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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르게이 레포트 Jan 14. 2022

언론이 이야기하지 않은 "카자흐스탄"사태의 본질

:클랜시스템(Жуз)와 지정학

2022년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국제사회는 중앙아시아의 자원부국 카자흐스탄을 연일 보도하기 시작했고, 국내외신기자들과 언론, 전문가들도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를 다루었습니다.  

구 소련권역의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9번째로 큰 영토를 보유하고 있으며, 2000만명 안된다는 인구 그리고 우라늄과 석유 천연가스 자원이 풍부한 자원부국이기도 하다. 


영미 외신들도 그렇고 국내전문가 언론들도 어찌보면 매우 당연하고 중요한 “민주세력대 독재-권위정권간의 충돌”,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이라는 다소 거창한 하지만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번 컨텐츠를 통해서 외신들과 국내 언론인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하지 않은 카자흐스탄 사태의 본질인 카자흐스탄 권력구조의 핵심 키워드 클랜 시스템과 향후 국제정세전망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카자흐스탄 국내 정치-경제-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주즈(Жуз)"  


1월1일 기존의 리터당 50-60텡게였던 가스가격이 120텡게로 인상됬다는 소식을 발표했고, 1월2일 카자흐스탄 서쪽의 작은도시 자노젠(Жанозен)에서 0가스가격이 2배로인상되면서 이에 대한 반대시위가 시작되었으나, 그 동안 억눌린 분노가 표출되면서 «집권엘리트들의 정권퇴진»이라는 정치적인 구호로 번졌습니다. 이후, 1월4일 시위는 카자흐스탄의 주도 알마티와 누르술탄으로 번지기 시작하며, 시위를 진압하려는 경찰들과 정부요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평화적인 시위는 폭동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격화되는 카자흐스탄 시위  


1월 5일 시위대는 경찰서와 정부청사를 습격하고 그곳에서 소총과 장비를 탈취해서 정부소속 군경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토카에프 대통령은 국내정치 안정화 및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테러분자 소탕이라는 명목으로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ОДКБ/СSTO)에 도움을 요청하고 푸틴은 동맹국의 안정을 위해서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러시아 공수부대를 파견하고 다른 회원국들도 이에 동참합니다.  

ОДКБ(영문/CSTO 집단안보조약기구)를 비상소집해 도움을 요청하는 토카에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1월 6일 ОДКБ군대가 카자흐스탄에 진입한 이후부터 시위가 진압이 되기 시작하고, 정부군 주도의 사회 질서와 안정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1월 7일 토카에프는 시위의 불씨를 완전히 꺼뜨리기 위해서 정부군에 대항하는 시위참여자들에 대한 발포를 허용하면서 강경책을 고수합니다.

카자흐스탄으로 향하는 러시아 공수부대 


표면적으로 카자흐스탄 시위는 코로나 판데믹 이후, 사회-경제적 조건이 악화된 카자흐스탄 일반대중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가스가격인상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라는 외세가 개입되어 서방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라는 언론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카자흐스탄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자흐스탄이의 경제-정치-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인 주즈(Жуз)라는 독특한 클랜 시스템을 이해 해야 합니다.  

카자흐스탄 국가를 이루고 있는 핵심 클랜(Жуз)  


오늘날까지도 주즈Жуз는 카자흐스탄 역사에서 매우 논쟁적인 주제이며, 이 단어가 어떻게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주즈의 유래는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붕괴 이후, 대 칸이라는 강력한 중앙권력 부재로 사분오열된 초원에서 헤게모니를 놓고 갈라진 부족연합체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지배했던 칭기즈칸 후손이 정복한 금장한국(Золотая Орда) 


초원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것은 혹독한 환경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활동이었습니다. 이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가축과 오아시스 지대의 소유권을 위해서는 특별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그룹들이 무리를 지어야 했으며, 이것이 소규모로는 가족과 가족의 연합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부족과 부족의 연합이 되어서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3개의 거대한 부족연합체인 «클랜», 즉 ЖУЗ가 형성됩니다.

혹독한 초원 유목생활  


카자흐스탄에서는 크게 3가지의 ЖУЗ가 있는데, 남쪽의 СТАРШИЙ, 러시아와 인접한 북서쪽의 Средний 그리고 카스피해를 낀 동쪽 지역의 Младший입니다. 수백년 전에 형성된 이 부족연합체 주즈 일파들간의 관계가 오늘날까지도 카자흐스탄 정치시스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클랜(Жуз)분포도  


러시아제국 시기부터 소련의 흐루시초프 시기까지 카자흐스탄 내에서 가장 쎈 주즈는 Средний жуз였으나, 브레즈네프가 정권을 잡으면서 카자흐스탄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우두머리로 그의 친구 딘무하메드 쿠나에프Д.Кунаев가 임명되면서 카자흐스탄 내 헤게모니는 Старший Жуз로 옮겨집니다.  

