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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서술형 자기소개서

태어나 지금까지 간략한 김영진의 핵심적인 이야기

1964. 11. 03 상왕십리역  건너편에 있는 박산부인과에서 태어남.

 


72. 생애 첫 게임비를 물어줌. 돌을 던졌는데 동네 형 머리가 크게 깨짐.


 


73. 내가 참으로 많이 배운 보이스카웃에 입회함. 이 점 때문에 금수저라 불리게 됨


 74-76. 보이스카웃을 통해서 수많은 산과 여행을 다님. 특히 관악산 캠핑 때 텐트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자는데 남녀 선생님이 어떤 소리 (?)를 계속 내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음. 아침에 일어나니 다른 친구들도 못 잤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관악산, 5학년 2박 3일 동안 종주했던 북한산, 6학년 때 횡주했던 속리산 문장대. 천마산, 산곡 등등


 77. 겉으로 보기에 멋져 보여 성동중학교 검도부에 가입함. 서클이 아닌 선수부였음. 가입 1년 후에 나는 계속하고 싶었는데 검도부 선생님이 그만두고 공부하라고 함. 그만 둠. 공부 안 함


 

78-80. 매일 학교 끝나면 우리 반 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커피와 미숫가루를 큰 대접에 타서 먹고 아주 늦게 돌아갔음. 우리 집이 아지트의 전성시대. 어른이 낮에는 없었고 형은 군대 갔음. 어머니가 세성과학을 운영하던 시절.


 

80-82. 전축판(=레코드판) 모으고 닦는 것으로 사춘기를 달랬음. 남들 다하던 미팅 한 번 안 했음 무척 후회하고 있음. 그래서 주말에 매우 외로웠음. 그러다 밤이 되면 데이트하다 들어온 친구들 이야기 듣느라 엄청 바빠음.


 

83. 신체검사를 받음. 어금니 관계로 군대는 방위 또는 면제였지만 가겠다고 우겨서 현역 판정을 받음. 왜 이런 짓을... 그 당시 어금니 5개= 방위, 7개=면제,  사학의 명문 대성학원 입학함. 명문이어도 재미없음. 


 

84. 3. 아주대학교 아몽극회과에 입학함. 대학 생활 전공을 최대한 살렸음. 뭇 여성들에게 연애편지 좀 받았음. 아직도 잘난척하려고 보관하고 있음. 이때 연극 기획과 관련된 일을 많이 했고 "기획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음.  김영진의 첫 번째 화양연가 시절 


 

87.2-89.4 제1기갑여단에서 문 지켰음. 대통령 선거 때 일병이 아무것도 모르고 노태우가 아닌 다른 후보 찍는다고 말했다가 군대 생활 피곤하게 했음. 14개월 동안 외박, 휴가 금지 당했음. 88년 휴가를 89년 제대할 때 한꺼번에 나왔음


 

89-93. 공부로 승부를 보겠다고 정신 못 차렸던 시절.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고시원 시설을 조금 좋게 해서 사장을 하면 오히려 승부가 빠르겠다는 것. 이때 펜션과 부동산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김영진의 첫 프로기획 작품, 제1회 지방자치 선거 성동구청장 후보 포스터 


94. 나 자신을 확실시 깨닫고 생애 첫 직장에 취업함. 그곳에서 조선시대식 데이트로 지금의 아내 초등학교 후배 김창호를 만나서 결혼함. 결혼 결심까지 딱 2개월. 결혼까지 7개월, 처갓집은 알고 보니 우리 집과 아주 가까운 거리. 장인어른은 동명초등학교 선배님


 

94.11. 21 첫 신혼여행-푸껫. 푸껫에서 가이드를 두 시간이나 기다림. 어디서 기다려야 하는지도 몰라 공항 인도에 앉았음. 찾기 쉬우라고. 이때 정말 힘들었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바디랭귀지를 이때 처음해봄. 


 

94. 12. 아버지 파킨슨 씨 증후군과 치매로 돌아가심. 병환 중에 사람들이 아버지를 우습게 보는 것이 가장 싫었음..


