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은 바닷물을 노랑과 빨간색으로 칠하며 내일을 위해 빠른 걸음을 하고 있었어. 어느덧 어둑발이 내리고 있었단다. 내 가슴은 여전히 콩닥거렸지만, 아름다운 바다색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어. 나는 두 손을 살짝 바닷물에 담그며 생각했단다.
“아, 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야 하는데.”
티나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지.
“아름다움을 즐기라고 했지, 아름다운 노을은 너에게 관심이 없어.”
나는 티나의 손을 잡고 그냥 웃어주었어.
“왜 이렇게 늦었니? 해가 지고 있잖아.”
엄마가 말린 청어를 거두며 말했단다.
“악마의 섬에 가서 브로와 게임을 했어요.”
“길산이 이겼다고?”
“네. 엄청, 자랑스러워요.”
티나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재미있었다는 듯이 말했어.
“지고는 못 사는 트롤인데, 분명 다시 올 거야.”
“트롤이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았어요.”
“네가 트롤을 몰라서 그래, 섬을 옮겨 놓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약간 걱정되기는 했지만, 길산이 있으니까 든든했어요.”
티나가 눈을 지름 뜨면서 엄마를 바라보았어.
“늘 조심하는 것 잊지 마.”
엄마는 내 어깨에다 두 손을 얹고 다짐하듯 말했어.
“트롤은 널 영원히 퍼핀으로 만들 수도 있어, 마음을 놓아선 안 돼.”
항상 웃는 얼굴이었는데, 그 말을 할 때는 어쩐지 어두워 보였지. 그러나, 다시 웃는 얼굴로 티나 엄마가 말했어.
“티나, 악마의 섬에서 탈출했으니 이제 구슬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도전해 볼래?”
“그 마법의 구슬 말이에요?”
티나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지.
“원한다면 길산이와 함께 가도 좋아.”
“네, 자신 있어요.”
내가 당장이라도 구슬을 찾으러 갈 것처럼 일어서니까 티나 엄마가 손사래를 쳤어.
“유라시아 쪽 협곡에 가면 유난히 반질거리는 바윗면이 있어. 그 면에는 천 개의 서랍이 있단다. 꼭대기에서 아래로 예순아홉 번째 서랍을 열면 앵무 조개가 있다고 했어.”
“앵무 조개요?”
“그 안에는 파랑, 빨강, 그리고 노랑 구슬이 있단다. 파랑 구슬만 가지고 나와.”
저녁을 먹자마자, 새로운 곳에 간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잠에 곯아떨어졌어.
다음 날, 새벽 갓밝이에 눈이 떠졌어. 창밖을 본 나는 또 한 번 놀랐단다. 가까이 있던 바위섬이 신기하게도 본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어.
“트롤이 제 자리에 옮겨놓았구나.”
티나 엄마가 들으라는 듯 말했어.
드디어, 협곡에 가는 날이었지. 휘영청 보름달에서 하현달로 넘어간 아침, 파도가 잔잔하고 맑은 날이었어. 노란 구명조끼까지 준비해 놓은 티나 엄마는 조심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주었단다.
파랗고 금빛 나는 바다를 가로지르며 깎아지른 언덕 밑으로 내려가 협곡이 있는 곳으로 헤엄쳤어. 이제 날고 헤엄치는 일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 고래를 만나고, 상어도 만났지만, 이리저리 잘 피했단다. 유난히 잔잔한 곳에서는 대구 떼가 몰려다니는 것도 보았어. 머리를 풀어 헤치고 흔들리는 해초 사이로 한참을 헤엄쳐갔지. 촛대처럼 생긴 바위를 본 티나가 손짓했어.
“여기인 것 같아.”
“이 협곡 사이에 서랍장이?”
“그래, 여기서는 잘 살피며 가야 해.”
다시 머리를 물속으로 쏙 넣은 티나가 양쪽으로 갈라진 거대한 바위 사이로 들어갔어. 바닷물은 따뜻했고 깊어질수록 점점 밝아왔단다.
“바로 저기다.”
수많은 물고기가 쪼개진 틈 사이로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헤엄치고 있었어. 빌딩처럼 쏟아있는 바위기둥의 쪼개진 틈 사이에 층층 계단이 보였어. 아래를 보아도 위를 보아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보였지.
“날 꼭 잡아, 그렇지 않으면 다른 대륙으로 빨려갈 수도 있어.”
두어 번‘부르르’몸을 떨던 티나가 머리를 곧추세우고, 다시 위로 오르기 시작했단다. 함께 오르던 나는 푸른 바다 가운데 갈라진 바위 절벽 꼭대기에 앉았어.
