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보약, 마라톤-‘2007 보스턴’을 꿈꾸다
영화 “1947, 보스턴”을 보면서 나와 마라톤, 보스턴대회에 얽힌 이야기가 떠오른다. 1999년 가을, 고질적인 요통의 해방과 비즈니스를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삼 개월 정도 뛰다 보니 몸과 정신세계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요통도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마라톤은 신이 내린 보약"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 나게 느껴졌다.
마라톤 대회는 일반적으로 달리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신청해서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가 없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대회가 있다. 바로 보스턴 마라톤 대회이었다. 1997년부터 참여자가 너무나도 많다 보니 참가 자격 기준을 두었다. 오히려 이것이 마스터즈에게는 목표가 생기는 꿈의 대회가 되었다.
나 역시 보스턴 대회 참가가 꿈이었다. 보스턴 대회를 참가하기 위한 자격은 나이별로 달랐다. 내 경우 현실적으로 기록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나의 풀코스 기록은 4시간 45분대이다. 기록을 한 시간 이상 단축해야 가능하다. 공부로 비유하면 평소 60-70점 받는 학생이 90점 이상을 획득해야 가능한 수준이었다. 급기야 국가대표 출신 방선희 선수가 감독으로 운영하는 마라톤 교실에 참여했다. 마라톤 학원을 다니는 셈이었다. 마라톤 대회를 삼 개월 정도 앞두고 매주 토요일 오전에 교실이 열렸다. 서울대학교 운동장 또는 과천 관문 운동장에서 모였는데 달리면서 참으로 좋은 환경을 갖춘 장소라 생각했다. 12주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다. 아래는 그때 참여하고 작성한 훈련 일지이다.
중앙마라톤교실: 매주 토요일 오전(12주간)
앞이 방선희 감독, 오른쪽 두 번째가 나다, 트랙 훈련, 장소는 과천 관문운동장
2007년 8월 4일(토) 제1주 차
장소: 서울대학교 내 육상 트랙경기장 경기장 시설 너무 좋음. 내가 꼭 육상 선수가 된 기분.
날씨: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우. 그런 날씨에 뛰었음. 구경꾼이 전혀 없어 다행.
시간: 08:40-11:15
감독 : 방선희(마라톤 전 국가대표)
감독님 본인의 말에 의하면 국내 부동의 1위, 보강 훈련할 때 탄력적인 몸짱을 몇 번 보여준다. 다리가 쭉쭉 찢어진다.
코치: 이수길(1반), 주은희(2반), 형지영(3반)
흡사 우리 학교 때 반 배정하는 방식이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1반, 달리기 못하는 사람이 3반, 난 그래서 당연히 3반. 우리 코치님은 형지영님. 마음이 예쁠 것 같은 여자였다. 96 춘마에서 전체 2위의 기록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때 1등을 방선희 감독이 했다고 한다.
먼저 준비체조를 했다. 평소와 비슷했다. 단지 조금 길었다. 그다음 운동장(400m) 6바퀴 정도 천천히 뛰었다. 이것을 워밍업이라고 명명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참석자가 질문했다.
“기록이 저조한 사람도 워밍업을 해야 하나요?”
코치가 바로 답변한다.
“만약에 다섯 시간의 기록을 갖고 있는 달림이가 있습니다. 이 달림이의 목표가 중마에서 4:30이라 가정합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안 하던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달리는 방법도 달라져야 합니다. 밥만 먹어서는 안 되죠”
워밍업의 중요성과 보강 훈련의 중요성을 거품 물고 강조한다. 운동선수 출신이라 그런가? 아니면 성격인가? 이미 이것이 직업이 되신 분 같은데 열정과 정열이 그냥 느껴졌다. 운동량이 부족한 나에게는 워밍업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본 달리기처럼 느껴졌다. 또다시 스트레칭을 했다. 체조를 먼저 하고 그다음 스트레칭 순서였다.
오늘은 레벨 테스트를 위한 5000m 달리기를 했다. 임시로 짜여진 반을 중심으로 각 반 20명씩 달렸다. 내가 보기에는 전부 고수처럼 보였다. 일단 나처럼 배 나오고 살찐 런너는 딱 두 명 봤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두 명이나 있어서. 아니었으면 난 참으로 외로울뻔했다. 상당수는 아주 날씬한 몸매이다. 산에 가서 암벽 하는 분들의 몸매와 흡사했다. 속으로 한숨 쉬며 깊게 생각했다.
