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산, 고마워요.”
브로 엄마가 날 꼭 껴안아 주었단다.
“할 말이 많은데 할 수가 없네요,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브로 엄마는 할머니와 티나 엄마에게도 연신 고개를 굽히며 인사를 여러 번 했어.
브로의 손을 잡고 돌아가는 브로 엄마가 행복해 보였어.
브로가 나에게 말했지.
“안녕, 내일 놀러 갈게.”
티나도 손을 힘차게 흔들어주었어.
실컷 자고 일어난 아침은 몸도 마음도 가벼웠어.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 절벽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어제를 생각하니 행복해졌어.
아침 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 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 저어 가요
저녁 바다 갈매기는 행복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고기를 싣고
넓고 넓은 바다를 노 저어 와요
넓고 넓은 바다를 노 저어 와요
거기에 있었던 일들이 물결 따라 나부끼고 있었어. 생각나는 대로 종이비행기에 접어 바다를 향해 날렸지.
파란 주전자
그림책
마법의 알사탕
무지개
퍼핀 티나
티나 맘
트롤 브로
카트린 할머니
인어 플랑
브로 엄마
호드
무지개다리
뜸부기 깃털
장미색 갈매기
점점 바다가 아침노을로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어.
“넓고 넓은 바다를 노 저어 와요.”
브로가 나에게 꽃을 내밀었어. 디기탈리스 여우 장갑이었지.
“너에게 줄 것이라곤 꽃밖에 없네.”
‘퉁’치면 소리가 날 것 같은 방울 모양의 꽃 한 다발이었어.
“호드가 좋아하는 꽃인데.”
“참, 호드가 너처럼 친절한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
“친절하다고?”
내가 호드에게 그렇게 친절했나 잠깐 생각했어. 그런데, 브로가 귓속말로 말했어.
“사실, 호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을 홀리는 훌드라야.”
“훌드라?”
“응, 숲속에 사는 요괴야.”
“뭐라고?”
“치맛단에 붙은 소꼬리를 보면 다 도망가는데, 너는 그걸 보고도 친절하게 고운 말을 했다더군. 너무 부끄러워 뛰어가 버렸다고 하더라.”
“······.”
호드가 훌드라였다니 망치로 머리를 한 방 맞은 듯 얼얼해졌지.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어.
“그래, 난 꿈속에서 또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중얼거리면서 브로를 보았더니, 브로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어.
“난 이제 떠날 거야.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무슨 말이든지.”
“쓸데없이 힘자랑하지 말고, 장난으로도 남을 괴롭히지 마!”
“알았어, 약속할게.”
브로는 새끼손가락을 내 새끼손가락에 걸더니 힘껏 당긴 후, 흔들었어.
“참, 길산! 잊어버린 것 있지?”
“뭔데?”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가르쳐줘야지.”
“하하하! 그것이 궁금했구나.”
“응.”
“첫째, 문을 연다. 둘째, 냉장고에 넣는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 끝!”
“하하하, 하하하!”
바다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자, 브로는 크게 웃으며 손사래 쳤어.
돌아가는 브로 등 뒤에 대고 소리쳤어.
“브로야, 안녕!”
“안녕, 길산!”
그때, 티나가 웃으며 다가왔어.
투명한 주머니를 내밀며 말했지.
“그동안 즐거웠어. 선물이야.”
“선물?”
노랑 구슬이었어.
“네가 노랑 구슬을 어떻게······?”
“사실은 파랑 구슬을 가져올 때, 살짝 가져온 거야.”
“뭐라고? 이건 반칙이잖아.”
“이게 나의 큰 그림이었다고.”
“큰 그림이라니?”
티나는 재촉하듯 말을 이었어.
“벌써 일주일이 다 되었어, 시간 안에 널 보내줘야지.”
활짝 웃던 티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단다.
나는 노랑 구슬을 만지며 엉겁결에 말했지.
“세 이 두 르.”
“세 이 두 르.”
“세 이 두 르.”
분명 날고 있었는데, 내가 교수실 창밖을 보고 있더라고.
“교수님, 공항에서 짐을 가져가라는 연락을 받고 찾아왔어요.”
조교 선생님이 여행 가방을 가지고 왔어.
“가방이 두 개인데 하나만 들고 오면 어떡합니까? 교수님도, 참.”
“그러게,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상상에서 깨어난 나는 조교 선생님을 보고 어깨를 들썩 들어올렸지.
외삼촌은 해윤의 손바닥에 노랑 구슬을 올려주었다.
“아, 마법의 노랑 사탕?”
“먹어 봐, 혹시 아니? 너도 날 수 있을지······.”
해윤은 사탕을 까서 입에 넣었다. 매끄럽고 달콤하면서도 고소했다.
잠깐 구름 위를 지나는 하늘길에 퍼핀이 되어 날아오르는 상상을 해봤다.
‘세이두르!’하면 해윤도 날아오를 것 같았다.
웃음이 자꾸 나왔다.
“외삼촌, 저도 마법에 걸린 것 같은데요.”
“하하하! 어쩜, 사는 게 마법인지도 모르지.”
외삼촌의 목울대가 갑자기 멋져 보였다.
“창밖에 핀 배롱나무가 예쁘구나. 이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일단 멈춰. 그리고, 가만히 바라본단다.”
외삼촌이 해윤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가만히 보았다.
“내 얼굴도 아름다운가요?”
해윤은 두 손으로 턱을 감싸며 꽃처럼 웃었다.
“하, 하, 하!”
해윤도 함께 웃었다.
“나가자, 오랜만에 맛있는 점심 먹으러.”
“뭘 먹을 건데요?”
“최첨단 로봇이 서빙하는 맛있는 파스타집으로 가자.”
“야, 신난다!”
정문에 가까이 오자, 연못에서 나온 오리 떼가 뒤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해윤은 오리 떼를 따라 두어 걸음 쫓아가다가 외삼촌 손을 잡고 흔들었다.
바람 때문인지 배롱나무 꽃도 간지러운 듯 빨갛게 웃고 있었다.
갑자기 수박 냄새 같은 향기가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