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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는길 Jun 22. 2023

평범한 하루의 근사한 변신을 위해  

프롤로그. 소박하고 누추하지만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평범하고 소소한 물건에서 찾는 행복과 의미 

10년만에 다시 만난 책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가득>


번아웃, 그것이 나에게 왔다. 매해 겨울이 되면 찾아오지만 이번에는 좀 세다. 

작년에 혹시 내가 세 명이었나 싶을 정도로 창업 이후 최대의 일과 매출을 올리면서도 틈틈이 예견된 번아웃을 대비해 심리 상담, 명상, 여행, 공부, 혼자만의 시간 등등 노력을 했지만 속수무책이다. 

겨울이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봄을 지나 여름으로 접어들어도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삶을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 한창 자라는 아이들, 소비자 만족을 위해 해야 할 일에 관한 모든 것들, 세상의 변화, 외로움과 같은 일을 생각하면 한없이 불안과 고통이 밀려올 때가 있다. 

작가 김훈의 말처럼 '말을 듣지 않는 말을 부려서 목표를 향해 끌고 가는 나가는 노동의 나날이 계속되지만 이런 수고로움을 길게 말하는 것은 너절하다' 


문득 생각난 책 한 권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가득>.  10년 전 작은도서관 실장을 할 때 제목을 보고 신청해서 읽었던 책인데 왜 이 책이 생각났을까? 도서관을 뒤져도 없고 검색을 해보니 중고서적으로 800원에 판다는 판매글이 있어서 구매버튼을 눌렀다. 고맙다! 오랜 시간 나를 기다린 800원짜리 책이라니! 


나는 몇년 째 여성들과 함께 독서 모임을 하며 인문학 책을 늘 읽고 있는데 숙제로 읽어야 하는 책 옆에 두고 읽는 간식 같은 책들이 있다. 눈이 맑아지는 사진과 이야기가 담긴 여행 책, 살림 책, 공예 책, 미니멀 책 같은 쓴 사람의 손때가 묻어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책들. 이 책도 그중의 하나였는데 지금 내가 매일매일을 힘내서 살기가 어려워서 이 책이 생각난 것이었을까? 


책은 65가지 작고 소박한 이야기를 통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따뜻하고 기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반짝 반짝 창문 닦기, 서랍정리, 추억이 깃든 물건, 작고 귀여운 걸레 만들기, 파우치 아플리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박하사탕, 어머니의 깨절구, 고양이, 추억이 담긴 머그컵, 소중한 것이 들어있는 비밀의 초록벽장 등등 작가의 소박한 일상과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읽으며 미소를 짓는다. 작은 일도 야무진 손끝으로 최선을 다하고 으쌰!하고 힘내게 하는 작가의 에너지가 있다. 


책을 읽으며 이 제품은 어디 거지? 감성 돋는 이런 디자인은 어디서 살 수 있나? 하며 검색도 해보고 가구 장인이 만들었다는 목기와 특별한 무쇠 프라이팬을 만나면 부러움이 샘솟기도 한다. 이 부러움은 영롱한 진주 목걸이와 부부가 쓰는 상아로 만든 젓가락에서 극에 달했다. 상아 젓가락의 케이스는 밤나무(작가의 이름 구리하라가 일본어로 밤나무의 뜻도 있다고)로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해 자개 장식을 했다. 따라 할 수가 없는 저 너머의 세계 사람을 보는 허탈함 같은것도... 그래서 책을 쓰는 작가가 아니겠는가. 


나의 주변은 소중하게 간직할 만한 물건이 있는가? 나는 내 물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있을까? 있으니까 쓰고, 필요하니까 샀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않았을까? 물건과 생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무의식적으로 살아왔던 나에게 의식적인 전환을 하게 만들었다. 귀찮다고만 생각했던 집안일 하나 하나에도 의미를 불어넣어 보고 소소한 물건에 깃들어 있을 특별한 추억 같은 것도 생각해 보자. 

  

행복은 아이들을 다 키워냈을 때, 아파트 대출을 다 갚았을 때, 내가 여행을 가야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내 옆에 있는 물건들과, 사람들과, 내게 닿아있는 햇볕과 내 코로 들어오는 공기와 바람 어디라도 스며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샅샅이 보고 호흡을 깊게 하고 느끼며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랑할 만한 나의 살림살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또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냉장고에 붙여둔 아이의 그림, 아침 산책에서 만나는 나의 숲, 남은 천이 아까워서 이어붙인 조각보 파우치, 밤마다 집중력이 필요할 때 마시는 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 느껴지는 우리 고양이 구름이, 하나씩 찾아보기로. 없으면 이제부터 나만의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만들어가기로. 

아, 그리고 눈이 시원해지도록 아름다운 사진도!


그리하여 이 글이 마무리 될 즈음 지금 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수많은 의미들이 생기고

행복도 어느틈에 슬며시 나에게 다가와 있기를.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더 근사한 사람이 되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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