‘기록으로 따지면 난 여기서 꼴찌다. 김영진 정신 차려, 기록이 아니라 몸무게 5kg 줄이기, 알았지? 편하게 마음먹자.’
8 레인은 11바퀴+50m를 뛰어야 5000m라고 한다. 한 바퀴씩 뛰면 코치가 남은 바퀴의 숫자를 불러준다. 엄청 쏟아지는 비를 맞아가며 5000m를 완주했다. 중앙마라톤교실 참가 신청하고 며칠 전 괜스레 장거리를 한 번 뛰었다. 마치 밀린 공부 한꺼번에 하겠다는 그런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오늘따라 무릎이 안 좋다. 사실 무릎이 좋다 해도 기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나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다.
기록: 32:05
평소 연습 기록보다도 오히려 기록이 몇 분 좋다. 그런데도 거의 꼴찌다. 간단하게 다시 스트레칭을 하고 이제는 보강 훈련을 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다시 집합했다. 평소 해보지 못했던 열 가지 정도의 보강 훈련을 했다. 대부분 어색했고 스텝이 맞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감독님이 겁을 준다
“지금 힘드시면 이 주 후의 지옥 훈련은 견디기 힘드십니다”
지옥 훈련?, 아니 웬 지옥 훈련인가 하는 두려움과 함께 ‘중마 교실 탈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는 혼잣말이 저절로 입에서 새어 나왔다.
연습 마무리에 감독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우등생이 되고 싶으면 집에 가서 보강 훈련 숙제를 열심히 해라. 보강 훈련은 유연성과 순발력을 길러준다.”
감독님이 말씀하신 요일별 훈련 스케줄
가운데가 방선희 감독, 왼쪽 첫 번째가 김영진
8/4(토) 제1일 5000m 트랙 달리기
8/5(일) 제2일-90-100분 LSD(장거리 천천히 뛰기)
8/6(월) 제3일(월)-5km 달리기
8/7(화) 제4일(화)-휴식
제4일째 휴식! 이것만은 확실하게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4주간의 훈련 일지
다른 분들과는 워낙 속도 차이가 심해서 늘 훈련 때마다 나는 꼴찌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이름은 알고 있는 것 같다.
1주 차 : 5000미터 테스트,
2주 차 : 3km 워밍업, 5000미터 지속주, 보강훈련
3주 차 : CT(circuit training) : 10개 정도의 운동 종목을 하나의 세트로 구성하여 반복하고 운동 종목 사이에는 빠르게 달린다.
3세트 했습니다. 며칠 동안 움직이지 못함. 풀코스 처음 뛰었을 때의 느낌과는 다르고 군대 유격 훈련받고 다음 날의 몸 상태와 거의 똑같다.
대관령 목장에서 토요일 20km, 일요일 18km, 이틀 동안 38km를 뛰었다. 덤으로 이봉주선수의 연습을 목격했다.
4주 차 : 대관령 삼양식품 목장 전지훈련 토요일 크로스컨트리 20km 일요일 18km 지속주
4주 차 훈련받고 현재 몸 져 누워 있다. 이봉주 선수가 혼자서 이른 아침에 연습하는 것을 봤다. 엘리트 선수도 훈련을 혼자서 하는가 싶었다
내가 숙제를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우리 애들에게 이 글은 보여주지 말아야겠다. 괜히 약점 잡힌다.
5주 차, 토요일 아침에 운전해서 과천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짧게 삼십 분 이내에 도착했다. 과천 관문 운동장은 가운데에 400미터 트랙이 있고 그것을 스탠드 객석이 둘러싸고 있다. 거기다 운동장을 이용해서 나가면 바로 양재천 주로와 만난다. 정말 달리기에는 천혜의 조건이었다. 잠실 보조경기장은 이용료가 있지만 그것마저도 없었다. 과천 관문 운동장을 선택한 이유를 알 듯하다. 교실 구분 없이 참가자 전원이 운동장에 모여서의 스트레칭으로 오늘 운동이 시작된다. 혼자 연습과 확실히 다른 점은 운동 전, 후 스트레칭을 아주 길게 한다는 점이었다.
