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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은 변하지 않았다

두 달 동안 매일 만 보를 걸었더니......

by 바람

아이의 겨울 방학이 끝나는 날 체중계에 올랐다. 지난 두 달 동안 마음은 늘 체중계에 발을 올리고 싶었지만 지금 이 순간의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그 유혹을 애써 참았다.


둥둥 두두둥 둥둥 두두둥~~(의학 드라마bgm)


그러나 체중계가 알려주는 두 자릿수는 늘 내가 알던 그 두 자릿수였다. 나의 체중이라고 알려주던 숫자 두 개가 그대로였다. 십의 자리 숫자가 변하는 것을 바라진 않았으나 일의 자리 숫자는 분명 달라졌어야 했다. 체중계에 오르고 내리길 여러 차례 반복해도 숫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큰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니다. 원래 숫자에서 2 정도만 빠지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디지털 체중계의 각진 숫자가 오늘따라 더 각져 보인다.


아이의 방학은 부엌일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에겐 참 고되다.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챙겨서 준비하고 먹이고 치우고를 반복하다 보면 좀처럼 부엌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오후에 두 시간 정도 아이가 학원가는 시간에 앞치마와 고무장갑은 걸어두고 편한 옷에 운동화를 신고 무조건 집을 나왔다. 집안일에서 해방이었고 엄마로서도 벗어난 시간이었다.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주욱 늘어선 산책로지만 집 안보다는 훨씬 좋았다. 차가운 겨울바람도 금세 익숙해졌다.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쉬었겠지만 자연에서 천천히 걷는 쉼이 훨씬 좋았다. 사실 체중 감량을 목표로 걷지는 않았다. 집 안을 벗어나서 이것저것 생각하며 걷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향형인 나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채우는 성향이라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매일 만 보를 걸으며 에너지를 채워나갔다. (솔직히 에너지를 채우고 살은 빠지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매일 걷던 그 길에 지금은 따뜻한 봄바람이 찾아오고, 비록 체중감량에 실패했지만 나에겐 긍정적 기운과 에너지가 채워졌다. 새 봄을 맞을 충분한 체력과 정신력이 따라왔다. 내 몸의 숫자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 몸의 상태는 분명 달라졌다. 겨우 두 달로 이런 변화가 찾아와 주었다니 2023년 내내 이 시간을 유지한다면 어떤 변화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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