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황금 항아리에 든 뜸부기 깃털

by 손수자


드디어, 그날이 왔어.

“티나! 파랑 구슬은 네가 가지고 있어.”

“왜, 자신이 없어?”

“응, 급한 일이 생기면 구슬 생각이 나지 않아, 주문도 잊어버리고.”

나는 티나를 보고 웃었어.

“걱정하지 마, 내가 가지고 있을게. 할머니가 튼튼한 주머니를 만들어주었거든.”

비가 그친 스포가포스는 엄청난 물소리로 다른 소리는 다 집어삼켜 버렸어.

“저기 봐,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가 생겼어.”

티나가 큰 소리로 외쳤어.

“그래, 조심해서 건너자.”

티나가 먼저 날아올라 다리 끝에 섰어. 보라색 다리는 마치 한 줄로 되어 있는 곡예사의 줄처럼 출렁거렸단다. 균형을 잡지 않으면 폭포 밑으로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지. 하얗게 일어나는 물거품이 떨어지면서 물방울이 튀어 올라 온몸을 적셨어. 한발 한발 줄에 몸을 맡기듯 조심조심 내려갔단다. 초승달이 반듯하게 누워있는 것 같은 다리는 미끄러지듯이 내려가면서 앞으로 나가야 했지. 초승달 모양의 실 다리는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졌다가 제멋대로여서 자칫하면 폭포 속으로 떨어질 것 같았어. 마음을 졸이면서 한참 내려가니 약간 편편한 곳에 닿았는데, 무언가 ‘반짝’하고 빛났단다. 자세히 보니 맑은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였어. 티나가 웅덩이를 폴짝 뛰어 건넜단다. 작은 개울물 건너듯 쉽게 보였어.

“길산, 빨리 뛰어! 웅덩이가 점점 커지고 있어.”

힘껏 티나가 있는 쪽으로 모둠발로 뛰었지.

그런데, 아이고, 오른발은 티나 쪽에 닿았는데, 왼발이 웅덩이 속에서 달랑거렸어.

“내 손을 잡아!”

티나의 손을 잡고 간신히 올라가 돌아보니 깊고도 푸른 우물이었지. 우물은 점점 커지면서 푸르고 깊은 물이 찰랑거렸단다.

“후!”

이제는 다시 올라가야 했어. 여전히 줄은 출렁거렸단다. 두 손과 두 발로 이를 악물고 올라갔지.

“난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단다. 다리 끝에서 티나가 소리쳤어.

“와, 저기 나무 위에 반짝거리는 것이 보여!”

가슴이 두근거렸지. 축 늘어진 가지에 뾰족한 잎이 나 있고, 갈색 나무껍질을 보니 오래된 스프러스 가문비나무가 틀림없었어. 티나가 ‘폴’ 날아올라 황금 단지를 들여다보면서 외쳤단다.

“야, 뜸부기 깃털이 있어!”

나도 스프러스 나무 위로 날아올랐지. 황금 단지에는 뚜껑은 없었는데, 깃털 하나가 단지 안을 빙빙 돌고 있었어. 단지는 온통 금빛으로 빛났고, 깃털 또한 황금색이었어. 움직이는 깃털 말고도 바닥에는 깃털이 더 있었는데 그 깃털은 모두 은빛이었단다.

“어떻게 잡지? 마치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돌고 있으니.”

티나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했지.

“그러게, 빙빙 도니까 잡기 힘들구나.”

두 손으로 살며시 잡아보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단다. 손 사이로 빠져나간 깃털은 계속 빙빙 돌았어. 반짝반짝 빛나서 눈이 부시기도 했어. 손에 힘을 실을 수도 없었지. 그러면 바스러질 수가 있으니까,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단다.

“어머, 어떡해. 어떡하면 좋지.”

발을 동동 굴리는 티나를 보고 검지로 입을 가렸어.

황금 깃털은 어느 정도 돌다가 단지 아구리에서 잠깐 쉬는 순간을 발견했거든.

그때, 깃줄기 끝을 냉큼 잡아버렸단다.

“잡았다,”

“휴!”

황금 깃털은 약간 움찔하더니 내 엄지와 검지에 깃대가 잡혔지.

“이걸 어떻게 가져가지?”

걱정스러운 티나의 눈 사이가 찌푸려졌어.

