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나가 날아올랐어. 나도 파닥파닥 날갯짓하면서 날았지. 힘들지 않게 바위섬에 닿았단다. 뾰족한 바위섬에는 도드라진 동그란 손잡이가 여럿 보였어.
“한 번 열어 볼까?”
한껏 호기심에 부푼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 티나가 손잡이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낑낑거렸어. 나도 거들었더니 바위가 스르르 열렸어. 안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단다. 티나가 조심조심 한 발짝씩 앞으로 나가면 나도 벽에 바싹 붙어 따라갔지.
바위문이 저절로 닫혔어. 빛도 없이 캄캄했지만, 조금 더 들어가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어. 돌을 깎아 만든 의자가 여러 개 놓여있었어. 검은 모래 해변에서 보았던 육각형 기둥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었단다. 뾰족한 겉모양과 달리 천장은 둥글었어. 모빌처럼 별 모양의 돌이 여러 개 달려있었지. 그 한가운데는 긴 줄에 달린 금빛 사과도 여러 개 있었는데, 전구처럼 안을 밝혀주었어. 육각형 기둥 벽에는 삼각형과 사각형, 오각형 돌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었지. 볼록한 삼각형 돌을 가만히 만져보았어.
“흠흠. 사람 냄새가 난다?”
그러더니 삼각형이 조금씩, 조금씩 튀어나와 삼각뿔이 되더니 바닥에 툭 떨어졌어.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분명 사람이 왔어.”
삼각뿔은 바닥에서 귀를 기울이는 듯하더니 돌벽에서도 두런두런 소리가 났어.
“사람이 올 리가 없는데.”
“그러게, 말이야.”
티나가 검지를 입술에 붙이고, 고개를 두어 번 흔들며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
“어제, 티나네 집에 손님이 왔더라고.”
“그래서 네가 섬을 옮겨 놓았구나.”
“흐흐, 악몽을 꾸게 하려고 들여다보는데, 드림캐처를 다는 바람에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지, 뭐야.”
“호호, 네 엉덩이가 파란 이유를 이제야 알았네.”
“오늘 밤은 어떻게 혼내줄까 생각 중이야.”
“먼 데서 온 손님이니까 봐주지, 그래.”
“그럴까, 헤헤.”
트롤끼리 하는 이야기가 다 들을 수 있었어.
‘남의 꿈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돼.’
티나가 문 쪽으로 나가자며 손짓해서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단다. 그런데, 여기저기 바위를 밀어보았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지. 분명 들어온 쪽이었는데 끄떡도 하지 않았어. 그때, 모빌에 달린 별 모양 돌이 툭 떨어지더니, 내 발밑 가까이 굴러왔단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티나도, 나도 그 자리에서 멈췄어.
“멀리서 오신 손님, 반가워!”
가슴이 팔랑거리며 떨고 있는 나에게 별 모양 돌이 말했지.
“퍼핀이 된 사람이구나, 너 퍼핀으로 살고 싶니?”
티나가 검지를 입술에 붙이고 대꾸하지 말라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소리쳤단다.
“아니요! 돌아가서 학생을 가르치고, 어머니도 모셔야 해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네.”
“오호, 선생님이라, 멋진데.”
나에게 호감을 느끼는 듯했어.
뭐라고 중얼거리던 돌별이 몸을 한 번 굴리고 또 굴렸어. 캄캄하던 바위 안에서 번쩍번쩍 번갯불이 스치는 듯하더니 내 앞에 뭔가 턱 버티고 섰어. 돌별로 변해있던 트롤이 모습을 드러냈지. 왕방울 같은 눈과 무같이 뭉툭한 코, 팔랑거리는 두 귀와 길게 늘어진 빨간 혓바닥, 혓바닥 사이로 툭 튀어나온 이빨이 긴 괴물이 아니었어.
초록 머리, 까만 머루눈, 눈 아래 길게 달린 눈썹, 쌍방울 같은 코에다 초승달처럼 얇고 긴 입술, 초록색 브로콜리 같은 귀가 무척 귀여웠단다.
귀여운 트롤을 본 순간, 나는 왈칵 손을 잡고 싶었어. 내 손안에 들어올 만큼 작아서 전혀 무섭지도 않았지. 어릴 적 갖고 놀던 장난감 같았거든.
“뭐야!”
그런데, 갑자기 키가 커지더니 목에서 갈라진 두 개의 얼굴이 나타났어. 나는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단다.
“이래도 내가 장난감으로 보여?”
“아니, 분명 어릴 적 장난감 같았는데······.”
“어릴 적이라? 네가 어릴 적에 사과를 무척 좋아한 것을 알고 있어, 이거 먹어.”
황금 사과가 또르르 굴러와 내 발밑에서 멈추었어. 마침 목이 말랐던 나는 사과를 덥석 집어 와싹와싹 베어 물었단다. 부드럽고 달콤하면서 단물이 듬뿍 들어있었지. 티나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지만, 이미 늦었어.