 

95. 9. 후배와 집에서 술 먹고 있는데 아내가 배 아프다고 얘기함. 원래 임신 중에는 아픈 거라 말하며 달래서 더 자게 함. 그런데 또 아프다고 함. 조금 더 달랬음. 이런 반복이 몇 차례 흘러간 뒤 선우 충무로 제일병원에서 태어났음.


 

96. 배울 것이 아직도 있다 생각해 다시 대학에 진학함. 숙제를 아내가 선우 키우면서 대신했음.  그것도 내 등쌀에 못 이겨 완전히 억지로 했음. 그래도 50%는 내가 했음.


 


97. 선경 태어남. 선우 때와 똑같이 반복함. 선우외할아버지와 같은 병원, 같은 식당, 같은 소주로 축배를 듬. 일본 도쿄 완구 전시회를 감, 그곳에서 애초 계획과 달리 즉석인쇄편의점을 보고서 바로 상왕십리역에 창업 준비에 들어감

지금의 모태가 된 프린트하우스를 만듦. 처음에는 일만 저질렀음. 경험 부족. 아는 것 부족. 인력부족, 돈부족 하여간 부족 전성시대였음.


98. IMF와 함께 직원 4명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지경에 이름


99. 운동이라고는 몰랐던 내가 마라톤을 접하게 됨. 접대 차원에서.^^제1회 중앙일보 마라톤 대회 10km 부문 참가 1:15 완주, 


 

99. 프린트하우스를 세성애드컴으로 개편함. 벼랑 끝 전술로 1층 매장을 과감하게 없애고 2층 사무실만 유지함. 즉석인쇄편의점은 버리고 기획사로 변신을 선택함


 

00. 아주대학교 연극반 아몽 OB가 모여 연극을 했다. 제목 닐사이 먼 작 '굿닥터' 옴니버스 형식이어서 직장인들이 하기에 시간 안배가 좋지 않을까 싶어 선택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연습, 좀 지나면 두 번, 공연이 가까워지면 매일 연습을 했다. 그렇게 해서 걸린 시간은 약 팔 개월,  학교 때처럼 기획과 막판에 단역배우를 했다. 공연 장소는 대학로 정보소극장, 하루 대관료 오십만 원이다. 무료 관람, 매회 만석을 이루었다. 내가 잠시 출연하는 물에 빠진 사나이, 무대에서 두 배우가 레슬링을 하는 치과의사가 지금도 생생하다 /마라톤 풀코스 첫 완주 4:10- 이 기록이 앞으로도 생애최고의 기록으로 남을 것 같음. 내게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불멸의 기록임


 


99-02. 주식이라는 요상한 것을 지인 통해서 만나 강남 아파트(=25평) 한채 날렸음. 지금도 복수하고 싶지만 그러다가 더 날릴 가봐 마음을 달래고 있음. 그놈의 작전과 보증 때문에...^^


 

02. 연극반 OB가 모여 또 연극을 했다. 작품명 레이쿠니 작 '라이어' 장소 마포문화체육센터 750석, 기획에 입장에서 대관하기가 나름 수월해서 선택했다. 장안의 히트가 된 작품을 선택했고 무엇보다 연습할 때 진지하지 않아서 고른이유도 있다. 사실 이때 나는 연극을 하면서 나의 연극을 할 때이다. 연습시간은 1회 굿닥터와 비슷한 팔 개월이다. 연출에 잦은 결석으로 힘이 들었다.



03-04.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음. 입원과 퇴원을 한해에  네 번씩 반복.  당뇨합병증과 더불어 인지장애증이 발병했음. 아버지 경험을 비추어 매우 가슴이 아픔. 마치 주위에서 권력을 잃은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이 가장 힘듦.


 

04.7.30 우리 사무실을 본가 집의 건물로 이사 옴. 그래서 집과 회사의 출근 시간이 1분. 고로 더 게을러졌음. 매일 지각함.