“깃털 사이에 꽂아 가면 어떨까?”

티나가 손뼉을 치면서 기뻐했단다.

“길산, 넌 천재야!”

내가 날개를 펼치자, 티나가 도리질했어.

“아니, 내 날개에 꽂아. 파랑 구슬도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자. 어서.”

티나의 날개 속 사이로 조심스럽게 깃털을 꽂자, 티나는 황금 퍼핀이 되었지. 눈이 부셨어.

“출발!”

내가 앞장섰단다.

한 번 지나왔던 길이니까 힘들지 않을 거로 생각했어. 그런데, 너무 낯설었지. 올 때와 완전히 딴판이었단다. 파랑 구슬을 찾아올 때처럼 긴장을 풀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떴어.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갔어. 드디어 중간 지점인 편편한 곳에 닿았는데, 올 때처럼 작은 우물이 아니었지. 끝이 보이지 않는 넓고 푸른 호수가 펼쳐져 있었어. 물결은 잔잔하고 반짝반짝 빛났단다.

“우리가 건넜던 작은 우물이 넓은 호수가 되어버렸어.”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빨리 건너야 해.”

티나가 조바심을 냈어.

“자, 날자.”

티나가 날아올랐어. 얼마쯤 갔을까?

“길산, 길산! 내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어. 더 이상 날 수가 없어.”

“주문을 외워!”

“세 이 두 르!”

“주문을 외우고 있는데도 가벼워졌다가 또 무거워져!”

“세 이 두 르!”

티나 곁에서 함께 주문을 외웠지만, 축 처져있는 날개가 너무 힘들어 보였단다.

“오, 저기 섬이 보여. 저기까지 힘내!”

“그래, 좀 쉬어 가야겠어.”

금모래가 쫙 깔린 섬 가운데 모자를 얹어놓은 것 같은 바위산이 있고, 야자나무가 빙 둘러싸고 있었어.

“아, 목말라.”

야자나무 아래 모래를 동그랗게 모아 티나를 쉬게 하고는 호수 쪽으로 갔어. 티나에게 목을 축이게 하려고 두 손으로 물을 뜨다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단다. 동글동글한 마리모처럼 생긴 식물들이 어깨를 걸고 떠 있었는데, 초록색이 아니라 모두 빨간색이었어. 빨간 물빛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지. 뒷걸음치면서 돌아가려는데 빨갛고 동글동글한 마리모처럼 생긴 물체가 나를 덮쳤어. 빨강 실타래처럼 부드럽긴 했는데, 진흙처럼 끈적끈적한 것이 내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단다. 나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호수 속으로 빨려 들어갔어.

호수 안은 온통 빨갛고 동글동글한 마리모처럼 생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단다. 나는 이리저리 헤엄치면서 올라가려고 애를 썼으나 그럴수록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호수 속에서 한참을 헤맸지. 그러다가 오로라처럼 반짝거리는 날개를 가진 새를 보았어. 장미색 갈매기였단다.

“끼룩끼룩!”

흰 눈과 연분홍 얼음 속에 비친 것처럼 투명한 새가 노을 색 날개를 편 채로 서 있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날개만 파닥이고 있었지. 그때, 장미색 갈매기가 한쪽 날개를 약간 움칠거리면서 말했단다.

“여긴 퍼핀이 오기에 너무 위험한 곳인데······.”

가만히 있으니까 빨강 마리모 같은 것들이 내 몸에서 떨어져 올라가 버리더라.

나는 지금 여행 중이며 그동안 퍼핀을 만나 친구가 되고, 트롤 브로와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를 위해 황금 단지 안 뜸부기 깃털을 구해서 가는 중이라고 했지.

“결국 뜸부기 깃털은 욕심을 부린 죄를 다시 사해준다는 말이군.”

장미색 갈매기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어.

“그럼, 나에게도 뜸부기 깃가지 하나 주고 가렴.”

처음엔 호수 위에 떠 있는 동글동글한 마리모가 일곱 색깔이었다고 했어. 그런데, 장미색 갈매기가 무지갯빛 날개를 갖고 싶어 마리모가 가진 색으로 마구 칠을 했단다. 그랬더니, 마리모들은 모두 빨강으로 변해버렸고, 반짝이는 날개는 가졌지만, 날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어.

“하지만, 뜸부기 깃털은 바스러지기 쉬워서······.”

