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고백한다. 사랑해! 고마워!
아이들은 시골에 와서 제일 하고 싶은 일이 '강아지 키우기'였는데 맨날 두 남매는 있지도 않고 키울 생각도 없는 강아지 이름을 짓고는 했다.
"누나는 강아지 이름을 뭘로 할 거야?"
"응 난 뽀삐! 뽀삐야 뽀삐야! 하고 부르면 예쁠 것 같아! 넌?"
"난 뉘우침이라고 지을래."
"왜????"
"강아지 이름을 뉘우침아! 하고 부르면서 맨날 자신을 뉘우칠 수 있잖아!"
아이들 말소리를 들으며 뉘우침? 글자와 뜻을 알기는 하지만 써본 적은 없는, 흥부와 놀부에나 나올 것 같은 뉘우침. 심지어 내가 생각한 그 글자가 맞나 검색도 해본다.
강아지 이름을 "뉘우침아!" 하고 부른다면 매일 성찰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상상 속 강아지와 고양이들 이름은 매일 바뀌었지만 결정권자인 나는 집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울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털, 냄새, 청소, 책임감, 아플 때 병원, 정서적 보살핌, 키우다가 죽기라도 하면 그 슬픔은 어쩔 것이냐! 그러니 애초에 시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굳은 일념 같은 것이 있었다.
어느 날 친한 언니가 횡성 어디를 산책하다가 버려진 고양이가 비닐하우스에 한 달째 묶여 있는 것을 봤다고 혹시 데려가 키울래? 하는 연락이 왔다. 물론 단칼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철기둥에 묶여 있는 고양이가 안 됐기도 했고 시크한 인상이 어째 우리 딸이랑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제 추워지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몰랐으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미 알아버린걸... 강원도의 매서운 추위를 생각하면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아주 언젠가 올 인연이 지금 왔다고 생각하며 고양이 케이지를 하나 사서 고양이를 데려왔다.
늘어난 일거리 때문에 내가 나를 돌보지도 못하는데 고양이라니.. 하고 투덜댔지만 한두 달 같이 살아보니 고양이는 키우고 보살피는 존재가 아니다. 조용하고 느릿느릿 알아서 잘 지내다가 마음이 동하면 다가와서 털을 스르륵 스쳐주는 도도하고 시크한 사랑표현이라니! 노트북 옆에 앉아서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일감인 원고 위에 누워 정신없이 잠들어 버리기도 하고.
가족끼리 모여 간식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면 기를 쓰고 달려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나 빼고 다 모인거냥? 하는 눈빛으로 정 가운데 자리 잡고 존재감을 뿜어댄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혹시 얘가 나를 돌봐주고 있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평소에 큰 아이랑 같이 자는 구름이는 내가 속이 상한일이 있어 훌쩍훌쩍 울거나 끙끙 앓고 있으면 어느새 내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와 잠을 잔다. 마치 나를 보살펴 주는 것처럼.
따뜻한 구름이와 자고 나면 몸과 마음이 솜털처럼 가뿐하다.
"엄마! 내 인생은 구름이가 오기 전과 후로 나뉘어. 구름이가 있어 너무 행복해!"
"엄마도! 우리 구름이는 아무래도 천사인 것이 분명해!"
"우리는 개 이득이 아니라 고양이 이득을 보고 있어!"
매일 '사랑해!, 고마워!'를 고백하게 만드는 구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