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비프로스트 무지개 다리

by 손수자


해님이 먼저 일어나 초록 잔디를 햇살 손으로 어루만지고 있었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맑은 날이었어. 아침 이슬은 사라졌고, 코끝으로 스미는 공기가 싱그러웠지. 카트린 할머니 집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나는 밖으로 나왔단다. 금방 티나도 일어나 나왔어.

티나와 나는 말없이 걸었지. 먹구름에 갇힌 나의 마음이 서서히 거두어지는 듯했단다. 하지만, 갑갑한 마음은 초록색을 보아도 쉽게 나아지지 않았어.

“오, 여기도 담자리 꽃 천지야.”

담자리 꽃이 쫙 깔려있었어. 하나둘 꺾어 꽃다발을 만들었지. 그리고 제일 예쁜 꽃 하나를 따서 티나의 귓가에 꽂아주었단다.

“내 마음이야.”

수줍게 웃는 티나가 외할머니를 닮은 것 같았어. 꽃다발을 받은 티나가 아버지 묘석 쪽으로 걸어갔어. 십자가에는 싱싱한 디기탈리스가 또 얹어져 있었는데, 꽃잎에는 수정구슬처럼 투명한 물방울이 맺혀있었지. 아버지 묘석 앞에 멈춰 선 티나가 꽃다발을 나에게 건넸단다. 말없이 받아 십자가 앞에 놓고, 큰절을 했어. 담자리 꽃에서 피어난 향기가 코끝으로 들어왔단다. 잠시 눈을 감고, 그대로 엎드리고 있었어.

“그만 일어나, 길산!”

티나가 나의 팔을 잡았어. 나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여 절을 하였어.

“아빠가 살아있다면 엄청나게 좋아했겠다.”

나는 티나 손을 한 번 잡아주고는 뒤로 물러나 잔디 위에 앉았지. 잔디밭이 부드럽게 내 몸을 감쌌고, 불어오는 바람과 풀냄새가 내 코끝에서 풀 풀 풀 날렸어.

“티나! 지난밤에 한잠도 못 잤어, 우리가 브로를 도와줄 방법은 없을까?”

만약 네 할머니가 아기가 되었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보았지. 아기가 된 우리 엄마, 생각하기만 해도 괴로웠단다.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문다는 건 사라지는 것보다 안타깝고 안 됐다는 생각이 자꾸 피어났어.

“브로가 좋은 친구는 아니지만, 미운 정도 정이잖아.”

“싫어!”

티나는 생각보다 냉정했어.

“도와주자고? 난 싫어! 브로는 약속도 지키지 않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잖아. 난 우리 아빠처럼 트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거야.”

“무지개다리는 우리만 건널 수 있어. 브로는 가고 싶어도 못 가잖아, 또 우리에게는 파랑 구슬도 있고······.”

대답도 하지 않고 벌떡 일어난 티나는 저만치 걸어가 버렸지. 나도 바지를 털면서 일어났어.

그때, 내 앞을 가로막는 소녀가 있었어. 맨발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손에는 손잡이가 긴 주머니를 흔들며 말을 걸어왔어.

“티나가 화났네.”

“누군데 갑자기 나타나서 그래?”

“난 이 마을에 사는 호드라고 해.”

이름을 말하면서 주머니를 흔들다가 어깨에 척 올리더라.

“······, 그래? 난 길산이야.”

그냥 무시하고, 티나를 따라갈까 하다가 이름을 말해주었지.

“길산, 티나가 왜 화났어?”

“별거 아니야.”

“브로 때문이지?”

“네가 브로를 알아?”

“그럼, 여긴 조그만 동네니까 대부분 안단다.”

“브로에게 마음을 다쳤나 봐, 그래서 힘들어해. 하지만, 금방 풀릴 거야.”

“비프로스트 다리 넘어 황금 깃털을 찾고 싶은 거지?”

“어쩌면, 내 생각까지 알고 있네. 여기는 생각도 소문이 나는 곳이야?”

“어쩌면······.”

“어떻게?”

“나에게는 수정 구슬이 있거든.”

“수정 구슬? 그건 어디에 쓰는 거야?”

“수정 구슬은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네 마음을 불러올 수도 있어.”