레오니드 브레즈네프(Леонид Ильич Брежнев 1906 -1982)와 그의 친구 딘무하메드 쿠나에프(Динмухаме́д Куна́ев 1912-1993). 


고르바초프 시기 쿠나에프는 같은 주즈 출신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에프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소련붕괴 이후 나자르바에프는 1대 대통령에 등극하면서 그와 같은 스타르쉬 주즈 출신들을 정치, 경제, 문화계의 핵심 요직에 임명하며 스타르쉬주즈의 권력이 공고화되게 됩니다.

카자흐스탄 공화국 1대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에프(Нурсултан Назарбаев 1940-2019)  


나자르바에프는 30년 가까이 통치하면서 그의 후계자에 같은 스타르쉬 주즈출신의 토카에프를 임명하고 토카에프는 임명 초기 핵심요직에 나자르바에프 측근들이 정계-재계 요직에 포진해 있어서 그저 전임자의 정책을 수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자르바에프와 그의 측근들은 같은 클랜출신이며 커리어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 토카에프의 국내정치적 기반이 약하고 통치하기 쉽다고 판단했고 토카에프도 당분간은 그들의 예상대로 움직여 주었습니다.

카심 조르맛 토카에프(Касы́м-Жома́рт Кеме́левич  Тока́ев 1953-현재 


하지만, 30년간 누적된 후진적 사회경제시스템을 통해서 스타르쉬 주즈 출신들이 엘리트로 급부상하기 시작했고 상대적으로 다른 주즈 출신 카자흐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심해졌습니다. 특히나, 코로나 사태 이후로 세계경제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물가상승과 더불어 가스가격 상승이 발표되면서 억눌린 카자흐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표면적인 이러한 이유 뿐 아니라, 시위와 소요사태가 일어난 장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정치평론가 마랏 쉬부토프(Марат Шибтов)가 언급하길 시위가 처음 일어난 자노베(Жанове)는 카자흐스탄 서쪽 Младший Жуз지역인데, 이곳 믈라드쉬 주즈지역으로 지리적으로 카스피해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카자흐스탄의 국부의 핵심인 석유, 천연가스 매장지가 몰려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믈라드시 주즈에 사는 카자흐인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소득도 높은 중산층들이 많이 있습니다.

믈라드쉬 주즈(Младший Жуз)지역에 해당하는 카스피해 서쪽 지역에 석유-천연가스 등의 에너지자원 매장량이 풍부하다. 


또한, 역사적으로 믈라드쉬 주즈 지역의 사람들은 매우 호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속담에 «스타르쉬 주즈에게 막대기를 줘 가축을 방목 시키고, 스레드니 주즈에게 펜을 줘 논쟁을 해결하고, 믈라드쉬 주즈에게는 창을 줘 적에게 보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믈라드쉬 주즈출신의 부족민들은 전쟁분야에 종사를 했다고 합니다  어느 국가의 역사에서 그렇듯 사회경제적 여건이 높은 중산층들의 정치를 바라보는 교육과 의식수준도 높기에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목소리가 높습니다.



카자흐스탄 클랜 관계도


이것과 더불어서, 믈라드쉬 주즈는 카자흐스탄 역사상 단 한번도 헤게모니를 가지지 못한 박탈감도 이번 사태와 뗄레야 땔 수 없는 지리적-역사적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 과학원 소속 중앙아시아 전문가 이반 스코리코프(Иван Скориков))는 가장 부유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원들이 스타르쉬 주즈 지역의 엘리트들에 의해서 강탈당했다는 역사-문화적인 반감도 밑에 깔려있습니다. 실제로 2011년 카자흐스탄 서쪽 지역에서는 석유공들을 중심으로 임금상승 및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반 스코리코프 박사가 언급하길, 소요사태 이후, 토카에프 대통령은 새로운 총리로 알리한 스마일로프(Алихан Смаилов)로 임명하게 되는데, 전 경제부장관 출신의 경제전문가 알리한 스마일로프의 임명은 가스가격 인상으로 인해서 촉발된 다분히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고 말했습니다.    

