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글루카 베듀시

by 손수자

아침부터 비가 내린 날이었어.

창문에 부딪힌 작은 물방울이 큰 구슬이 되어 창문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단다.

“글루카 베듀시!”

창밖을 보고 있던 나에게 다가온 티나가 말했지.
“글루카 베듀시?”

“창문으로 내다보면 좋은데, 나가기는 싫은 날씨를 아이슬란드 말로‘글루카 베듀시‘라고 한단다.

“오늘 같은 날씨를 말하는구나.”

“‘글루카 베듀시’오늘은 쉬어야겠네.”

“아니, 비 그치면 나가야지,”
티나 엄마는 비가 오는데도 라바 필드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간다고 일찍 나가고 안 계셨었어.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면서 창문이 마구 흔들렸어.‘우르르 쾅쾅’천둥과 함께‘번쩍번쩍’번개가 계속 치면서 창문이 활짝 열렸단다.

그때였어. 열린 창문으로 나뭇잎 한 장이 폴 날아와 바닥에 사뿐 앉았어. 내가 나뭇잎을 들어 올리자, 내 손에서 빠져나가 빙그르르 돌면서‘쿵’하고 내려앉더라.

세상에, 비에 젖은 트롤 브로가 내 앞에 서 있었어.

“어머나!”

흠뻑 젖은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연신 재치기해댔어.

“에취, 에취!”

나는 얼른 수건을 가져다주었어.

“고마워.”

다시 만난 브로가 낯설지 않았지만, 그렇게 반갑지도 않았어.

“그때, 답도 알려주지 않고 가버렸지? 내가 쫓아가려다가 참았다.”

한낮이라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마치 날 봐준 것처럼 으스대었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빨리 말해, 지금 당장!”

숫제 명령하는 어투로 말하는 브로가 얄미웠어.

“곱게 말할 수 없어?”

두 팔을 깍지 낀 채, 티나가 노려보며 말했지.

“미안! 내 마음속에 있는 삼각형이 계속 콕콕 찔러.”

약간 멋쩍은 듯 브로가 말을 이었어.

“처음엔 나도 죄책감이 들지만, 나쁜 짓은 할수록 모서리가 닳아서 아픔이 사라지고 죄의식도 느껴지지 않아.”

“모서리가 닳으면 부드러워져야지.”

째려보는 티나의 눈이 무서웠어.

“그러니까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야.”

나도 한몫 거들었지.

“세상엔 완전한 것은 없어.”

나는 외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를 브로에게 해주었지.

“이란 사람들은 말이야. 아름다운 모양으로 양탄자를 짤 때, 일부러 흠을 하나 남긴대.”

“왜?”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대, 조금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 좋을 때도 있다더군.”

언제 왔는지 티나 엄마가 베리를 한 바구니 들고 와서 거들었어.

“인디언도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 때, 깨진 구슬 하나를 살짝 꿰어 넣는대.”

“깨진 구슬 때문에 목걸이를 못쓰게 되잖아요.”

티나가 말했어.

“아니야, 깨진 구슬 때문에 더 예쁘게 보이지 않을까?”

티나 엄마는 엄지를 들면서 웃어주었지.

“난 흠도 없고, 깨진 것이 없는 완전한 것이 좋아, 히히히.”

브로는 고개를 짤짤 흔들며 트레바리 같은 소리를 했어. 그러니까 티나와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주 보더라.

그새 파랗게 맑아진 하늘에는 솜사탕을 여기저기 널어놓은 것 같이 구름만 많았단다. 언제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거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날씨였어.

“나가자.”

티나가 재촉하자, 브로가 먼저 일어났어.

“안녕히 계십시오. 티나 어머니!”

브로가 꾸벅 인사를 해도 엄마는 고개만 끄덕이고 웃어주지는 않았어.

“브로에게 마음을 주면 안 돼,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꼭 자기 아버질 닮았다니까.”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꾸벅하고 나섰어.

“황금 폭포로 안내할게.”

브로가 초록색 귀를 만지며 중얼거리자, 한 마리 퍼핀이 되었어. 신기하더라고.

