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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심리 상담사

말 많은 사람 대처법

by 바람

남편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우유부단한 나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명확하게 알려주고, 고민이 있을 때는 다방면의 선택지를 상세하게 설명해 줘서 해결이 쉽도록 도와준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 소재가 생기면 신이 나서 쉼 없이 이야기한다. 그 점이 참 좋았다.


나는 듣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와 일대일로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과 가볍게 대화하는 것도 즐기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나를 이해받는 과정을 참 좋아한다.


말하기 좋아하는 남자와 듣기 잘하는 여자의 만남은 명작동화의 결말처럼 행복한 결혼으로 끝났다.


하지만......


결혼 후 15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의 이야기를 즐거워한다면 그것이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고백한다. 나의 삶은 동화가 아니라고......


최근 야근이 잦은 남편은 오전 시간에 여유가 생겨서 나의 운동길에 따라나섰다. 대화의 대부분은 남편이 좋아하는 경제 관련 뉴스와 챗GPT, 유튜브로 공부하기 등이었다. 모두 내가 관심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한 명의 일방적인 말하기와 한 명의 고된 듣기였다.


며칠간의 반복된 듣기에 지친 나는 11살 딸에게 장난 삼아 고민을 털어놓았다. (역할 놀이가 시작된 거다.)


"선생님, 산책을 나가는데 남편이 재미없는 말을 끊임없이 해요. 듣는 사람의 반응은 살피지도 않아요."


"손님, 남편분이 자주 그러시죠? 네 저도 잘 알아요. 남편분이 말을 많이 할 때 손님은 어떻게 하세요?"


"응응, 하고 대충 대답하죠."


"대답을 하면 안 되죠. 대답을 하면 잘 들어주는 줄 알아요. 산책 나가자마자 손님이 먼저 말을 시작하세요. 대화의 주도권을 남편에게 주지 마세요. 그래도 아마 남편분이 계속 말을 하실 거예요. 유튜브 좋다고 유튜브 찾아서 공부하라고 그러죠?"


"네. 저는 유튜브를 거의 안 봐요. 저는 영상보다는 글로 찾아 읽는 걸 좋아해요."


"네. 맞아요. 저한테도 그러세요. 회장선거 나갈 때 연설하는 법도 유튜브 찾아보라고 하고요, 이번에 학교에서 제자리 멀리뛰기하는 법도 유튜브로 찾아줬어요."


"아, 그런 건 유튜브가 도움이 되겠네요. 그런데 글 잘 쓰는 방법도 유튜브 찾아보라고 해요."


"그러면 손님이 확실히 말씀하세요. 유튜브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른 거라고요. 아마 그래도 남편분은 계속 말을 하실 거예요. 그럴 때 딱 유튜브를 열어서 보여주세요. 나도 유튜브 본다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러면서 <말 많은 사람 벗어나는 법>을 검색해서 남편한테 보여주시면 돼요. 간단하죠?"


꼬마 상담사는 자신의 상담에 흡족한 듯 깔깔거리며 침대 위를 굴러다닌다. 딸 아이와의 대화를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영락없는 자기 딸이라며 크게 웃는다.


말 많은 남자와 듣기 잘하는 여자의 장점을 가지고 태어난 딸아이는 머릿속 모든 생각들을 말로 내보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공감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으니 이 꼬마가 우리 동화의 해피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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