“마음을 불러온다고?”

“그럼, 지나간 것이나 앞으로 올 것, 또는 보고 싶은 것까지 다······.”

“그래?”

나는 호기심이 바짝 일었지.

“언제, 어디로 가고 싶어?”

호드는 주머니를 풀어 수정 구슬을 꺼내더니 잔디 위에 살며시 놓더라. 나도 모르게 그 앞에 꿇어앉았어. 수정 구슬에 내 얼굴이 비쳐 커다랗게 보였다 사라졌어. 나는 추억으로 간직했던 어린 시절, 우리 집으로 걸어 들어갔지.

넓지 않았던 우리 집 마당에는 언제나 꽃이 피었어. 부지런한 외할머니는 쓸고, 닦고, 뿌리고, 가꾸는 것이 취미였어. 우리 마당에는 사철 꽃이 피었지. 꽃샘추위를 견딘 향기 좋은 매화, 솜사탕을 뜯어 걸쳐놓은 목련, 그리고 철쭉이 피고, 손톱에 물들이는 봉선화와 난쟁이 채송화, 향기 짙은 국화까지 가득했단다. 계절마다 피는 꽃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어.

“괜찮아, 괜찮아. 잘 크고 있어.”

나는 늘 혼자였지만, 피고 지는 꽃이 내 형제처럼 느껴졌어.

“예쁘다, 예뻐. 고마워!”

반들반들하게 잘 닦여진 마루에는 외할머니가 일하는 재봉틀이 있고, 내가 소반을 놓고 공부하던 곳이었어. 달달거리는 재봉틀 소리와 함께 마루 냄새는 아직도 날 따라다니고 있단다. 낙엽을 태우면 고소한 냄새, 초록 들길 냄새가 합쳐진 세상에서 가장 정겨운 냄새라고 생각했어. 그 냄새가 좋아서 코를 대고 킁킁거리다 두 손을 머리 뒤에 놓고 잠이 들곤 했단다.

어느 날, 재봉틀 소리와 살살 부는 바람과 함께 잠이 들었어. 얼마나 잤는지, 저녁인데 아침으로 착각한 나는 가방을 메고 마당으로 나섰어. 그때, 외할머니가 그렇게 크게 웃는 것을 처음 보았단다. 언제나 모범생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한 실수라면 실수였지.

또 한 번씩 생각나는 곳은 내 방 동쪽 창문에서 보이는 좁고 낮은 길이 있었어. 버스 종점까지 이어진 길은 창문 앞에 놓인 책상에 앉으면 버스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을 다 볼 수 있었지.

비 오는 날이었어. 그날은 외할머니가 안 계셨어. 턱을 괴고 길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지.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갑자기 소나기로 변했고, 방금 버스에서 내린 소녀가 우리 집으로 뛰어들었어. 낯설었단다.

내가 마루로 나가자, 비가 와서 그칠 때까지 있겠다고 말했어. 난 고개만 까닥하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왠지 낯이 익었고,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 두근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설레는 그런 느낌이었단다.

그냥 혼자 두는 것이 아닌 것 같아 다시 마루로 나갔더니, 꽃밭을 바라보며 그대로 서 있었어. 블라우스와 치마도 젖어있었고, 오늘 신은 것 같은 하얀 운동화에 빗물이 튀어 축축해진 것이 내 마음마저 젖는 것 같아 수건을 가져다주었어.

“고마워.”

두 손으로 수건을 받아 얼굴을 닦는 소녀를 본 순간, 숨이 멈추는 줄 알았어. 목련이 비에 젖어 있는 것 같았지. 내 가슴에 방망이 치는 소리가 소녀의 귀까지 들릴 것 같아 부끄러웠단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빼꼼 문틈으로 보니 마루에 앉아 양말을 벗고는 발을 닦고 있었어. 하얀 발이 너무 예뻤어. 비는 사정없이 쏟아부었지. 천둥소리가 나고 번개가 번쩍번쩍 난리를 쳤단다.

“길산아!”

외할머니도 옷이 다 젖어서 들어왔지. 소녀를 방으로 들어오게 한 외할머니는 내 티셔츠와 작은 치마를 주면서 갈아입게 했단다. 물기를 꼭 짠 소녀의 옷을 외할머니는 다리미로 다려주었어.