“여기가 굴포스라고 불리는 황금 폭포란다.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리는 물이야.”

세상에 있는 물이라는 물은 모두 황금 폭포로 모인 것 같았어. 금빛으로 빛나는 물보라가 계속해서 피워내는 곳에서 무지개를 본 나는 갑자기 허전해졌지. 이 아름다운 풍경 앞에 카메라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어. 혼자 왔을 때, 사진만 찍었던 곳이었지. 티나가 내 마음을 눈치채고 볼을 살짝 꼬집었단다.

“벌써 잊었어?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고, 그냥 즐겨!”

그때도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았어. 깊게 자리 잡은 욕심 때문이겠지.

“티나! 저기 좀 봐.”

나는 흥분한 나머지 소리치면서 손가락을 가리켰지.

금빛 물보라 속에서 함께 튀어 오르는 물고기, 남자 인어 플랑이었어.

“뭔데?”“

“플랑이야! 구슬을 찾아주었던 플랑이 여기 와 있다고.”

“어디, 어디?”

나는 플랑을 향해 날았단다.

“인연이 되면 볼 수 있다고 했죠?”

“그러게요, 무사히 돌아갔네요.”

티나가 곁에 와서 인사를 했어.

“구슬을 찾아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무슨 구슬인데?”

브로가 끼어들었어. 나는 브로에게는 구슬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브로가 플랑에게 바싹 다가가 물었어.

“파랑 구슬인데, 고래 뱃속에 있는 걸 찾아주었지. 소중한 것인가 봐.”

“뭐라고, 앵무 조개 안에 있는 그 구슬 말인가?”

갑자기 트롤의 모습으로 돌아온 브로가 플랑에게 다가가 물었어.

“아니, 넌 퍼핀도 아닌 것이······.”

플랑은 인사도 하지 않고, 물보라 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져버렸어.

“앵무 조개 속 구슬을 찾았다고? 네가?”

브로가 다그치듯, 나의 턱까지 얼굴을 갖다 대며 물었어.

“으음, 그래,”

“한 번 보여줘.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만 할게.”

“그냥 구슬이야.”

나는 시무룩하게 말하면서 뒷걸음쳤지.

“그만 가자.”

티나가 나의 손을 잡으려는데, 브로가 냉큼 끼어들었어.

“구슬을 보여주지 않으면 물보라 속으로 티나를 처넣어버릴 거야.”

“뭐라고?”

티나도 소리쳤지.

“어디 한 번 해봐. 네 마음대로 안 될걸.”

브로가 초록 귀를 만지면서 눈을 감고 중얼거리자, 눈썹이 엄청나게 길어지면서 티나를 휘감아버렸어. 명주실처럼 가늘었지만, 촘촘하고 긴 눈썹에서 빠져나가기 힘들어 보였어.

“브로, 티나를 풀어줘. 제발, 네 마음속 삼각형을 부드럽게 만들어.”
내가 달래자, 브로는 초승달처럼 예쁜 입을 크게 벌려서 빨갛고 긴 혀로 나의 얼굴을 마구 핥았어.

“이래도 안 보여줄 거야? 보여 달라고!”

“악!”

티나가 소리치자, 브로는 티나를 공중에서 한 바퀴 크게 돌리더니 물보라 치는 폭포 가운데로 훌쩍 던져버렸단다.

“티나, 티나!”

소리쳤지만, 티나는 물보라 치는 폭포 속으로 사라졌어. 파랑 구슬을 만지며 주문을 외워야 했는데, 망설이다가 티나를 잃어버리고 말았지.

“티나를 돌려놔!”

“헤헤, 이래도 구슬 안 보여 줄 거야?”

온몸에 침을 바르며 간질이는 브로에게 나는 외쳤어.

“제발, 멈춰, 멈추라고!”

나는 깃털 주머니에 든 파랑 구슬을 보여주고는 재빨리 넣어버렸지.

“뭐야, 그렇게 잠깐 보여주기야?”

“네가 보기만 한다고 했잖아, 그냥 구슬이야.”

억지웃음을 지으며 브로를 달랬단다.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구슬을 찾으려고 애썼는데, 네가 가지고 있을 줄 몰랐어. 구슬은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룰 수 있게 해준단 말이야!”