05.04. 01. 엄마 돌아가심. 이때 병원에서 아침저녁으로 보냈던 몇 달의 시간들이 지금도 거울처럼 보임. 엄마 담당의사에게 편지도 써보고 떡을 만들어서 돌려도 보고. 엄마에 대한 감사의 차원에서 49재 때 추모집 제작, 동영상은 사촌동생 종헌이가 내 미니홈피를 보고 자발적으로 만들어 줌 /세성애드컴 개인사업자를 (주)디자인세성 법인으로 변경



05. 엄마의 유지를 받들어  마장동 497-12 외 14필지 공유지분할을 시작함. 법무법인 태평양에 의뢰 사비 삼천만 원을 투자라 생각하고 일을 벌임. 아내에게 이해를 구함


 

06. 6 생애 첫 지리산종주 아내와 함께.(2박 3일) 누군가 마라톤 풀코스 완주와 지리산 종주를 비교했는데 실제로는 종주가 조금은 여유가 있었음. 먹으면서 걸어도 되고 시간도 여유가 있고.


 

06. 10 울트라 마라톤 63km에 도전하여 간신히 완주함. 선우가 손수 그린 멋진 완주증을 줌.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뒤풀이 맛 때문에 뛰는데 이날은 뒤풀이에서 거의 먹지 못함. 이틀을 몸살로 앎음. 다시는 이런 무모한 도전을 안 하겠다고 가족들과 굳게 약속함. 


 

07. 처갓집 식구들과 많은 대화와 술을 먹었던 시대. 오 남매의 큰사위, 큰누나 자주 만나지만 진전 없는 대화에 조금 지치기도 했었음. 그래도 큰 매형 큰 형부니깐...


 

07.10 성동 CEO 아카데미 1기 수료. 그냥 단순한 성동구상공회 아카데미 수료가 많은 파급을 일으킴. 그 후 이 모임은 경성라이온스클럽, 성동효사랑, 성동청소년지도협의회, 성동구상공회, 문화예술위원회  등으로 여러 모임의 모태가 됨. 여기 1기에서 이호근형님과 이상길형을 만나게 됨


 

08.05 얼굴도 몰랐던 초등학교 친구들과 매우 친하게 됨. 그저 신기할 뿐. 지금도 가장 가깝게 지냄. 여행계도 하고 진짜 계도하고 산도 감. 


 

08. 7. 가족이 처음으로 해외여행(사이판)을 다녀옴. 황새들과 같이 다녀와서 뱁새에게는 지출이 너무 과했음. 해외여행 한 번으로 몇 달 동안 굶었다는 전언. 그러나 아주 가끔 가족 여행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낌.


 

08.8. 큰 마음먹고 돈 좀 들여 사무실 리모델링함. 특히 화장실 공사에 거액을 지불함. 낮보다 밤이 바쁜 생활이 계속적으로 이어짐. 


 

09.01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전혀 취미에 맞지 않은 골프를 시작함.


 09.3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외삼촌이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심. 나의 외삼촌은 나름 유명 탤런트 '용의 눈물' 주인공 김흥기 님


 09.08 드디어 골프 머리 올렸다. 그러나 나는 바로 내려야겠다 마음먹음. 대타로 아내를 훈련 시킴. 그랬더니 사람들이 나와 아내를 비교하는 통에 더욱 짜증. 


09.10 사무실의 공적인 모든 부채를 다 갚았다. 이제 (주)디자인세성 빚은 없다. 


 09.11 아이들이 결혼기념일날 인상적인 이벤트를 연출했다. 무대연출 꽃, 선물, 그리고 감사의 메시지까지 “영진이는 좋겠다. 창호와 결혼해서” 


 10.5 평소 꿈이었던 연극 무대에 배우로 무대에 올라갔다. 옴니버스 형식의 연극에서 1인 4역을 했다. 이 연극을 위해 극단 아몽을 설립하고 대표를 맡음. 모태는 아주대학교 연극반 아몽이다. 첫 번째로 성동구 아마추어 문화예술지원  받음. 왕십리 오백석  소월아트홀에서 5월 13일-16일까지 장진작“택시드리벌” 우리 아이들도 나와 더불어 단역으로 무대에 같이 서다. 특히 토요일, 일요일 오백석을 만석을 이루었음, 아몽 OB공연의 전통처럼 연출이 사라졌다. 용민형이 대타 연출을 열정적으로 진행했다.