“웃마실, 약방 할아버지 외손녀야.”

약방 할아버지에게 손녀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처음 보았어. 약방을 그만두었는데도 외할머니는 여전히 약방 할아버지라고 불렀고, 속이 거북하거나 열이 나면 약을 받아오곤 했단다.

“수련아, 엄마는 좀 어때?”

“여전하세요, 안부 전해 달래요.”

“그래, 한 번 봐야 할 텐데······.”

수련 엄마랑 외할머니는 고등학교 동창이었어. 외할머니는 교육대학에 입학했고, 수련 엄마는 영문학을 전공해서 미국에서 결혼하고 귀국했다고 했어. 한동안 소식 없이 지내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단다. 그런데, 수련 엄마가 몹쓸 병에 걸린 후부터는 수련만 할아버지 집에 다녀간다고 했어.

“우리 엄마도 여기가 그립대요.”

“나아지면 함께 와.”

다림질한 옷을 갈아입은 수련이 인사를 했어. 비는 그쳤지만, 활짝 개지는 않았단다. 외할머니는 양단으로 만들어놓은 겨자색 목수건을 한지에 사서 수련에게 주었지.

“잘 가!”

나는 눈인사만 했는데, 수련은 작은 소리로 말했단다.

“잘 있어, 고마워!”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수련은 자기 엄마보다 먼저 하늘나라 별이 되었다고 하더라.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며칠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소리 없이 울었어. 엄청 친한 친구를 갑자기 잃어버린 생각이 들어 너무 슬펐어. 외할머니도 말없이 내 등을 토닥거려 주었지.

“보고 싶다, 수련이!”

금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자리에 수정 구슬만 남았어. 나는 어질어질해서 바닥을 짚고 일어났단다.

“어머? 네 얼굴이 발그레해졌네.”

아쉬웠어.

“호드! 황금 깃털을 구하러 가면 나를 도와줄 수 있어?”

“음, 생각해 보니 그건 좀 그래, 내 몸이 보기보다 무겁거든.”

수정 구슬을 주머니에 넣은 호드가 손사래를 치며 걸어가 버렸어.

“네가 날 필요로 할 때, ‘짠’하고 나타날 테니.”

아주 잠깐, 난 호드 모습에서 수련의 얼굴을 보았어.

“길산, 길산!”

카트린 할머니가 불렀어.

“아침 먹자.”

할머니가 내놓은 아침은 온통 샐러드뿐이었어. 빨간 야생 베리를 퓌레로 만들어 샐러드 위에 뿌려놓았지. 흔한 정어리는커녕 치즈도 없는 야채 식단이었어.

“카트린 할머니는 비건주의자란다, 채식만 하셔.”

“참,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우유가 있었지.”

할머니는 파란 잔에 하얀 우유를 가득 부어서 식탁 위에 놓았단다. 자상하고 인정 많은 할머니가 채식주의자라면 살아있는 모든 것에 사랑이 많은 건 틀림없겠지. 나는 침을 한 번 삼킨 후, 용기를 냈단다.
“할머니, 브로를 도와줄 방법은 없을까요?”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할머니는 내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어.

“브로를 도우려고, 왜?”

“어젯밤에 한잠도 못 잤어요. 할머니가 마련해 준 잠자리는 포근했지만, 브로를 생각하니 너무 불쌍하고 안 됐어요.”

“그래서?”

“브로가 가엽고, 브로 엄마 역시 안타까워서······.”

카트린 할머니는 티나를 힐끗 보고는 날 계속 바라보았지. 한 번 더 용기를 내서 길게 이야기했단다.

“우리 아버지는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처음에 엄마는 아버지를 치고 달아난 운전사를 용서할 수 없었대요. 미움과 괴로움의 나날을 잊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어요. 어느 날, 마하트마 간디가 한 말이 도끼처럼 가슴에 와 닿았대요. ‘약한 자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하는 마음은 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이다.’ 그 말을 곱씹으면서 뺑소니 운전사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은 편해졌으며 나를 더 강하게 키울 수 있었다고 했어요.”