“여기서 아래로 다시 내려가 예순아홉 번째 서랍을 찾아보자.”
나는 검지와 중지로 V자를 만들며 웃어주었지.
“반대편 쪽으로 밀려 나가면 너와 나는 다시 만날 수 없어. 여기가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 지각판이 맞닿은 경계거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추켜올렸지.
“예순다섯, 여섯, 일곱, 여덟. 예순아홉! 바로 여기야.”
절벽 사이로 잔물결이 손사래 치면서 부드럽게 온몸을 감쌌어. 바위 서랍은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은 듯 초록 이끼와 갈색 해초가 엉겨 붙어 열기가 힘들었단다. 티나와 내가 부리로 해초를 걷어내자, 반듯하면서 반짝이는 검은 바위 면이 나타났어. 바위 서랍을 조심스레 당긴 티나가 소리쳤어.
“앵무조개가 보이지?”
“그래, 열어봐.”
알록달록한 앵무조개 안에는 티나 엄마 말대로 구슬이 세 개 들어있었어. 빨강, 파랑, 그리고 노랑 구슬이 얌전하게 놓여있었어.
“아, 예쁘다! 다 가져가면 안 될까?”
티나가 세 개를 한 손에 올려놓고 날 보며 말했어.
“안 돼, 파랑 구슬만 가져가야지.”
농담하는 줄 알면서도 나는 티나를 보고 눈을 흘겼어. 그때, 티나가 나 몰래 또 하나의 구슬을 가져온 것은 비밀이었어.
“네 입에 물어.”
파랑 구슬을 나에게 건네며 티나가 명령하듯이 말했어.
난 두말하지도 않고, 파랑 구슬을 입에 물었지. 돌아가는 길도 오는 길처럼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했어. 혼자서도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자신도 있었지.
그때, 엄청난 대구 떼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흩어졌다 다시 모이면서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단다.
“조심해, 고래가 나타났나 봐.”
“알았어!”
말하자마자, 나는 파랑 구슬을 그만 물속으로 빠뜨리고 말았단다.
“이걸, 어쩌나. 어째!”
나는 재빠르게 놓친 파랑 구슬을 잡으려고 아래로 헤엄쳤어.
“조심해, 길산!”
“악, 으악!”
아주 깊고 넓은 터널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어. 소리치던 티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단다.
“여기가 어디지?”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사방을 둘러보았지. 터널 같은 둥글고 단단한 곳에 굵은 뼈가 규칙적으로 세워져 있고, 매끈매끈하면서 진득한 곳에 떨어져 있었어. 손으로 여기저기를 더듬다가 내 손에 휙 감겨오는 것을 확 잡아당겼단다.
“뭐야? 이건 비닐이잖아.”
다시 더듬어보니 긴 밧줄 끝에 뭔가 묵직한 게 끌려왔어.
“놀라워라, 이게 뭐지?”
동화책에서 보았던 인어 공주가 아니라, 인어 왕자였어. 머리가 노란 곱슬머리에 파란 눈의 남자 인어도 무척 놀라는 표정이었어.
“여기가 어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단다.
“고래 뱃속입니다.”
“고래 뱃속이라고요?”
난 고래 밥이 된 것이 너무 슬프고 억울했어. 외할머니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나더라고. 그때였어.
“걱정하지 마세요.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나도 빨려 들어온 것 같아요.”
인어는 나를 보고 더 놀랐다면서 어떻게 여길 오게 되었냐고 물었지.
나는 협곡에서 구슬을 찾아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대구 떼가 몰려오는 바람에 구슬을 떨어뜨렸고 구슬을 찾으려다 빨려 들어왔다고 말했어.
“이 구슬 말인가요?”
“네, 맞아요!”
여기서 꼼짝없이 죽는다는 생각에, 파랑 구슬 따위는 잊고 있었어,
그런데, 구슬을 찾으니 티나도 생각나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 정말 고마웠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전 길산이라고 합니다.”
“제 이름은 플랑입니다.”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래가 물을 뿜었다 내뱉을 때 나가면 됩니다.”
“우리가 입구 쪽으로 옮겨가야 할까요?”
“아닙니다. 고래는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어서 한 번씩 물 밖으로 숨을 내쉽니다. 숨구멍이 등 가운데 있으니까 그때 기회를 보고 나가는 겁니다.”
“네, 플랑을 만나지 않았으면 전 고래 밥이 되어서······.”
파랑 구슬을 만지며 다시 울먹거리자, 플랑이 말했어.
“소중한 구슬인가 봅니다.”