 

10.6 지방 선거를 맞아 선거기획을 열정적으로 몇 달했다. 그러나 나의 후보는 낙선. 낙선되면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 


 

10.10 동명초등학교 동문 운동회 기획을 했다. 무난하게 치루어서 다행이었다.  약 350명 참여한 운동회, 시간 투자는 몇 달 했다. 


 

11.08 장인어른 장모님과 함께 백두산을 다녀왔다. 떠나기보다 두 분의 등산복 등 옷 준비가 참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와 백두산 종주. 백두산 17km 9시간 산행은 내 머리와 눈에 오랫동안 저장 될 것 같다. 천지의 모습은 입을 딱 벌어지게 하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12.05 우리 가족끼리  대마도를  여행했다. 대마도는 우리 땅이 분명함을 알았다. 부산과 가까워도 너무나도 가깝다. 그런데 대마도인들은 참 불친절하다.



12.09 장모님 칠순잔치를 했다아내의 기획으로 인상적인 칠순잔치를 했다무려 2주 동안의 기획콘셉트 첫 돌잡이처럼 '칠순 잡이'라는 콘셉트와 매우 자세한 친척 어르신 소개.


13.6 선우 대학 입시와 관련해서 자기소개서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됨자기소개서라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이나 어려움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13.12 선우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합격그 기쁨이 생각보다 크다주위에서 밥을 사라는 제안으로 인해 오십일 정도 단체 모임은 제외하고 내가 참석하는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계산을 거의 다했다그래서 정작 대학입학 할 때 등록금이 부족.


14.6 강남 5 종주 26km 산행 5: 30 완주(청계산-우담산-바라산-백운산-광교산

참가자 200명 중에 115등을 했다나의 마라톤 도전 성적 중에는 최고의 성과였다그러나 산악으로 26km는 생각보다 무척이나 지루하고 길었음. 다음 해에도 참석해서 완주 시간을 약 한 시간 줄였다. 


 14.6 국제라이온스 협회 354-D지구 서울경성라이온스클럽 회장에 취임아주 괜찮은 사람들과의 의리와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 회장에 오름.


 14.9 서울역사박물관이 주최하고 청계천 문화관에서 전시된 '서울푸줏간 전'에 마장동 4대 토박이 김씨네 우리 집 이야기가 소개그래서 우리 집안의 문서와 자료등이 삼 개월 정도 전시 되었음


 14.11 ‘응답하라 1994’라는 콘셉트로 아주대학교 84 홈커밍데이 행사를 기획했다내가 안 해보았던 기획 분야의 일이기도 해서 두 달 정도 열정적으로 빠져들어 일했음. 결과는 대만족.

이때 다름의 기획을 하기 위해 다른 대학의 홈커밍데이 전혀 참고하지도 보지도 않음이것을 계기로 주변에서 행사 기획이 체질이라는 소리를 듣게 됨.


 14.12 대학을 안 가겠다고 선언한 선경이가 약관 18 살의 나이로 LG하우시스에 합격을 했다해마다 나에게 선우, 선경이가 즐거움을 주고 있음


 15.1 성동구상공회 부회장 겸 기획운영위원장을 맡게 됨회장이 초등학교 9년 선배이고 나와 동문회에서 일했던 경험이 바탕이 되었음그래서 1년 동안 상공회를 실질적으로 기획해서 이끌어 감. 산악회를 문화동호회로 개편, 산악대장에서 패러디해 문화대장으로 스스로 임명


 

15. 2 sbs 생활경제뉴스 프로그램에 마장동 토박이 김영진이라고 칠 분 삼십 초  소개되어 방송을 타게 되었다녹화 촬영 시간은 무려 여덟 시간이었다. TV에서 보았다고 전화 무척이나 받음, 또한 성동문화재단에서 주최한 꿈꾸는 연극교실에서 성동가요제에 출연한 마장동 토박이 김 씨 가수로 등장해서 영진이 메들리를 부름. 나름 열광적인 반응을 받음



16.02 보청기 국내 1위,  스타키 그룹 20주년 행사를 기획함, 장소는 왕십리 디노체컨벤션 약 한 달 정도 야근함. 이것이 바탕이 되어 스타키와 굳건한 협력 거래처 관계가 오늘날까지 이어짐/ 친구들과 대마도를 감, 또 한 번 대마도 사람들의 불친절함에 매우  놀람