“오, 귀여운 소년!”
사과를 먹고 나니 내 몸은 가벼워지고, 팔딱팔딱 뛰고 싶었단다. 트롤도 갈라진 얼굴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또래의 귀여운 트롤로 변했어.
“우리 친구 하자, 나는 늘 사람 친구가 있었으면 했거든.”
브로콜리처럼 생긴 귀를 쓰다듬으며 웃는 모습이 귀여웠단다.
“사람 친구는 무얼 하면서 놀지?”
“게임하면서 놀아.”
“게임이라고? 좋아.”
“게임을 하려면 이름부터 알아야지, 내 이름은 동길산이야.”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트롤은 선뜻 손을 내주지 않았어.
트롤은 자기 이름을 말해주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어.
“음, 만나자마자 이름을 알려주는 것은 네가 처음이야. 난 브로야.”
“흐흐, 브로라고? 브로콜리 할 때 그 브로?”
초록빛 몸이 브로콜리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름까지 브로라고 하니 재미있었어.
“‘브로콜리’라고? 흐흐, 마음대로 생각해.”
“브로, 친구니까 게임만 하면 문을 열어줄 거지?”
“그럼, 네가 이기면 바로 나갈 수 있어.”
“그렇다면.”
티나를 보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내리더라.
“세 문제를 낼 거야. 다 맞혀야 해, 내 말이 곧 정답이야.”
“뭐라고?”
말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낮에도 별은 반짝인다, 아니다, 밤에만 반짝인다?”
“낮에도 별은 반짝인다.”
나는 브로의 입을 바라보며‘하나, 둘, 셋!’하면 무조건 외쳐야 했어. 긴 손가락으로‘하나, 둘, 셋’리듬을 맞추면서 문제를 내는 모습이 어릴 적 친구처럼 재미있었단다.
“흐, 첫 문제는 통과!”
브로는 초승달 같은 입을 귀까지 올렸단다.
“다음은 꽃잎 모양 문제야.”
문제를 내면서 아주 즐거워 보였어.
“백합 꽃잎은 한 장, 등대풀은 두 장, 붓꽃은 석 장. 채송화는 다섯 장, 그럼, 모란은 몇 장일까?”
“여덟 장!”
브로가 셋을 세지도 않았는데 대답해 버렸지.
“어려운 문젠데, 역시 선생님?”
“피보나치수열로 맞춘 거야.”
“피-보-나-치 수열이라고?”
“그래, 앞의 두 수의 합이 다음 수열이 되는 거야. 1, 2, 3, 5, 8, 13, 21······.”
브로는 쌍방울 같은 코를 잠시 씰룩거리더니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웃어주었어.
“그럼, 불행이와 행복이가 싸우면 내가 누구 편을 들까?”
“불행이!”
“틀렸어, 행복이야!”
“네가 행복이 편이라고? 거짓말!”
따지려다 나는 입을 다물었어. 일단 브로의 말은 곧 정답이라니까, 듣는 수밖에 없었지.
“말하는 것이 다가 아니야, 불행을 좋아하는 것은 세상엔 없어.”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웃고 있었더니 브로가 선심 쓰듯이 말했어.
“우린 친구니까 기회를 줄게, 네가 문제를 내 봐.”
나는 한 발짝 브로 앞으로 다가갔어. 브로는 호기심 가득한 머루눈으로 초승달처럼 웃었지. 잠시 주변을 살핀 나는 조개껍데기 하나를 주워서, 바닥에 코끼리 한 마리를 그렸단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난 한 방에 넣을 수 있어.”
브로는 내가 그린 코끼리 주변을 돌더니, 잠깐 생각에 잠겼어. 그러더니 코끼리를 일으켜 세웠지.
“어, 코끼리를.”
한 발 뒤로 물러간 내가 말했지.
“넌 코끼리를 세울 순 있지만, 이 코끼리를 냉장고에 어떻게 넣을래?”
내가 코끼리 등을 어루만지며 웃었지.
“이 큰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하나, 둘, 셋!”
브로가 한 것처럼 나도 답을 재촉했지.
“그러니까, 코끼리를 잘라서 말이야.”
“아니, 아니야.”
나는 고개를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어.
“세 번 셀 때까지 못 맞췄으니 문을 열어 줘, 빨리!”
“나에게도 기회는 주야지.”
긴 손가락을 깍지 낀 채, 초승달처럼 생긴 입을 귀까지 올리며 사정하듯 말했어. 나는 더 이상 브로가 무섭지 않았지.
티나가 엄지를 곧추세우며 둥근 벽을 더듬어 나갈 준비를 했어.
“나갈 거야.”
나도 힘껏 벽을 밀면서 소리쳤어. 거짓말같이 바위가 열렸단다.
“빨리, 빨리 날아.”
나는 티나와 함께 날아올랐어.
“기다려, 답은 말해주고 가야지!”
바위는 저절로 닫혔어. 햇살이 쏟아지고 있으니 브로는 나를 따라 나올 수 없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