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진단기
나는 가끔, 아니 꽤 자주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곤 한다. 꽤 잘 썼다 싶으면 혼자 감탄할 때도 있다.
앞서 쓴 '내 지각에는 이유가 있다.'를 다시금 읽으며 나는 새로운 감회에 젖었다.
아니, 이렇게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으면서도 아직까지 큰 문제없이 살았다니!
시선이 뒤집히니 어쩐지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차근히 생각해 보니,
내 안의 뿌리 깊은 충동성이 결제내역을 빼곡히 채워도 남의 것을 탐 내 양손에 쇠팔찌를 두르는 일을 만들진 않았다.
자주 지각을 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강제성이 부여되면 결국엔 쳐진 몸을 일으켜 나가곤 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뒤이어 이런 생각도 했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정신이 사납긴 하지만 홀로 있어도 지독하게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섞인 장난감 박스처럼 복잡하지만 가끔은 그 안에 든 슈퍼맨이 기가 막힌 해결책을 들고 튀어나오기도 했다.
친구들은 내가 내뱉는 엉뚱한 이야기를 비웃었지만 나는 개중에서 웃음코드가 맞는 단짝을 한눈에 꼽아낼 수 있었다.
쉽게 포기하는 덕에 실패의 경험이 많아 쓰라리지만 동시에 안 맞는 일에 매달리느라 시간을 버리진 않았다.
요리대회 심사위원처럼 한 입 먹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패스! 를 바로 외치는 느낌이랄까.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이렇다. 어떤 심리전문가가 장점이라는 건 단점과 한 몸처럼 붙어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맞다. 이 모든 것이 나쁘기만 했으면 어느 시점에 난 아무렇게나 살기로 포기를 작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주 다행인 것이다.
이전에 나는 뭐 하나 끝내는 것 없이 이것저것 건드리는 실패자라고 자책했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혼돈 속에서 내 자리를 찾기 위해 참 치열하게도 살았다. 좋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려고 애쓰는 스스로가 갸륵하다.
ADHD엔 완치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겠지?
내가 ADHD라는 걸 알게 되어도 세상은 똑같이 흘러간다. 여전히 지각하는 나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볼 것이고, 쉬운 포기에 의지가 없다고 할 퀼 것이며,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에 한심하다고 혀를 찰 것이다.
이에 근심하며 세상을 떠날 수도 없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등질 수도 없으니. 여전히 내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아주 다행히도 나에겐 다년간 축적된 '나' 데이터와 얕지만 너른 자신감이 있다. 적절한 현실자각적 체념과 철저한 자기 분석이 있다면 여태껏 버텨온 것처럼 유연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한심한 존재라는 생각에 빠져있기보다는 단점 뒤에 맞대어진 장점으로 세상을 뒤집어내고 싶다.
넘치는 생각들로 잠 못 이루기를 택하기보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를 글자를 끄적이고 있는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