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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수필가 Aug 18. 2024

애마, 그랜다이저의 추억!

뭣이 중한디? ...보이는게 중요하지!

   

 올여름은 예년보다 무척이나 덥다. 만나는 사람마다 첫 인사가 더위 얘기였다. 내 평생 더위를 잊을 수 없는 날이 있었다. 삼십여 년 전쯤 일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차를 샀다. 대우에서 나온 중고차, 맵시였다. 이제 막 운전 면허를 딴 나에게 집안일을 시키려고 산 것이었다. 하여간 나는 생애 처음으로 생긴 차였기 때문에 어찌나 신나고 설렜는지 모른다.      

 차를 갖고 온 다음 날인 일요일에 시승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이 차에게 이름을 지어주자. 우리 집에 처음 들어온 녀석인데 이름은 있어야지”     

시승식에 참여한 가족은 아버지, 작은아버지, 형, 나 이렇게 네 명의 남자였다.      

“흰색이니깐 백마 어때요?”     

“뽀대 나게 ‘맵시나’ 어때?”     

반응들이 별로 없다. 그때 나도 하나 제안했다.     

“그랜다이저 어때요?”     

“그랜다이져?”     

“그랜다이저가 뭐야? 그랜저 속편인가?”


마침 출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차 이름이 그랜저라 이름이 비슷하기도 하고 만화 속 주인공인 그랜다이져는 힘센 로봇의 상징이라는 점을 가족들에게 어필했다.


“좋다 마징가 제트 보다 그랜다이저가 어울리네.”     

만장일치로 우리 애마의 이름은 그랜다이저로 정해졌다. 


마징가 제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처럼 우리 차도 마징가 제트보다 센 강력함과 멋진 모습으로 우리 가족의 자부심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담았다.     

  네 식구가 함께 차를 세차했다. 사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합심해서 무언인가를 해본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전까지는 주로 아버지가 작은아버지 또는 형에게 지시 또는 명령하고 그러면 걸을 것은 거르고 남는 것은 다시 나에게 명령하는 그런 관계였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무더운 여름날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들 자발적으로 각자 열심히 차를 닦았다. 아마도 조금 후에 벌어질 이벤트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그랬지는도 모르겠다. 이제 청소를 마치고 차에 올라탔다. 아버지가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그랜다이져 출발하자! 목적지는 수원 삼부자 갈비다”     

  시승식 겸해서 아버지가 갈비로 유명한 수원에서 한턱 내시겠다고 한다. 사실 이 수원갈비를 네 식구가 몇 번 정도 먹으면 이 그랜다이져를 구매할 수 있다. 시승식 이벤트가 차와는 어울리지 않게 매우 과분하다. 그것보다 이 차가 수원까지 갈 수 있냐는 것도 자못 궁금했다.      

  한남동 고속도로를 막 진입했는데 차가 몹시 막힌다. 이 당시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막힌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랜다이저에게 자동 시스템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힘을 팍팍 주어야 기어가 먹는 수동기어, 역시 힘껏 손잡이를 돌려야 여닫히는 창문 시스템, 안테나도 나올 때는 자동으로 나오고 들어갈 때는 사람의 손으로 밀어주어야 했다.      

  한여름의 고속도로 상황은 차 안에서도 느껴진다. 정체될 때 일렬로 늘어선 차의 열기 때문에 실제 느끼는 체감 온도는 더욱 올라가 거의 찜통 수준이었다.     

  우린 포부도 당당하게 그랜다이져 창문을 열어 놓고 운전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아버지가 작전명처럼 하달하신다.     

“그랜다이져! 창문 닫아”     

(깜짝 놀라면서, 길게)“예?”     

“우리 차는 그랜다이져다. 이 그랜다이져에 에어컨이 없음을 만천하에 알릴 수는 없다. 창문 닫아”     

“예”     

창문을 닫았다. 창문을 닫은 현상은 바로 나타났다. 에어컨 끄고 창문 닫은 상태의 차 안 상황이 상상이 가는가? 땀이 얼굴에서 완전 흠뻑 흐른다. 이때 작은아버지가 한 말씀 하신다.     

“덥지? 이럴 때는 바깥 다른 차들을 쳐다봐. 저 창문을 닫고 운전하는 차들은 얼마나 그 내부가 시원할까를 상상해 봐. 그러면 우리도 그 상상으로 버틸 수 있어. 이게 바로 자가 심리 냉방 법이야.”     

  그래서 틈나는 대로 다른 차를 쳐다봤다. 그런데 작은아버지 말씀처럼 상상은 안 되고 솔직히 다른 차들이 부럽기만 했다. 웃고 떠들면서 차 안에서 먹는 모습까지 보고 있으니 완전히 이건 고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아버지! 그랜다이져 숨 좀 쉬게 하면 안 될까요?”     

“안 돼!. 세차까지 했는데 폼나게 달려야지. 좀 있으면 갈비가 기다린다. 시원한 물냉면도 생각하며 참아!”     

