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의 사춘기 시절, 고뇌의 대학시절, 이별의 청춘시절 이야기
책장 속에 잠든 시간들
오랫동안 책장 깊숙이 잠들어 있던 두 권의 문예집을 꺼내 들었다. 하나는 사춘기 시절 좋은 글들과 내가 직접 쓴 시와 에세이를 모아놓은 '옥수꼴의 연가', 그리고 또 하나는 대학입학 이후의 작품들을 담은 '흙'이라는 제목의 문예집이었다. 먼지를 털어내며 그 책들을 다시 필사하는 시간, 그것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이었다.
첫 번째 장을 넘기자마자 사춘기 시절의 나와 마주했다. 그 시절의 글들은 마치 열병을 앓는 환자의 중얼거림 같았다. 사랑에 대한 간절함, 이별의 아픔, 그리고 그리움으로 더덕더덕 기워진 마음들이 서투른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지금 읽어보니 웃음이 나온다. 그 진부한 표현들, 과장된 감정들, 세상을 다 안 것 같은 건방진 어조들이 말이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묘한 그리움이 숨어있었다. 그토록 순수하게, 그토록 진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사춘기, 열병을 앓다
'옥수꼴의 연가'를 필사하며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났다. 사춘기라는 이름의 열병을 앓고 있던 소년이 거기 있었다. 첫사랑의 설렘을 "별이 내 가슴에 떨어져 타오른다"라고 표현했던 시, 이별의 아픔을 "세상 모든 비가 내 눈에서 내린다"라고 썼던 에세이들. 지금 보면 얼마나 유치한가. 하지만 그 유치함 속에 얼마나 진실한 감정이 담겨있었던가.
그 시절의 나는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을 노래했고, 이별을 경험하지 않고도 이별의 아픔을 썼으며, 인생을 살아보지 않고도 인생을 논했다. 모든 것이 과장되어 있었고, 모든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사춘기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처음 겪는 듯 느끼고, 모든 감정을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것인 양 여기는 것.
사춘기 시절의 글들을 다시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문학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 했다는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을, 어른들이 이해해주지 않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글로 풀어내려 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도들이 비록 서투르고 미숙했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법학도의 고통, 문학으로 토해내다
'흙'이라는 제목의 두 번째 문예집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써 내려간 글들이었다. 대학 도서관, 동네 독서실, 신림동 고시원, 강서도서관을 전전하며 법학 공부에 매달렸던 그 시절의 기록들이 거기 있었다.
그 글들은 사춘기 시절의 글들과는 사뭇 달랐다. 더 이상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지 않았다. 대신 현실의 무게, 주변의 기대, 가족들의 간섭에 짓눌린 한 청년의 고통이 묻어나 있었다. "법학이라는 감옥에 갇힌 문학도의 절규"라고 제목을 붙인 에세이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왔다. "나는 법조문을 암송하면서도 시를 읊조리고, 판례를 정리하면서도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내 안의 두 영혼이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 시절의 나는 법학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의연한 권유와 강요, 그리고 현실적인 고려들이 나를 그 길로 떠밀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지만, 그것을 공부로 이어가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래서 문학은 고통을 달래는 해독제 같은 역할을 했다. 법학 공부의 스트레스를, 진로에 대한 불안을,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문학을 통해 토해냈다.
국문과에 대한 그리움
필사를 하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그때 부전공으로라도 국문과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었다. 법학과에서 보낸 4년, 그리고 사법고시 준비 기간 동안 나는 계속해서 문학을 갈망했다. 법학 서적 사이사이에 문학 책들을 끼워 넣고, 법학 노트 여백에 시상을 적어두고, 쉬는 시간마다 에세이를 끄적였다.
만약 그때 국문과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선택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적어도 그 시절 느꼈던 정체성의 혼란, 적성과 현실 사이의 갈등은 덜했을 것이다. 문학을 학문으로 접근할 기회를 가졌다면, 단순히 개인적 감정의 토로가 아닌 좀 더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글쓰기를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법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고통과 갈등이 오히려 글쓰기에 깊이를 더해주었을지도 모른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했던 경험이, 진로 선택의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지금의 나를 더 풍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을 수도 있다.
필사가 선사하는 깨달음
두 권의 문예집에서 좋아하는 글들을 골라 필사하며 나는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추억이 된다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너무도 절실했던 감정들,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들이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어있다. 둘째, 글쓰기는 그 순간의 나를 기록하는 타임캡슐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때의 생각, 그때의 감정, 그때의 고민들이 글 속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셋째, 모든 경험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사춘기 시절의 유치한 글들도, 법학도 시절의 고통스러운 글들도 모두 나의 일부이고,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한 재료들이었다. 넷째, 문학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공이 무엇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한 소절 한 소절 필사를 마치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과거의 나와 화해한 기분이었다. 사춘기 시절의 순수했던 나도, 법학도 시절의 고통받던 나도 모두 소중한 나의 일부였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국문과를 선택하지 못한 것도, 문학을 전공하지 못한 것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열정이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해서 문학에 대한 꿈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사춘기 시절처럼 열정적으로, 하지만 그때보다는 조금 더 성숙하게. 법학도 시절처럼 고민하면서, 하지만 그때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그리고 필사를 통해 만난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며, 앞으로 만날 미래의 나를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책장에 잠들어 있던 두 권의 문예집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다리 위에서 나는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글을 쓰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2025.6.8. 두 권의 습작 문예집을 다시 꺼내 읽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