이제 참가자들이 각반으로 나누어진다. 운동 전에 방선희 감독이 오늘 훈련 인터벌에 대한 설명과 훈련에 대하는 자세에 대해 짧고 간결하고 당차게 이야기한다. 감독은 마스터즈 런너의 욕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마스터즈의 꿈은 써브쓰리 주자도, 써브파이프의 런너도 부상 없이 달리면서 기록 단축하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잘 파악하고 긁어주는 듯하다. 그래서 교실은 매번 문전 쇄도를 이룬다.
오늘 훈련은 인터벌이다. 운동장 400미터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이 훈련이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90초, 100초, 120초, 130초, 140초에 맞추어서 뛰는 것이다. 시작할 때는 그래도 뛸만하지만 이백 미터 지나서는 마의 구간처럼 뛰기가 힘들다. 내가 지금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그냥 든다. ‘너 미쳤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런 사이 사백 미터에 골인하면 숨이 정말 헐덕거린다. 이때부터 다시 몸을 코치 지시대로 팔을 크게 저으면서 천천히 호흡한다. 이때 심박수를 체크하면 보통 160 이상 나온다. 이 정도로 맥박이 격렬하게 뛴다는 뜻이다. 이제 200미터를 매우 천천히 달리면서 가쁜 숨을 고른다. 이것을 보통 회복주라 한다. 이제 1세트 완성이다. 2,000미터 인터벌이면 5세트를 한다. 3,000미터는 7세트 반을 하는 것이다. 기록이 좋은 고수일수록 인터벌 세트 수가 많아진다. 200미터를 그 후 천천히 달려서 회복한다. 이것을 5회 이상 반복한다. 이것을 인터벌 달리기라 명했다.
그다음 훈련은 템포런이라고 해서 삼십 분 정도를 자신의 기록보다 천천히 뛰는 달리기다. 풀코스와 같은 장거리를 꾸준하게 달려 완주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다. 산에서 뛰는 크로스컨트리도 했다. 거기다 숙제가 제법 많았다. 요일별 숙제를 꾸준하게 실천하는 런너와 아닌 런너는 토요일 교실에서 확연한 차이가 드러났다. 마라톤 교실의 효과는 대회 기록을 20분이나 단축한 결과로 나타났다. 4:35, 그래도 보스턴 대회와는 아직도 거리가 먼 기록이었다. 그 후 마라톤 교실을 몇 번 더 참여했지만 기록 단축은 5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보스턴대회 참여는 내겐 먼 길이었다.
내가 소속되어 있던 달리기 클럽에서는 간혹 보스턴 기록에 맞게 뛸 수 있는 런너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대회 참여하는 부탁을 하곤 했다. 보스턴 대회에서는 그 기록처럼 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해서 보스턴 대회를 다녀온 런너들도 제법 있었다. 국내 마라톤 대회에서는 대회 후기 한 번 안 쓰던 런너가 갔다 와서는 보스턴 대회 후기를 사진과 함께 장문으로 올리기도 했다. 그 정도로 보스턴 대회는 마스터즈에게는 꿈의 대회이기도 했다. 보스턴 대회를 다녀온 런너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마라톤 대회가 아니라 축제라고 했다. 한편 풀코스를 100회도 넘게 참가하는 동안 국내 마라토너들이 보는 풍경은 축제 분위기는커녕 교통 통제로 불만을 가진 일반 시민이 경찰들에게 항의하는 모습이라 했다. 거기다 주로에서 응원 나온 사람들도 별로 없다. 그에 반해 보스턴 대회는 주로 에 응원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각종 음료뿐만 아니라 자기 집의 요리를 해서 음식 갖고 나온 가족들도 많았다고 한다. 일반 시민들과 끝없는 하이파이브가 이어진다고 했다. 달리다가 응원 나온 사람들과 사진 촬영도 곳곳에서 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젊은 여대생의 키스존은 현실이었다.
보스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인들과 동호회를 만들고 그 이름을 ‘보스턴’으로 정할 만큼 마라톤의 꿈에 흠뻑 취했던 그 시절에 우리는 참으로 건강하고 즐거웠다.
