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이동을 했다고요?”
아이슬란드에서 우리나라까지, 그 말을 들은 해윤은 웃음만 나왔다.
21세기에 축지법이라니, 흐흐.”
외삼촌의 전화를 받은 해윤은 자전거를 타고 연구실로 바퀴를 빠르게 돌렸다.
가로수가 온통 배롱나무 길이었다. 꽃은 활짝 피어 방글거리고, 바람도 가로수길 사이로 헤집고 다녔다.
강의가 없는 토요일 오후였지만, 강의실 밖에는 노트북을 든 형과 누나들이 많이 보였다.
노크도 하지 않고 교수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어이, 해윤!”
해윤은 외삼촌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외삼촌한테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함, 그 품에서 떨어진 해윤이 말했다.
“에이, 거짓 뿌리!”
해윤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한 외삼촌이 말을 이었다.
“분명 아이슬란드에 있었는데, 내가 이렇게 교수실 창밖을 보고 있더라니까.”
“그보다 나에게는 낯선 나라인데, 아이슬란드는 어디쯤 있어요?”
“북유럽에 있는 섬나라야, 대서양의 중앙에 있지.”
“정말 궁금한 것은 이름처럼 얼음 나라예요?”
“이름보다는 따뜻해. 대서양의 따뜻한 기운과 북극의 찬 공기가 만나 기후 변화가 심하더군.”
외삼촌은 신나 보였다.
“아이슬란드에서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5분만 기다리라는 말이 있어. 금방 비가 왔다 개이고, 개었다가 또 비가 오더라고.”
외삼촌은 책상에 놓여있는 구슬을 가리켰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노랑 빛깔의 구슬 같은 사탕이었다.
“사탕이잖아요.”
“그래, 마법의 알사탕이지.”
외삼촌은 여행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해윤에게 건넸다.
“여기, 선물.”
“그림책이잖아요!”
해윤은 실망한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멋진 선물을 기대했었는데, 그림책이라니 실망스러웠다.
단단한 표지에 보통 그림책보다 가로가 길었다. 주황색 뭉툭한 부리를 가진 새가 도깨비 같은 트롤의 어깨 위에 앉아있었다.
“아이슬란드 새 퍼핀이란다.”
“퍼핀? 펭귄을 닮았네요.”
“그래, 알사탕과 그림책 덕분이지, 꿈인지 현실인지 아직도 헷갈린단다.”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고요?”
꿈을 꾸는 듯한 외삼촌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마치 무대에 선 배우 같았다.
외삼촌의 볼록 튀어나온 목울대가 무척 낯설었다. 왼손으로 오른 팔꿈치를 잡고 오른손으로 턱을 감싸며 말했다.
내가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에 간다고 하니 조교 선생님이 말했지.
“아쿠레이리에 가거든 카페‘파란 주전자’에 들렀다 오세요. 멋진 곳이에요.”
그림엽서 같은 그 마을에 간 이유는 조교 선생님 때문이었어.
내일이면 아쉬운 귀국 날이라 차나 한잔 하러 그곳을 찾았어.
네거리 모퉁이에서 그 카페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단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서점이었어. 별마당 도서관처럼 서가로 가득 찬 서점에서 유난히 그림책이 진열된 곳에 눈이 가더라. 주황색 부리가 예쁜 새가 손짓하는 것 같았거든.
“오, 퍼핀이구나.”
도깨비같이 생긴 트롤 머리 위에 앉은 퍼핀에게 마음이 갔어. 다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림책을 계산하러 가다가 멈췄지.
“이 요술 카드를 보고, 사탕을 먹으면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여러 가지 그림엽서와 카드가 꽂힌 곳이었어. 사탕까지 달린 카드에 입맛이 당기더군, 비싼 물가에 비하면 가격까지 착했어.
나는 퍼핀과 황금 폭포, 그리고 오로라가 찍힌 카드 석 장을 골라 그림책과 함께 계산하고 나왔어. 사탕 때문이었는지 코끝으로 스치는 바람까지 달게 느껴졌어.
