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날았는지, 강한 바람에 눈뜨기조차 힘들었어. 끔뻑거리며 바라본 풍경은 아찔했지. 절벽 끝이더라고.
“맘!”
티나가 절벽 가장자리에 사뿐 앉았어. 티나 엄마는 주황색 부리로 티나의 목덜미를 콕콕 쪼아주며 반가워했단다. 말린 허브를 두 손 가득 들고 있었지.
“맘, 멀리 한국에서 왔어요.”
“네, 동길산입니다.”
“반가워요, 티나가 친구를 데리고 온 것은 처음이에요.”
주황색 부리로 내 목덜미도 콕콕 쪼아준 티나 엄마는 나를 보고 자꾸 웃었어. 눈 화장이 짙은 멋쟁이 퍼핀이었어. 은은한 허브 냄새 때문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었지.
절벽 곳곳에는 퍼핀이 무리 지어 바다를 향해 앉아있었어. 파도가 하얗게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하늘과 닮았어. 마치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소리까지 아름다웠단다. 포근하고 따뜻했으며 정겨운 어릴 적 동네에 온 것 같았지. 둘, 셋씩 무리를 지어 바다를 향하고 있는 퍼핀들이 한 번씩 물속으로 들어가 부리로 청어를 낚아 올려 절벽 곳곳에 말려두기도 하더라.
밤이 되자, 티나 엄마는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지. 폭신한 건초 위에 꽃잎을 말린 베개가 놓여있었어. 그리고, 머리맡 창문에는 파란색 거미줄에다 깃털과 구슬로 장식하고 말린 허브까지 꽂혀있었단다.
“낯선 곳이니 좋은 꿈을 꾸라고······.”
티나 엄마는 창문을 가리키며 웃어주었어.
“드림캐처야. 악몽을 꾸지 않게 도와준단다.”
티나도 웃으며‘잘 자.’하고 손사래를 쳐주었어.
“아, 잘 잤다.”
드림캐처 덕분인지 구름 위에서 잔 것처럼 가볍고 산뜻한 아침이었단다. 나는 어깻죽지를 쭉 펴고 일어났어. 티나는 날개를 파닥이며 중얼거렸단다.
“또 섬을 옮겨 놓았네.”
약간 언짢은 듯한 목소리가 들렸어. 어제까지 멀리 보이던 섬이 바로 코앞 가까이 와 있는 것이었어.
“내가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눈을 비빈 후, 다시 보았지.
“장난꾸러기 트롤 짓이야.”
“트롤이라면?”
“심술궂고, 장난이 심한 괴물이지.”
티나 엄마가 곁에서 거들었어.
“힘이 세서 나무를 통째로 뽑거나 돌이나 바위를 번쩍 들어 올린단다.”
“낯선 손님이 오니까 힘자랑하고 싶은 거지.”
“정말 대단하네요. 섬을 옮겨놓을 만한 힘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어요.”
“심술궂고 장난이 심하단다. 착한 척하기도 하지만, 뒤통수를 칠 때가 많아.”
티나가 작은 숨을 내쉬며 엄마를 바라보더라.
“걱정하지 마! 햇볕을 싫어해서 낮에는 돌이나 바위가 되어 꼼짝도 못 한단다.”
토닥토닥 나의 등을 두드리며 티나 엄마가 또 웃어주었어.
“트롤은 햇볕을 받으면 바위로 변한단다, 아마 저 섬 어딘가 돌이 되어 있을 거야.”
“와, 굉장하네요, 섬을 절벽 가까이 옮겨 놓을 수 있다니!”
신기한 트롤의 힘을 생각하니 자꾸‘와’소리와 함께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
“힘자랑하는 거야.”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내리는 티나가 우스웠단다.
“그러다 마음이 변하면 제자리로 돌려놓기도 해.”
티나 엄마는 내 목덜미를 콕콕 쪼아주며 아침상을 차려주었어. 바위틈에서 자란 해초 한 줌과 청어 한 마리가 전부였지만, 맛있었단다.
“이건 루핀 꽃차란다. 아침에 루핀 꽃에서 떠 온 맑은 이슬 차야.”
“음, 허브차 맛과 비슷하네요.”
“그래, 오늘은 어디 갈 거니?”
찻잔을 치우며 티나 엄마가 물었어.
“악마의 섬을 한 바퀴 돌다 올게요. 해지기 전에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늘 조심해야 한다.”
집을 나서는데 하얀 꽃잎 가운데 노란 수술이 도드라진 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어.
“아, 예쁘다!”
“아이슬란드 나라꽃, 담자리 꽃이야,”
“오, 담자리 꽃! 널 닮은 것 같아.”
“호호, 고마워.”
티나가 입은 흰 블라우스에 노란 치마가 예뻐서 칭찬해 주었어. 예쁜 꽃을 따서 티나 귓가에 꽂아주고 싶었지만, 참았단다. 티나 엄마가 저만치 서서 웃고 있었어.
티나는 나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주었단다. 퍼핀은 1분에 400번 날갯짓한다면서 날개를 퍼덕이는 방법을 차근차근 말하면서 보여주었어. 나는 티나를 따라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수천 번을 연습한 후, 한숨을 돌렸지.
“자, 해변으로 날아가 앉는다.”
바로 눈앞이었는데, 실제로 엄청나게 멀었지. 수없이 날개를 퍼덕이며 검은 모래와 자갈이 깔린 해변에 사뿐 앉았단다. 육각기둥 모양으로 굳어진 바위가 쫙 펼쳐져 있었지. 살짝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어. 갑자기, 바람이 불고 파도의 키가 높아져 무서웠단다.
“너 떨고 있구나.”
“아냐, 약간 추워서 그래.”
나는 날개를 두어 번 퍼덕이며 애써 태연한 척했지.
“그래도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야.”
바다에서 막 솟아오른 것 같은 뾰족한 바위가 눈에 들어왔어.
“저기가‘악마의 손가락’이라는 섬이야.”
“흐흐, 저기 어딘가 바위가 된 트롤이 숨어있겠네.”
“가볼까?”
티나가 싱긋 웃었어.
“트롤이 나타나면 어떡해!”
“걱정하지 마, 낮에는 돌로 변해서 힘을 못 쓴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