  아버지의 한마디는 하나님 말씀이나 마찬가지인 우리 집 분위기에서 감히 대꾸할 수 있는 자가 우리 중에는 없었다. 이때 우리 차에 먹을 거라곤 고작 물 한 병이 전부였다. 그 물 한 병도 위아래 순서가 있기 때문에 막내인 나는 운전까지 해야 하고 물도 맘껏 마실 수 없는 위치였다. 지금 같으면 어디를 간다고 하면 차에 이것저것 갖고 타지만 이때만 해도 처음이었기에 그런 경험 자체가 없었다. 그것은 그랜다이져 합승 인원 네 명 모두 마찬가지였다. 물도 조금만 마시면서 운전하고 있는 나는 너무 더워서 운전석 쪽에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그러다 조금 더 슬며시 운전석 쪽 창문을 내린다. 이때 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그랜다이져, 잔머리 굴리지 마.”     

하는 수 없이 다시 올렸다. 난 이 행동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더워서 쩔쩔매고 있는 이때 갑자기 느닷없이 비가 쏟아졌다.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인가 보다”     

날씨는 딱 그랬다. 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오는 그랜다이져 실내는 한마디로 딱 곰팡이가 잔뜩 낀 분위기였다. 옥시크린이 바로 생각나는 그런 환경이었다.     

“혹시 그랜다이져 전 주인이 볼 일을 여기서 본 것 아니냐?”     

웃음이 나와야 할 순간이었지만 오히려 분위기는 엄숙했다. 습하고 냄새가 워낙 오묘해서 작은아버지의 말씀에 모두 동의하는 눈치였다. 세차할 때 외모에만 신경을 썼지, 내부는 대충 정리만 했다. 그게 지금 후회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차가 몇 달 동안 운전을 안 했던 차라 더욱 그런 냄새의 원인이었다고 추정된다. 이때 한술 더 떠 와이퍼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았다. 차를 할 수 없이 노견에 세웠다. 자세히 살펴보니 와이퍼 앞부분 앞쪽이 떨어져 나간 것이 원인이었다. 한쪽만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와이퍼 양쪽 모두 앞부분이 잘나졌다. 손재주가 있는 작은아버지가 등산용 가방에 있던 실로 와이퍼를 고정한다. 이때 안성맞춤으로 실이 있어서 한두 번 감는 것이 아니라 수십 번 반복해서 감았다.      

“와이퍼 켜봐”     

자신감 찬 큰 목소리로 작은아버지가 말했다.     

“도네. 돌아”     

모두 난리가 났다. 박수 치며 손 부딪히며 기뻐한다. 서로가 내심 어설프게 한 작업이라 생각했는데 와이퍼가 돌아간다니 참으로 신기해했다. 와이퍼는 현재 이런 모양이었다. 차 와이퍼 중간 부분에 실이 질서 없이 왕창 돌려 있는 상태였다.     

또 하나의 벽이 생겼다. 실의 양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운전석 쪽만 와이퍼를 실로 고정하고 조수 쪽은 그냥 그대로 두었다.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아 운전하는 데는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비상등을 켜고 맨 끝 차선에서 천천히 달렸다.      

작은아버지는 너무나도 기뻐하셨다. 와이퍼 수리에 대한 일종의 자긍심의 표현이었다.     

“그놈 잘 버티네.”     

밖에는 비가 온다. 그랜다이저에는 냉방시설은 없다. 창문을 열어 둘 수가 없다. 그 덕에 희한한 냄새가 실내 공기를 압도한다. 창문은 수시로 열어 놓을 수밖에 없다. 더위와 냄새 때문이었다. 아버지도 비가 오기 전만큼 완강하지는 않으셨다. 창문을 열어 놓으니 그 틈새로 비가 들어온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이 아니라 그랜다이져가 젖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뒷좌석은 우산을 받쳤다. 우산 앞 꼬랑지를 이용해서 차량 사이로 고정 시켰다. 뒷좌석에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타고 계셨다.      

“아버지, 우산이 외부에 보이면 그랜다이져 위신이 말이 아닌데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아버지는 우산을 접었다. 그런 다음 창문을 최대한 위로 올렸다. 그래도 안으로 비가 들어오나 보다. 아버지 엉덩이는 자꾸 더 안쪽으로 움직이신다. 작은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산은 접고 엉덩이는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러니 두 분의 엉덩이가 자꾸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엉덩이 좀 치워라.”     

아버지 한마디에 작은아버지는 엉덩이를 차장 쪽으로 옮기듯 한다. 워낙 두 분의 나이 차가 커서 아버지와 아들 관계나 다름없었다. 이런 행위를 반복해 가면서 그랜다이저는 빗길에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래도 이 난리법석 끝에 목적지의 관문인 수원 IC까지 왔다. 이제는 비가 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한다.      

“그랜다이저! 창문 올려”                

더위, 중고차, 와이퍼, 갈비, 이런 단어들이 나오면 이때 일이 생각난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나에게 웃음과 진한 추억을 남기시고 떠나신 듯하다. 차가 생겼다고 참으로 좋아하셨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더불어 값싼 중고차였지만 이렇게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행복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하고 추억해 본다. 이때의 더위를 생각하면서 올해 무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하며 넘기고 있다. 더위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수원갈비

#삼부자갈비

#맵시

#무더위

#에어컨

#냉방시설

#와이퍼

#차량냄새

#곰팡이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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