내가 티나를 바라보니까 티나도 날 빤히 보고 있었어.

“넌 항상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했잖아. 아름다운 것 그대로 보라고 말이야. 미운 마음이 가득하면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없어. 미운 마음을 지우려면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해.”

카트린 할머니는 일어나 내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고는 창가로 갔어. 티나는 가만히 있었어.

“길산 말이 맞아, 내 마음을 위해서라도 용서는 필요하지.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브로가 파랑 구슬을 살짝 놓고 간 것은 미안했기 때문일 거야. 우리에게 도와달라는 뜻이기도 해, 그렇지 않아?”

나는 티나를 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했으나 마음은 조마조마했단다. 또 싫다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웠지.

“하지만, 비프로스트 다리를 어떻게 건넌담?”

혼잣말처럼, 나 들으라는 듯, 할머니에게 묻듯이 중얼거렸어.

“티나, 고마워!”

“아직은 용서가 안 돼. 하지만, 길산 네 말대로 노력은 해 보겠어, 자신은 없지만.”

“먼저 용서하겠다는 마음만 먹어 봐. 그러면 마음이 알아서 한다고.”

“치, 누가 선생님 아니랄까 봐.”

나는 창밖의 초록 잔디를 바라보았어. 초록 잔디가 내 눈으로 들어오고, 그 초록이 내 마음을 흠뻑 적셔주었단다. 그러다가 문득 브로의 몸이 초록색임을 기억하고 빙긋 웃었어. 티나도 나를 보고 방긋 웃었고, 할머니도 빙그레 웃어주었지.

“무지개다리인 비프로스트는 보통 무지개와 달리 거꾸로 되어 있단다. 빨강이 제일 밑에 있고 보라가 위에 있어. 그 다리는 초승달이 반듯하게 누워있는 것처럼 가운데가 깊단다. 그 가운데가 제일 위험하다고 했어.”

티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보다 더 열심히 듣고 있었어.

“비프로스트 다리를 건너면 바로 큰 나무가 있어. 스프러스라는 가문비나무지. 그 나무 꼭대기에 황금 항아리가 있단다. 그 안에 뜸부기 깃털이 있는데 너무 가벼워 날아가거나 부스러지기 쉽단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 파랑 구슬 말고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걱정하지 마세요, 플랑이 있어요.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휘파람을 불라고 했거든요.”

티나의 눈이 반짝거렸어.

“글루카 베듀시한 날에 가는 거다. 비가 그치면 바로 무지개가 생길 거야. 빨리 건너서 빨리 돌아와야 해. 무지개가 사라지면 비프로스트 다리도 물속으로 빠져버린단다.”

“네, 알겠어요. 할머니!”

나는 카트린 할머니를 꼭 안았어. 할머니도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단다.

티나와 함께 집으로 온 나는 할머니와 했던 이야기를 다 했어. 티나 엄마도 한동안 가만히 듣고만 있었지. 티나가 엄마 뒤로 가서 허리를 껴안고 등에 얼굴을 묻었지.

“엄마, 저도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하지만, 길산과 할머니 말을 곱씹어 보니 마음속 파란 멍을 치료하는 데는 용서밖에 없는 것 같아요.”

“······.”

한참 말이 없던 티나 엄마가 돌아서서 티나 손을 잡으며 말했어.

“그래, 미움도 싹이 있어서 자꾸 물을 주면 자라지만, 물이 없으면 메말라서 죽게 되겠지. 사랑으로 대하면 모두 행복해질 거야.”

나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단다. 어려운 숙제를 다 한 아이처럼 야호! 하고 외치고 싶었지. 티나 엄마까지 마음을 모아주니 힘이 불끈 나는 듯했어. 살며시 밖으로 나온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앉았어. 외할머니한테 배운 노래가 생각나 조그맣게 불렀어. 언제 왔는지 티나도 나의 노래를 듣고 있었어. 약간 멋쩍었으나 끝까지 불렀지. 바다도 행복의 노래를 철썩철썩 함께 불러주는 것 같았어.


아침 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 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 저어 가요


저녁 바다 갈매기는 행복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고기를 싣고

넓고 넓은 바다를 노 저어 와요

넓고 넓은 바다를 노 저어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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