소요 사태 이후, 새로운 총리에 임명된 알리한 스마일로프(Алихан Смайлов)   


스타르쉬 주즈와 믈라드시주즈라는 역사적-지역적인 갈등과 동시에, 카자흐스탄을 통치하는 엘리트 계층인 스타르쉬 주즈 내에서의 헤게모니투쟁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전문가 안드레이 주보프(Марат Шибтов) (Марат Шибтов)에 따르면 토카에프와 나자르바에프는 같은 스타르쉬 주즈 출신이나 나자르바에프는 샤프라쉬티(Шапрашты) 일파이지만, 토카에프는 (Жаллайыр) 일파라고 했으며, 부유한 부모에게 입양된 자식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러시아 내 많은 정치학자 및 분석가들의 평에 따르면 나자르바에프가 퇴임한 이후 나자르바에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치세력과 자신만의 클랜을 구축하려는 토카에프와 30년가까이 통치하며 카자흐스탄 주요 요직에 박아둔 나자르바에프 측근들간의 권력투쟁이라고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스타르쉬 주즈(Старший Жуз)내에서 "박힌돌" 나자르바에프 일파와  굴러온 돌 토카에프 세력의 충돌


시위가 격화되면서, 토카에프는 나자르바에프를 국가안보위 수장직에서 해임한 것을 시작으로 치안영역을 맡고있는 내무방첩부 전 수장이자 나자르바에프 측근인 카림 마시모프(Карим Масимов)를 직무유기죄와 더불어 이적죄혐으를 적용해서 체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번 사태의 핵심용의자로 주목되는 나자르바에프의 조카인 사맛 아비쉬 사티발디(Самат Абиш Сатыбалды)에 대해서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전문가 다닐 키슬로프에 따르면 실제로 내무방첩부 수장이자 나자르바에프 전 대통령의 조카 사맛 아비쉬 사티발디는 스타르쉬 주즈의 영역인 알마티를 본인의 영지인 것처럼 실권을 행사했다고 했으며, 아비쉬 사티발디의 이러한 존재감과 알마티에서의 무장폭동참가자들이 쉽게 무기고를 탈취한 것과의 상관관계가 의심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자르바에프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알마티 지역의 실권자 사맛   아비쉬   사티발디(Самат Абиш Сатыбалды)


그리고 시위의 시작이 믈라드쉬 주즈 지역인 자노제에서 시작했지만 스타르쉬 주즈지역인 알마티까지 시위가 번지고 무장폭동 수준으로 악화되었을 때, 군경들이 너무 쉽게 폭도들에게 무기고를 내주었다는 점에서 군경 등 요직을 장악한 나자르바에프 측근들이 토카에프 정권을 쳐내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냐라는 의구심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번 카자흐스탄 사태를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참여여부입니다. 아랍의 봄에서 알수 있듯이 권위주의정권에 대한 불복종 그리고 무능한 정부에 대응하는 일반 시민들의 시위과정에서 공권력과 충돌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무질서와 혼란은 극단주의자들의 부상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에서도 소위 권위주의 정권 타도를 외치며 반정부 시위를 한 과정에서 IS라는 이슬람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이 나타난 것과 비슷하게, 카자흐스탄 사태에서도 이러한 정황들이 보입니다.

카자흐스탄 내 극단주의 이슬람 그룹 

중앙아시아 전문가 다닐 키슬로프(Данил Кислов)에 따르면, 나자르바에프 클랜은 남부 카자흐스탄지역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공교롭게도 이곳은 북쪽과 서쪽에 비해서 가장 이슬람적인 색채가 강합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에프 집권당시 그의 지원아래 카자흐스탄 무슬림 사회에서 리더로 등극한 조카 카이랏 사티발디 또한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와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재정적으로 활발한 교류를 했다고 합니다. 중동의 오일머니가 유입되어 남부 카자흐스탄 지역에 모스크와 이슬람 율법센터가 많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 기인합니다. 


실제로 러시아 싱크탱크 РСМД 안드레이 코르투노프 박사가 언급한 것처럼, 카자흐스탄이 중앙아시아 뿐 아니라 아랍권 국가에서 성직자 및 노동자들이 많이 있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정황이 의심된다고 언급했으며, 실제로 폭동과정에서 아랍어가 종종들렸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번 카자흐스탄 사태에서 아랍권에서 넘어온 이슬람 무장단체가 개입한 정황이 의심된다고 설명 


토카에프 대통령이 이번사태의 배후에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의 공작이 존재한다고 언급한 배경에 본인의 권력을 위협하는 나자르바에프 클랜 일파의 핵심 인물인 카이랏 사티발디가 종교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비공식적으로 카자흐스탄 내 원리주의 무슬림 그룹을 이끄는 수장이기에, 이들 무리들을 정치적 테러행위에 동원했다고 이야기함으로 인해서 카자흐스탄이 이슬람 테러리스트 그룹들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는 프레임을 형성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자르바에프의 조카이자, 카자흐스탄 내 이슬람 원리주의의 비공식적 리더인 카이랏 사티발디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로부터의 지원을 받아서 카자흐스탄의 이슬람 화(Islamizaition)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군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정권에 넘어감으로 인해서 중동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까지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의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 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도, 토카에프 대통령이 본인의 반대파인 사티발디를 극단주의 이슬람세력의 수괴로 모는 프레임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입니다. 


