번도 우리의 뜻이 관철된 적은 없었다. 

  

비닐하우스에 사 온 오이를 마당에 있는 큰 빨간 대아 그릇에 담는다. 지름 팔십 센티 정도 되는 대아 그릇이 자그마치 다섯 개정도는 필요하다. 어머니가 못마땅할 때는 그 대아를 무언의 시위처럼 마당에 툭 던져버린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전혀 그런 내 모습에서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그러니 누가 이 모습을 본다면 나만 속 좁은 놈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런 다음 돌로 오이를 눌러준다. 어디 나가실 때마다 바깥에서 집어온 오이지 눌러주기 전용 돌로 오이 위에 올려준다. 그 돌도 일화가 있다. 산이고 들이고 집안 식구들이 소풍을 가면 어머니는 주위에 얇고 조금 평평하면서 굵은 돌은 꼭 간택을 하셨다. 그럼 자식들은 꼭 반대한다. 

“엄마, 집에 돌 많아. 돌 없어 오이지 못해요?” 

  투덜거림에도 불구하고 돌은 어느 순간 내 손에 들려있다. 그런 식으로 모인 돌이 이제는 하나의 오이지 눌러주기 돌로 문중을 형성할 정도가 되었다. 그 돌들도 각각의 삶의 의미들이 있었다. 어떤 놈은 기찻길 옆에서 어떤 놈은 강가에서 또 어떤 놈은 시내 한 귀퉁이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도는 장돌뱅이들이었다. 어머니는 그들을 새로운 오이지 돌로 탈바꿈했다. 재탄생이 축복받아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떠도는 삶에서 어딘가 거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난 위안을 했다. 그 돌은 이제 어머니의 오이지 돌로 새롭게 태워 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물과 수세미로 보통 이틀 정도는 빡빡 닦아 주신다. 난 옆에서 몇 개 닦는 척하다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내가 사라진 것을 조금 후에 아시고 나면 나를 정말로 단달마의 외침처럼 날 부르신다. 


“금세 어딜 갔니?” 

  그럼 난 언제나 딴청을 부리면서 태연하게 다시 어머니 주위를 맴돌았다. 

  이제 눌려진 오이에 소금물을 끓여서 붓는다. 소금의 양과 물의 양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며느리의 몫이었다. 한 번에 워낙 많은 양을 하기 때문에 양동이로 물을 나르는 것도 어지간히 힘들다. 이 물통을 나르는 작업은 주로 내 담당이었다. 이것도 어영부영하면서 처리하면 부엌에 물을 질질 흘리게 된다. 그러면 바로 지적 사항 들어온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나른다. 조심조심하면서 말이다. 

  다음 순서는 항아리에 오이를 쏟아부을 차례이다.  붓는 일도 주로 내 담당이었다. 하여간 조금 무게가 있는 일들이나 반복 단순한 작업들이 내 역할이었다. 군대에서도 이등병의 삶은 얼마나 고단하고 바쁜가? 고참 입장에서 보면 딱히 하는 일도 없는데 몸은 하여간 엄청 바쁘다. 내가 딱 그런 모양이다. 


  이래서 오이지 담그기가 끝났다. 보통 십오일에서 삼십일 정도 있으면 먹는다. 난 담그는 과정은 즐기지 않았지만 오이지 먹기는 참으로 즐겨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봐라, 너무 많이 했다면서, 먹기 들만 잘 먹는다” 

  

지난 일요일 동창들과 산에 갔다. 정상 부근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각자 도시락을 준비했다. 난 오이지를 갖고 갔다. 시원한 오이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보온병에 얼음을 따로 갖고 갔다. 집에서 먹는 오이지보다 더욱 맛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시원하게 보이는 오이지를 탐내했다. 그래서 큰 인심인 양 쓰는 듯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오이지에 대한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그러나 그 오이지는 사실 우리 집 전통표 오이지가 아니었다. 아내가 오이지 담그기를 몇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마트에서 오이지를 사 왔다. 어머니가 떠나고 난 지금 시점에서 전통 음식을 계승 못한 아쉬움이 참으로 남는다. 나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아내는 다시 시도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기필코 우리 집 전통표 오이지를 만들어 보겠다고 말이다. 어머니 살아생전에는 그렇게도 지겨웠던 오이지가 요즈음 참으로 새삼스럽다. 늘 밥상에 올려져 있어 그 가치를 몰랐던 오이지였다. 사람이나 물질이나 내 근처에서 좀 멀어질 때 그 가치를 뒤늦게 아는 것 같다. 내 곁에서 작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낀다.  

  아침에도 오이지를 먹었다. 저녁에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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