개봉 첫날 영화 1947 보스턴을 보기 위해 왕십리 CGV를 찾았다. 영화 후반부 보스턴 대회를 압축한 장면은 참 볼만했다. 게다가 임시완 배우가 정말 잘 뛴다. 연기력도 좋다. 좀 아쉬운 점은 국뽕은 버리고 마라톤에 집중해서 구체적으로 사건들을 묘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마스터즈들에게는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2002년에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손기정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그때 나도 문상을 가고 싶었다. 이유는 태극기도 달지 못하고 일본 국적으로 뛰어야만 했던 삶과 그 이후의 삶을 추모하며 꽃 한 송이 올리고 싶었다. 영화는 내가 한때 꿈꿨던 보스턴 마라톤을 소환시켰고 그때의 기록과 경험들은 나의 새로운 꿈과 목표를 다지는데 영감을 주는 자양분이 되었다.
*김영진 마라톤 입문
-1999.9. 중앙서울마라톤 10km 1:10:57
-1999.10. 춘천마라톤 하프 2:29:50
▶풀코스 참가 기록
1. 2000.3.19. 서울 국제마라톤 풀코스 4:56:44
코스 : 광화문에서 잠실운동장,
주최 : 동아일보
2. 2000.10.3. 통일마라톤 풀코스 4:25:37
코스 : 구파발에서 임진각, 주로는 계속 직진만 하면 됨. 무지 지루한 코스, 대회 참가 후기를 주최 측에 제출 제목 "신이 내린 보약" 이것이 은상 당첨되어 30만 원 받음. 글쓰기에 동기가 되었다.
주최 : 문화일보
3. 2000.10.22. 춘천마라톤 풀코스 4:18:06
코스 : 춘천 종합운동장에서 의암호 등 춘천 시내 순환. 아몽인 대거 출전 : 용민형, 문형형, 종욱, 경수, 부부 동반으로,
주최 : 조선일보
4. 2003.11.2. 중앙서울마라톤 5:11:14
코스 : 잠실운동장에서 판교 왕복
주최 : 중앙일보
5. 2004.10.3. 통일마라톤 풀코스 5:15:36
6. 2004.11.7. 중앙서울마라톤 풀코스 5:20:52
7. 2005.11.6. 중앙서울마라톤 풀코스 5:12:55
8. 2006.10.3. 통일마라톤 풀코스 4:39:17
9. 2006.11.5. 중앙서울마라톤 풀코스 4:47:58
10. 2007.11.4. 중앙서울마라톤 풀코스 4:59:13
11. 2008.3.16. 서울 국제마라톤 풀코스 4:42:11
12. 2008.11.2. 중앙서울마라톤 풀코스 5:20:56
13. 2009.3. 15. 서울 국제마라톤 풀코스 5:01:09
* 2009. 11 중앙서울마라톤 30Km 지점에서 연습 부족으로 기권, 처음으로 버스탐
14. 2010.3.21. 서울 국제마라톤 풀코스 5:01:40
15. 2010.11.7. 중앙서울마라톤 풀코스 5:15:20
16. 2011.3.20. 서울 국제마라톤 풀코스 5:31:20
17. 2011.11.6. 중앙서울마라톤 풀코스 5:09:45
18. 2012.3.18. 서울 국제마라톤 풀코스 5:13:48
19.2012.5.6. 소아암환우돕기 마라톤 풀코스 5:27:40
코스 : 반포 산책길 주로에서부터 올림픽대로 산책로를 따라 광진교까지 왕복
20. 2012.11.4. 중앙서울마라톤 풀코스 4:53:38
21. 2013.3.17. 서울 국제마라톤 풀코스 4:42:48
22. 2015.3.15. 서울 국제마라톤 풀코스 4:43:15
▶63km 울트라마라톤 참가
-2006.11.19. 서울마라톤 63km 8:28:52
코스 : 올림픽광장-양화대교 -탄천-올림픽광장
▶산악마라톤 참가 기록
-2012.9.9. 전국 산악마라톤 대회 22Km 춘천 검봉산 봉화산
기록 3:16:33
-2014.6.8. 경수대간 5 산 산악마라톤 대회 청광 종주 26km
기록 5:30 코스 : 청계산, 우담산, 바라산, 백운산, 광교산
-2015.6. 경수 대간 5 산 산악마라톤대회 청광 종주 26km
기록 4:25(아차산, 망우산, 남산 뛰기 등의 연습을 작년 대비 많이 했다. 그 결과 한 시간 단축) 청계산, 우담산, 바라산, 백운산, 광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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