“네, 소중한 것입니다.”
“준비하세요, 내가 밀어주면 힘껏 나가는 겁니다.”
플랑은 내 이름을 부르며 말을 이었어.
“길산, 밖으로 나가면 얼른 돌아가세요. 가까이 있다가는 또 빨려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헤어지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인연이 되면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순간 고래가 힘껏 물을 뿜으면서 내뱉었어.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물 밖으로 튀어 나왔단다.
“어푸어푸!”
그때였어, 누가 나의 목을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어.
“길산, 고마워! 이렇게 돌아오다니.”
티나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지.
“날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럼, 널 두고 어떻게 가.”
나는 티나를 힘껏 안아주었어.
바다는 푸르고, 일렁거리는 잔물결이 나와 티나를 부드럽게 감싸주었지.
“어, 플랑은?”
“플랑이라니?”
“응, 고래 뱃속에서 남자 인어를 만났거든.”
“그렇구나, 플랑이 아니었으면······.”
남자 인어는 귀한 몸이라 아무 데나 나타나지 않는다고 티나는 말했어. 그리고, 엄지를 들어 올리면서 분명 우주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면서 치켜세웠어.
“아무튼, 네가 다치지 않고 온 것만 해도 꿈만 같아, 너무 기뻐!”
티나의 눈이 다이아몬드 해변에서 본 얼음 조각처럼 빛났단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티나 말대로 절벽 가장자리에서 엄마가 보였지.
“무사히 돌아왔구나.”
티나 엄마는 나를 먼저 안아주었지.
“파랑 구슬 이야기는 하지 마, 실망하실 거야.”
내 손을 잡은 티나가 속삭였지. 나는 티나 손바닥에 파랑 구슬을 살그머니 올려놓았어.
“와, 구슬을 잃어버리지 않았구나.”
“그럼, 플랑이 찾아주었어. 구슬도 함께 빨려들었나 봐.”
“정말, 다행이야.”
티나는 파랑 구슬을 꼭 쥐고, 가슴에다 안았어.
“잃어버린 줄 알고, 마음을 졸이며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나 엄청나게 고민했거든.”
엄마가 파랑 구슬을 손으로 살살 닦으니 그림 같은 문자가 보였어. 그냥 맑은 파랑 구슬이었는데, 하얀 글씨가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 신비로웠단다.
티나가 두손을 모으며 엄마를 바라보았지.
“세 이 두 르.”
“세 이 두 르.”
나도‘세 이 두 르’라고 따라 말했지.
아주 먼 옛날, 바이킹 시대부터 내려오는 주문이라면서 티나 엄마는 내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어.
“파랑 구슬을 몸에 지니면 힘들 때 도움이 될거야.”
구슬에 대고‘세 이 두 르’하고 주문을 외면 위험한 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어.
“길산아, 고마워! 네 덕분이야.”
“아닙니다. 저는 곁에 있었을 뿐입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된단다. 파랑 구슬을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네 덕분이야.”
다시 나를 안아주었지. 난 티나 엄마 품에서 외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면, 외할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안아주었지.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지켜보고는 재봉틀 앞에 앉아 옷을 만들곤 했단다.
외할머니가 선생님이었던 걸 너도 알지? 몸이 아파 학교를 그만둔 것까지도. 그 후, 옷을 짓거나 이불보를 만들어 나를 대학 공부를 시켰고, 나는 대학에 가서는 아르바이트하면서 대학원에도 가고, 남보다 일찍 교수가 되었지.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어. 다만, 즐겨 부르던 노래를 외할머니가 자주 불러 나도 좋아한단다. 외할아버지도 선생님이었는데, 외삼촌이 다섯 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 사고를 낸 운전사가 달아나는 바람에 외할아버지는 그 길로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어.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놀다가
아빠 생각나서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같이 살자 그랬죠.
외할머니가 어릴 적부터 가르쳐준 노래야. 나는 이 노래가 좋아서 종종 부른단다. 내가 부르면 네 외할머니도 재봉틀을 돌리면서 함께 부르곤 했지. 외할아버지와 같이 꽃밭을 만들고, 꽃을 심고 가꾼 것 같아 그리움이 피어나는 노래야.
“저녁 먹으러 와.”
티나 목소리에 나는 추억에서 깨어나 식탁 앞에 가서 앉았단다. 저녁은 정어리에다 야생 블루베리, 그리고 양젖으로 만든 치즈였어.
짙은 밤바다는 불빛 하나 없었지만, 찰싹거리는 파도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지. 꿈꾸던 일을 온몸으로 겪은 꿈같은 하루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