“트롤은 바위를 옮기고, 뿌리째 나무를 뽑고 농장에 있는 그 많은 우유까지 시어 버리게 하는 재주가 있잖아, 더 이상 무얼 바라니?”

“힘은 우리가 최고지. 하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 돌리는 데는 그 구슬밖에 없대.”

“이미 저질러 놓은 것을 바로 잡는다고? 말도 안 돼.”

억지를 부리는 브로가 너무 얄미웠지.

“황금 사과를 너무 먹은 우리 엄마가 아기가 되어 버렸어. 되돌리기 위해서는 앵무조개 속 구슬이 필요하대.”

“뭐? 엄마가 아기가 되었다고?”

“영원히 병들지 않고, 젊어진다는 말을 들은 엄마가 욕심을 부린 거지.”

“세상에, 영원히 병들지 않고 젊어진다고?”

“그래서 바이킹 때부터 전해오는 그 구슬이 필요하다고.”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혀를 차면서 말했단다.

“모든 것은 태어나면 늙고 병들어 죽는 거야. 늙지 않고 살고 싶다고? 어쩜, 그런 생각을.”

내가 가르치듯 말하니까, 브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면서 소리쳤어.

“난 네 제자가 아니야, 구슬 이리 내놔!”

팔짱을 꽉 끼고, 두 다리에 힘을 주면서 노려보고 있을 때였어. 갑자기, 브로가 초승달 같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풍선을 불 때처럼‘후’불었어. 브로의 입에서 큰 해바라기 꽃이 피어났어. 그 속에 박혀있던 씨앗들이 화살이 되어 나를 쏘아대기 시작했단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피했으나 쓰러지고 말았어. 그때, 파랑 구슬에 대고, ‘세 이 두 르!’라고 주문을 외워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지.

내가 깨어났을 때, 브로는 없었단다. 티나와 구슬까지 잃어버린 나는 털썩 주저앉았어. 울음도 나오지 않았어. 브로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티나 엄마 말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야 했는데 말이다.

“우선 티나부터 찾아야 해.”

내가 벌떡 일어나 티나가 사라진 폭포를 쳐다보는 순간이었어. 무지개 꼭대기 빨간색 다리에서 플랑 품에 안겨있는 티나가 보였어. 순간 폭포가 멈추었고, 무지개가 일곱 빛깔 사다리로 변하더니 내가 있는 잔디밭으로 이어졌단다.

티나를 풀밭으로 살짝 내려준 플랑이 가쁘게 숨을 내쉬었지. 해녀들이 내는 숨비소리와 비슷했어. 플랑은 물에 젖은 머리를 손으로 빗어 올리며 말했단다.

“트롤을 늘 조심해야 해요!”

“플랑, 고맙습니다.”

거센 물보라 속으로 사라진 플랑을 나는 두 손 모으며 바라보았어.

“돌아가자.”

어깻죽지가 축 처져있는 모습을 본 티나 엄마는 말없이 야생 베리 차를 내왔어.

“또 구슬을 찾으러 가겠어요.”
“구슬은 색깔에 따라 쓰임이 달라. 파랑 구슬은 힘들 때, 빨강 구슬은 시간 여행을, 그리고, 노랑 구슬은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단다.”

“브로도 할아버지 때부터 그 구슬을 찾으려고 애썼나 봐요.”

브로가 한 말을 티나 엄마에게도 일러주었지.

티나 엄마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지.

“파랑 구슬로는 아기가 된 엄마를 되돌릴 수 없어. 트롤에겐 그냥 구슬일 뿐이야.”

“파랑 구슬을 다시 찾아야 할 텐데, 어떡하죠?”

“라바 필드에 있는 할머니한테 가봐야지. 많은 것을 알고 계신 분이니까.”

“그럼, 아빠도 뵙고 다녀올게요.”

티나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단다.

‘할머니가 사는 곳에 티나 아빠가 있다고?’

나는 티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궁금했어.

티나 엄마는 담자리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고, 하양 리본으로 묶어주었지.

이전 04화4화 세이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