17.02 경희사이버대학교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1기 전체 수석으로 입학, 비결은 자기소개서의 완성도 때문에. 원우생들은 대부분 문화예술 전문 작곡가, 음악가, 예술인, 대학 때 안 했던 공부를 뒤늦게 함. 비문화예술인이 5학기 중에 3학기를 장학금 받음/ 친구들과 태국 방콕과 파타야 여행, 부부여행계를 만들어 백령도 투어를 함, 백령도는 군인의 섬이고 접근하기가 참으로 힘든 섬



18.03-22.10  마장도시재생 상생협의체 주민 대표 맡음, 이유는 우리 동네가 주택가에  축산이 점점 더 침투하고 동명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아이들이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며 오지랖 발동/ 박원순시장이 창설한 경제공동체 위코노믹스 성동지회 회장 취임/ 친구들과 북해도 여행을 감, 해산물 음식은 정말 풍족하게 먹었음. 부부여행계 첫 해외나들이로 괌을 감



19.01-22.12  서울동명초등학교 동명산악회 회장 취임, 동문회장님이 아내를 만나서 세 번 설득함. 그 정성과 노력으로 맡게 됨, 해외여행을 일 년에 네 번씩이나 함, 장가계, 항주, 대만, 베트남 다낭



20.02 코로나로 매출 급감, 구청에서 선별진료소 사업을 맡아서 진행함, 오히려 매출 상승, 절을 운동 삼아하다가 급기야 원형나팔관이 손실됨, 무릎 시술받음



21.08 경희사이버대학교대학원 문화창조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졸업, 졸업하기 위해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 집중함. 



21.12 마장주민자치회 회장 취임, 직선제로 직접 위원들이 각 후보에게 투표함. 주변의 지인들의 도움으로  당선. 


22.09 디자인세성 창립 25주년, 회사 창립이래 최대 매출 기록 '성동다시놀자' 축제 기획 등 다수의 행사를 기획함, ' 고민을 기회로' 협동조합 고기연구소 창립 사업이사로 등기됨, "오래든든" 콘셉트로 마장축산물시장 고객센터 전시장 기획, 우리 건물 3층  마움갤러리로 명명, 부부여행계로 울릉도 투어, 울릉도 땅값에 무엇보다 놀람.



23.01 마장 497-12 외 14개 공유지필지, 공유지분할추진위원회를 구성, 통장은 내 명의로 모임 통장으로 개설. 각 공유자에게 평당 25,000원씩의 측량비를 받아서 개별분할을 위한 기초 작업이 시작됨. 모든 진행은 법원에서 함, 나의 마장에서의 모든 활동은 공유지분할을 위함임. 분할을 위하여^^


01-03 부정맥 시술을 서울대에서 연거푸 두 번 받음. 그 결과 그전에도 멀리하기 시작한 술과의 인연을 놓음, 또한 가을에는 척추협착증 발생, 발저림 현상과 엉덩이 아픔으로 인해, 서울대병원, 동네재활의학과, 한의원등을 다님, 하루에 보통 주사로 35만원의 비용 발생, 그러나 효과는 별로 없음


10. GTX-B가 우리 집을 통과하게 됨, 마장 GTX비대위 구성, 내가 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됨


12. 마장주민자치회장, 동명산악회장, 위코노회장 등 수많은 직책을 내려놓음


24. 01. 척추협착증 수술인가? 치료인가? 고민 끝에 처제가 소개해준 잠실새내역 나비솔한의원에서 교정 같은 치료를 받음. 매일 가다 일주일에 세 번, 일주에 두 번, 수술을 안 해도 될 것 같음, 왼쪽으로 기울어진 내 몸이 바로 서고 있음. 무엇보다 걷는 것이 편해졌음.

 

02. 마카오 여행을 다녀 옴. 베네치안, 파리, 런던,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곳.

05. 경기불황을 임대, 회사 도처에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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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축산물시장고객센터 포토존








이 건물 3층이 마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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