“아, 저기, 파란 주전자!”
하얀 바탕에 파란 주전자가 그려진 카페가 보였어. 간판이 너무 작아 바로 곁에 있었는데도 찾지 못했단다. 낯선 곳에서 조교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지.
창가에 자리 잡은 나는 카페 안을 둘러보았단다. 손님은 나까지 여섯이었는데, 모두 혼자고 종업원은 보이지 않았어.
나는 그림책과 함께 요술 카드를 테이블 위에 놓았단다.
디자인이 멋진 북유럽형 의자는 푹신했어. 팔걸이에 팔을 얹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카드 한 장을 들었어.
“이 요술 사탕을 먹으면 당신은 오로라를 볼 수 있어요.”
빨강 알사탕이 든 오로라 카드였지,
“허허, 여름인데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다른 카드도 궁금해졌어. 엄청난 양의 물을 품은 폭포 가운데 무지개가 동그랗게 걸려있는 황금 폭포 풍경이었어.
“이 사탕을 먹으면 당신은 상상의 나라로 갈 수 있어요.”
“상상의 나라?”
오로라보다 내 마음을 당기는 것은 상상의 나라였어. 나는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투명하고 맑은 파랑 사탕을 까서 입에 넣었단다. 새콤달콤하면서 약간 짠맛이 느껴졌어.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다가 탁자 위에 있는 벨을 발견하고는 꾹 눌렀단다.
바퀴 달린 로봇이 네모난 액정에 동그란 눈을 달고 내 곁으로 오고 있었어.
빙하와 화산으로 이루어진 장엄한 폭포에서 핀 무지개, 깎아지른 절벽에 사는 예쁜 새 퍼핀, 화산재로 덮인 삭막한 땅에 추위를 뚫고 자란 이끼와 잔디, 그리고, 멋지게 물을 뿜는 고래와 펄떡거리는 대구 떼를 본 이곳에서 최첨단 로봇이 서빙하는 모습이 낯설고 신선했단다.
목에는 퍼핀이 그려진 하얀색 수건으로 매듭을 묶었는데, 비행기 승무원 같았어.
나는 주문할 생각도 하지 않고, 위아래로 훑어보았어. 사람의 팔처럼 관절을 꺾어 화면을 가리키고 있었지.
눈을 크게 뜨고 한 번 더 쳐다보았어.
“주문하세요.”
눈이 예쁜 물총새처럼 목소리도 맑았어. 메뉴판에 있는 카페라테에 버튼을 누른 후, 카드로 결제까지 했단다.
찰랑찰랑 넘칠 듯 말 듯 담긴 커피는 향기로웠어.
먼저 아이슬란드를 다녀온 조교 선생님이 여러 곳의 풍경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어. 멋진 풍경에 반한 나도 무척 가고 싶은 곳이었지.
하지만, 논문 마무리와 강의 시간 때문에 벼르고만 있었거든. 마침 가까운 노르웨이에서 학회가 있었단다.
“학회를 마치면, 며칠 여유가 있으니 다녀오세요. 아마 상상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조교 선생님이 이 카페를 소개해준 이유를 알 것 같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 깊숙이 앉아 그림책을 들었어. 표지에 그려진 퍼핀에게 자꾸 눈이 가더라. 잠시 보고 있는데, 트롤 머리 위에 앉아 있던 퍼핀이‘포르르’날더니 내 맞은편에 앉는 거야.
순간,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춰진 것 같았어. 그런데 말이야.
“안녕하세요?”
인사까지 하더라고.
“네, 반갑습니다.”
엉겁결에 나도 인사를 했단다.
“불과 얼음의 나라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여긴 동화 나라네요.”
비록 새이긴 했지만, 말을 낮출 수 없었어.
그리고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그동안 다녔던 곳을 신나게 이야기했어, 특히 여기서 보았던 무지개에 대해서 말했단다.
