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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묻다가 삶을 찾다

"살아 있는 지금, 가장 나답게"

by 플레이런너

최근에 형이 많이 아프다. 투병하는 형을 보면서 생각 하나가 내 머리를 스친다.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가야 할까?"

삼십 대의 어느 날,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그것이 내가 처음 목격한 죽음이었다.
우리 가족은 급하게 마석에 땅을 마련해 아버지를 모셨다.
사십 대에 접어들 즈음, 어머니도 오랜 당뇨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누나가 미리 준비해 둔 병천의 공원묘지에 묻히셨다.

훗날 아버지가 계시는 마석 묘지는 개발이 시작되어 이장 후 어머니와 곁에 모셨다. 시간과 환경 앞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산소자리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는 장인어른께서 폐렴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다행히, 장인어른은 경기도 광주의 오래된 선산에 뿌리를 내리셨다.
정해진 자리가 있다는 것이 남은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한편, 최근 만난 나의 선배는 카페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미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했다. 자연 속에 뿌려달라고 한다. 어디에 묻히기보다는 그냥 자유롭고 싶다고. 그리고 죽음 이후보다는 현재를 잘 살고 싶다고.

예전 같았으면 가볍게 넘겼을 그 말이, 왠지 이번에는 내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어디로 갈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우리 가족만의 선산을 만들고 싶어 하셨던 것을 떠올렸다.
사촌 형은 형제들과 함께 가족 납골당을 마련해 후손까지 대비했다며 말한 적이 있다. 우리도 따라 해야 하는 것인가?
며칠 전, 오래전 가입한 생명보험을 정리하자는 설계사의 제안을 받았다.
이유는 현재의 보험이 80세까지 매달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최소한만 유지하고 해지해서 필요한 다른 곳에 투자하라고.
“지금의 나를 위해 해지할 것인가? 아니면 훗날 나 없이 남은 이를 위해 유지할 것인가?”

죽은 뒤 안식처를 결정하는 일은 어쩌면 보험과 같을지도 모른다.

죽음은 결국 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나의 사후는 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내가 죽고 난 후를 걱정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오히려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막연한 채로만 둘 수는 없다.
큰 방향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나도 선배의 생각에 닿았다.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렇다. 죽음은 나중의 일이지만, 삶은 지금의 것이다.

기억난다.
몇 해 전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본 영정 사진.
놀랄 만큼 젊고 밝은 모습이었다.

"우리 아버지 삶의 르네상스는 50대 중반이었어. 그래서 그 시절 사진을 골랐어."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르네상스'—
그것은 한 개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을 뜻했다.

나도 결심했다.
언젠가 영정 사진을 고를 날이 오더라도,
내 삶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남길 수 있도록.

잘 먹고, 잘 웃고, 잘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겠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그리하여 떠나는 일 또한,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도록.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야겠다.
가는 길이 어디가 되었든.
나는 나의 르네상스를 품고 떠날 것이다.

ChatGPT Image 2025년 4월 23일 오후 06_31_22.png 챗gpt가 그린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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