#시사점


러시아가 ОДКБ라는 초법적인 기구를 통해서 과거 구소련 영향권이었던 동유럽(벨라루스), 코카서스 그리고 중앙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당성을 확보했습니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도 동맹국의 안정과 질서 유지를 위한 ОДКБ의 작전성과에 대한 경험치를 쌓았다는 것에 대해서 이번 카자흐스탄 개입에 대해서 높게 평가를 했습니다. 


다닐 키슬로프가 말햇듯이, 일시적으로 러시아 주도의 ОДКБ라는 외부의 도움을 받았지만, 카자흐스탄 내 아직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자르바에프 클랜 일파들과 반대파들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이번과 같은 반정부 시위가 또 벌어질 수 있으며 이것은 단순히 권위주의 정권과 시민사회의 싸움이 아니라 그리고 다른 주즈 엘리트들과 어떻게 협상을 할지도 그에게 남겨진 과제라고 언급했습니다.  


이와 같은 무질서와 혼란이 계속 될 시 아랍권 지역에서 그랬듯이 중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탈레반 혹은 이슬람국가 호라산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극단주의 단체들의 부상이 예상되어지기도 합니다.      

미군철수 이후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중앙아시아 내에서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단체의 부상이 가시화될 전망이며 이들과의 싸움은 더 격화될 전망이며 줃동지역의 아랍의 봄 사태 처럼 중앙아시아 내에서 반정부 시위로 초래된 혼란과 무질서가 탈레반의 지원을 받는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의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또한 넓은의미에서 국제정치적 상황에서 놓고 보았을 때 미중패권 갈등이라는 신 냉전 상황 속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적 우선순위는 아시아 태평양 권역에 있지, 과거 구소련권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지도 없으며 명확한 전략도 없는것 같습니다.     

미중패권 갈등 속 미국의 우선순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견제이기에 다른 전선에 신경을 쓸지 의문이다.  

 

즉, 1차세계대전 이후 블록경제형태와 유사한 세력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AUKUS, QUAD로 대표되는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자유민주주의 인도-태평양 권역 그리고 푸틴의 비호를 바라는 유라시아권역, 그 중간에 끼인 EU권역으로 국제정치가 재편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카자흐스탄 사태 그리고 심화되는 미중 패권갈등으로 인해서 국제정치는 러시아 중심의 구 소련영향권이었더 유라시아권역, 미국 주도 인도-태평양전략 주축의 인도-태평양 권역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EU권역 간의 상호작용으로 재편될 가능. 


저명한 카자흐스탄 역사학자 누르불랏 마사노프(Нурбулат Масанов)가 지적했듯이, 같은 스타르쉬 주즈인 쿠나에프에서 나자르바에프로 권력이 이양될 때도, 나자르바에프의 과제는 다른 클랜들과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소련붕괴 30년 후, 나자르바에프라는 강력한 리더쉽 하에 비교적 안정적인 사회질서와 시스템이 유지된 것 처럼 보였으나 권력이양과정에서 클랜들간의 권력투쟁으로  초래된 혼란과 갈등으로 민간인들의 희생이 동반되었고, 이는 민주주의 거버넌스의 경험이 짧은 포스트소비에트 권역에서 유사시 강력한 리더쉽의 부재 혹은 리더쉽 이양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선례를 남기게 되었으며, 가뜩이나 코로나 이후 사회경제적 상황이 않좋아진 상황에서 이러한 폭동과 무정부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겼습니다.  


이렇듯 이번 카자흐스탄 사태의 밑바탕에는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다분히 사회경제적 조건의 악화로 인한 «민중대 정부»라는 다소 뻔한 «그림» 뒤에는 카자흐스탄 내에서 역사적으로 지역적으로 이어져온 카자흐스탄 클랜들간의 갈등 그리고 현재 권력을 쥐고있는 스타르시 주즈 엘리트 일파들간의 헤게모니 갈등과 국제정치적으로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내 구소련권역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견제하려는 서방세계의 갈등 등 매우 복합적인 요소가 서로 얽혀있습니다. 

     

*참고문헌 

Масанов, Н. Э. (1999). Казахская политическая и интеллектуальная элита: клановая принадлежность и внутриэтническое соперничество. Вестник Евразии, (1). 

-Зуев Ю.А. Историческая проекция казахских генеалогических преданий: к вопросу о пережитках триальной организации у кочевых народов Центральной Азии // Казахстан в эпоху феодализма. Алма+Ата, 1981. С. 6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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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gCrbyS1n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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