황금 폭포에서 보았던 거대한 물줄기 사이로 동그랗게 핀 무지개와 양과 말이 비에 젖은 풀밭 저편에 핀 무지개는 환상적이었다고 했어. 그렇게 크고 멋진 무지개는 태어나 처음 보았고, 너무 아름다웠다고 말했지. 그리고, 그 풍경이 사라질까 조바심을 내면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고 했어.
퍼핀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내 얘기를 듣고는 이름을 먼저 말하더라.
“티나라고 해요.”
“한국에서 온 동길산입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칩니다.”
내가 손을 내밀자, 티나도 내 손을 잡아주었어.
“그럼”
티나가 날개를 사뿐 들어 올렸어. 나는 날아가 버릴까 봐 조바심이 났어.
“아쉽습니다, 전 내일 떠나야 하거든요.”
나는 가방 속에 든 카메라를 꺼내서 이 순간을 찍고 싶었지. 티나 또한 나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이었기 때문이야.
“다이아몬드 해변에는 다녀오셨나요?”
“네, 빙하 조각이 다이아몬드처럼 쫙 깔린 곳,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백 장도 넘게 찍었답니다.”
나는 흥분해서 말을 이었단다.
“얼음 조각이 햇볕을 받아 보석을 뿌려놓은 것 같이 반짝거렸어요.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턱시도를 한 신랑이 영화 장면 같아서 그것도 카메라에 담았지요.”
“햇볕을 받아 반짝이던 얼음 조각이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던가요?”
“관심이라뇨? 무슨 관심······.”
“사진만 찍었군요.”
“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사진부터 찍는답니다, 사진밖에 남는 것이 없으니까요.”
“길산은 아름다움을 대하는 태도가 부족한 것 같군요.”
“네?”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요, 무지개가 그렇고, 다이아몬드 해변 또한 그래요.”
머릿속에 번개가‘번쩍’지나가는 듯했어.
“아름다운 것을 보면 잠깐 멈춰 보세요, 숨을 죽이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티나가 마치 어린 왕자처럼 말을 이었어.
“아름다운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지요.”
멋진 장면을 느끼지도 않고, 사진만 찍어댄 자신이 부끄러웠단다.
“아,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내가 자리를 고쳐 앉아 잔을 들었을 때, 커피는 이미 바닥을 보였어.
“이곳에서 즐기지 못하고, 떠나니 아쉽네요.”
그런데, 티나가 조심스럽게 묻는 거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여기선 시간을 늘릴 수 있거든요.”
“시간을 늘릴 수 있다고요?”
“네, 남은 하루를 일주일로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진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텐데요.”
“정말입니까?”
“길산에게는 요술 사탕이 있잖아요.”
“네, 파랑 사탕은 먹었고, 빨강과 노랑 사탕이 남아있어요.”
“길산은 이미 상상의 나라에 와 있어요, 하루를 일주일로 만들기는 쉽답니다.”
“그렇다면?”
“빨강 사탕을 드세요, 운이 좋으면 여름에도 오로라를 볼 수 있듯이, 길산의 시간도 느리게 갈 수 있어요.”
나는 빨강 사탕을 입 안으로 넣었지.
새콤달콤하면서 짠맛이 느껴졌던 파랑 사탕과 달리 쓴맛만 났지만, 입천장에서 혀로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거든.
갑자기 티나가 눈앞에서 사라졌어.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너무 서운했단다.
그런데, 그림책 표지에 얌전히 앉아있더군.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그림책을 안고 일어섰어. 들어올 때는 아무도 반기지 않았는데, 나가려니 목소리가 예쁜 로봇이 인사하더라.
“안녕히 가세요.”
꿈을 꾼 것 같은 나는 카페를 나와 ‘파란 주전자’가 그려진 간판을 올려다보았지.
간판 너머 파란 하늘에서 날개를 파닥이며 티나가 손짓하고 있었어.
“함께 하려면 날아오르세요.”
엉겁결에 나는 양팔을 벌리고,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펼쳤지.
어느새, 한 마리 퍼핀이 된 나는 티나를 따라 날아가고 있었어.
“아, 마법의 알사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