“그래서 못 준다는 건가?”

“깃털은 친구가 가지고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어.”

“그럼, 친구를 여기로 데리고 올까?”

“아니야, 깃털은 진흙처럼 끈적끈적한 물속에는 붙어버리지, 내가 올라가 이야기해 볼게.”

어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단다.

“분명 다시 돌아올 거지?”

“그건 힘들어, 가지고 온다고 해도 못쓰게 되면 소용이 없잖아, 네가 올라오든지.”

나는 어쩔 수 없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어. 마음이 무거웠지. 장미색 갈매기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부리로 올라가라는 시늉을 했어. 힘들게 호수 위에 올라와 털썩 주저앉았단다. 야자나무 아래에 있어야 할 티나가 보이지 않았지.

“티나, 티나!”

큰 소리를 불렀더니 티나가 손짓했어.

“왜 이렇게 늦었어?, 목이 말라 떨어진 야자열매 물을 먹었어.”

“후, 다행이다. 좀 어때?”

“괜찮아, 더 쉬면 좋겠는데······.”

“아니야, 티나! 여긴 위험한 곳이야, 빨리 가야 해.”

“무슨 일이 있었구나.”

“응, 호수는 빨간 마리모로 가득 찼고, 욕심 많은 장미색 갈매기가 뜸부기 깃털을 탐내고 있어.”

내가 호수 깊은 곳에 끌려간 이야기를 해주자, 티나가 주문을 외면서 날아올랐어. 그러자, 수천 개의 빨강 마리오들이 풍선처럼 떠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단다. 우리는 주문을 외면서 더 높이 날아올랐어.

“세 이 두 르, 세 이 두 르, 세 이 두 르!”

“툭, 툭, 툭, 툭!”

한참을 오르다가 내려다보니 빨강 마리오가 하나둘씩 호수 위로 떨어졌지. 날지 못하는 장미색 갈매기는 끼룩끼룩 황금 모래 위에서 울고 있었단다. 호수를 벗어나자마자,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호수가 사라져 버렸어.

“휴, 다행이다.”

“이제, 다 왔어. 이곳만 오르면 비프로스트 다리 끝이야.”

다리는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졌다가 제멋대로였지만, 우렁찬 폭포 소리가 들리는 듯했어.

“폭포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얼추 다 왔나 보다.”

한 손과 한 발만 오르면 바로 다리 끝이었어. 이제 다리 끝에서 ‘폴’ 날아서 잔디가 있는 곳으로 닿기만 하면 되었지. 가슴이 불타는 듯 뜨거워지고, 해냈다는 생각에 티나를 부르는 순간이었어.

“악!”

티나가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어. 나는 얼른 한 손으로 티나를 잡고, 다른 손으로 비프로스트 다리 난간을 잡았단다. 다리가 출렁거렸어. 그때, 빨간 마리오들이 높은 사다리를 만들어 꼭대기에 분홍 갈매기를 태우고 나를 낚아채려고 했어. 이리저리 피하면서 이를 악물고 견뎠으나, 힘이 빠져 난간을 놓치려는 그 순간이었지. 티나가 휘파람을 부니까 어디서 나타났는지 플랑이 티나와 나를 안고 폭포 밖으로 밀어 올리고 있더라.

“세 이 두 르!”

“세 이 두 르!”

“세 이 두 르!”

티나가 쉬지 않고 주문을 외웠지. 분홍 갈매기가 폭포 속으로 쓰러져 들어가고, 하나, 둘씩 빨간 마리오들이 폭포의 물살 속으로 사라졌단다. 폭포는 쉬지 않고 빛나는 물보라를 피워내다가 잠깐 멈췄던 무지개다리도 함께 빠져버렸어. 순간 폭포가 멈추었고, 나는 잔디밭에‘퍽’하고 떨어져 버렸지.

티나를 풀밭으로 내려준 플랑이 또 숨비소리를 내었어. 그때처럼 플랑은 물에 젖은 머리를 손으로 빗어 올리며 말했단다.

“저는 깊은 바다로 떠납니다. 이제,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어요. 안녕히!”

폭포 속으로 뛰어든 플랑의 꼬리가 마치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지.

“플랑, 플랑, 플랑!”

나는 고맙다는 말 대신에 플랑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어. 흐린 하늘이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오로라가 춤추는 것 같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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