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글씨와 정성: 디지털 시대에 되찾은 바른 글씨의 가치

펜글씨에 대한 추억

by 박순동

펜글씨와 정성 : 디지털 시대에 되찾은 바른 글씨의 가치

박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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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글씨 자격증 취득, 단순한 성취 그 이상

지난 5월 31일, 교육부 인가 펜글씨 글씨검정(급수) 시험에서 2급에 합격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단순히 자격증 하나를 취득한 것이 아니라, 잊혀 가는 '정서(正書)'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펜글씨 2급이라는 상급 자격을 통해 바른 글씨 쓰기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인성 함양과 정신 수양의 근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펜글씨에 대한 추억과 변화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펜글씨는 일상의 필수였다. 상고나 여상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펜글씨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했고, 우리는 일반 펜촉에 파일럿 잉크를 찍어 글씨를 써야 했다. 만년필을 가진 학생은 드물었고, 국산 파일럿 만년필이나 파카 만년필을 소유한 학생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 펜글씨 자격증은 이력서와 인사기록부에 당당히 기재할 수 있는 스펙이었고, 군 입대 시 기술행정병 지원에 가산점까지 받을 수 있는 실용적 자격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컴퓨터 자판과 마우스, 그리고 이제는 AI 음성까지 텍스트로 전환해 주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직접 펜을 들고 글씨를 쓰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고, 어쩌면 영영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변화 속에서 손글씨를 다시 배우는 일은 누군가에겐 뒤처진 감성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펜글씨 자격증을 준비하며 오히려 지금 시대일수록 '손글씨'의 진정한 의미와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바른 글씨'라는 정성과 마음의 훈련

펜글씨를 다시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은, 펜글씨가 단순히 글자를 예쁘게 쓰는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을 다하여 그 글자의 마음과 뜻을 되새기며 글씨에 옮기는 과정 자체가 바로 수행이었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글씨를 쓰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쓰인 글씨의 내용이 가슴에 스며들어 삶의 지표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정서(正書)'라는 말 자체가 이를 잘 보여준다. 바른 글씨를 뜻하는 正書와 정신을 집중하여 쓴다는 精書,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바른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정신을 집중해야 하고, 정신을 집중해서 써야 비로소 바른 글씨가 나온다. 이는 학습의 핵심 능력인 주의력, 이해력, 기억력, 문장력을 기르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명언이나 시, 명문장들을 반복해서 쓰는 동안, 그 의미가 단지 머리로 이해되는 것을 넘어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손으로 써야만 느낄 수 있는 무게감, 바로 그것이 펜글씨의 본질이다. 이처럼 글씨를 바르게 쓰는 것은 단순한 미적 훈련이 아닌, 마음을 단련하는 수행에 가깝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펜글씨의 효과

현대 과학 연구들은 펜글씨 쓰기의 효과를 명확히 입증하고 있다. 바른 글씨 쓰기는 뇌 발달을 촉진하고, 표현력과 문장력을 향상하며, 주의력과 집중력, 기억력을 강화한다. 또한 뇌신경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전반적인 학습 능력을 높이고, 자신감과 안정감을 길러준다는 것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 과학적, 실증적으로 입증되었다.

이는 단순히 현대의 발견이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다. "글씨가 그 사람과 같다"는 뜻의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말이나, 과거시험에서 몸가짐, 말씨, 글씨, 글짓기를 뜻하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기준으로 삼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정조대왕이 흐트러진 글씨를 바로잡기 위해 '서체반정(書體反正)' 정책을 펼쳤던 것은 글씨가 단순한 기능이 아닌 정신과 인성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펜글씨가 가져다주는 인성의 변화

펜글씨 급수시험을 준비하며 가장 깊이 느낀 것은 펜글씨가 인성 함양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성스럽게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급한 성격도 차츰 가라앉는다. 특히 삶의 지혜가 담긴 명구나 명문을 써 내려갈 때면, 그 글귀의 의미가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손끝을 통해 마음 깊숙이 새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왜 우리 조상들이 글씨 쓰기를 교양의 기본이자 교육의 기초로 여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펜글씨는 단순히 글자를 쓰는 행위가 아니라, 정신을 수양하고 인성을 기르는 종합적인 교육 과정이었던 것이다. 바른 글씨를 통해 예의와 인성, 그리고 삶의 근본이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펜글씨 급수시험을 준비하면서 습관처럼 펜을 잡고 시구를 메모하거나, 좋아하는 구절을 따라 써보는 일이 잦아졌다. 바른 글씨를 쓴다는 행위는 어느새 내 일상에서 작은 명상이 되었다. 특히 학생이나 청소년들에게 이런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학습능력뿐 아니라 성장기 청소년들의 인성 교육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더욱 필요한 '손글씨'의 가치


초등학교(국민학교) 4학년 1학기 손글씨 교재

현재 우리는 키보드와 터치스크린, AI 음성인식이 일상화된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펜글씨는 구시대의 유산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속도와 효율이 중요한 세상에서 손글씨는 불편하고 느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어떤 가치가 숨어 있다. 집중, 몰입, 정성, 자기 성찰 같은 것들이다.

디지털 기기는 빠르고 편리하지만, 우리의 정신을 분산시키고 깊이 있는 사고를 방해하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 자주 화면을 넘기며, 너무 자주 말을 흘리고, 너무 자주 생각 없이 정보를 흡수한다. 그 속도를 잠시 멈추고, 펜을 들어 정성스레 글씨를 써 보는 일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자기 회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는 현대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명상적 경험이자, 마음의 안정을 찾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


마무리하며: 글씨로 마음을 닦는다는 것

펜글씨 2급 자격증을 준비하고 취득하는 과정은 나에게 단순한 자격의 의미를 넘어선 것이었다. 바른 글씨 쓰기를 통해 정신을 수양하고 인성을 기르는 '정서(正書)'의 참된 가치를 체험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꾸준히 내가 작성하는 자작시를 펜을 들고 써 나갈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을 다해 마음을 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보려 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놓쳐선 안 될 더욱 소중한 펜글씨의 가치. 그것이야말로 정성과 인성을 되찾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글씨가 그 사람을 나타낸다는 '서여기인(書如其人)'의 지혜를 되새기며, 바른 글씨를 통해 바른 마음을 기르는 여정을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 이것이야말로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전통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유산이라고 확신한다.

2025.6.13 박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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