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이 가까운 동네에서 이발업을 하면서 살아가는 윤 씨는 부지런한 청년이었습니다.
이발소 입구는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만큼 낮고 좁았지만, 이웃 마을 사람까지 머리를 깎으러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는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 다리를 약간 절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떠오르는 태양 같았고, 남을 기쁘게 해 주는 해님 같은 미소도 가졌습니다.
아침 일찍 윤 씨가 이발소 앞길을 싹싹 쓸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이! 윤 씨, 좋은 아침이야.”
이웃집 팔복이 아버지였습니다.
“이렇게 일찍 어딜 가십니까?”
“오늘은 읍내 장이 아닌가? 무씨를 사러 가네.”
“그러시군요. 종묘상에 가시면 꽃씨를 좀 사다 주시겠습니까?”
“꽃씨를?”
“네, 이발소 앞 빈터에 심을까 합니다.”
“그 좁은 곳에다가?”
“네, 지나가는 사람도 찾아오는 손님도 즐거워할 겁니다."
“그러지.”
윤 씨는 안으로 들어와서 큰 거울을 호호 불어가며 맑게 닦아놓고, 깨끗하게 삶은 수건도 잘 개어 놓았으며 면도를 하기 위해 비누 거품도 하얗게 일구어 놓았습니다.
‘오늘은 어떤 사람이 첫 손님이 될까?’
“어험!”
고개 넘어 우무실에 사는 꽃님이 아버지인 복 영감이 큰기침하며 나타났습니다.
“어르신, 어서 오십시오.”
“오늘은 특별히 잘 다듬어 주게.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이 선을 보는 날이야.”
“네? 꽃님이가요?……그러고 보니 꽃님이도 시집갈 나이가 되었군요.”
“그럼, 읍내 먹음직 푸줏간 주인 아들인데 서울서 공부도 했고 또 부자라네. 허허.”
윤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얀 천을 복 영감 목에 두르고 가위를 들고 복 영감의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쓱싹쓱싹.
능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깎던 윤 씨는 멈칫했다.
꽃님이의 고운 얼굴이 큰 유리 거울에 언뜻 비쳤기 때문이다.
지난 단옷날,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마을의 빈터에서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 마주친 눈빛을 그는 잊을 수 없었습니다. 윤 씨는 꽃님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꽃님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습니다.
윤 씨가 얼른 돌아보았을 때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팔복이 아버지였습니다.
“여기 있네. 나팔 꽃씨와 봉숭아 씨앗이 이 좁은 곳에서 어울릴 것 같아서 사 왔네.”
“네, 고맙습니다.”
“여보게! 머리를 깎다 말고 무얼 하는가?”
복 영감은 비스듬히 누워 짜증을 냈습니다.
“그럼, 나는 가네.”
팔복이 아버지가 가버리자 복 영감이 말했습니다.
“자네도 좋은 짝을 구해 장가갈 생각은 하지 않고, 꽃씨는 어디다 뿌리겠다는 거야. 뿌릴 땅이라도 있나?”
“저 같은 것한테 누가 시집을 오겠어요. 씨를 뿌려야 거두지요, 꽃씨를 뿌려 꽃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야죠. ”
“하긴, 자네는 자신을 잘 알고 있군 그래.”
복 영감은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내뱉었습니다.
“다 되었습니다. 마음에 드시는지요?”
복 영감은 작은 손거울을 들고 뒷모습을 비추어보면서 빙긋 웃었습니다.
“자네 머리 깎는 솜씨야 도시의 어느 이발사가 따라오겠는가?”
그러면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고 열린 문 쪽으로 나갔습니다.
“아야!”
“아이고 어르신네. 다치지 않으셨습니까?”
“여기 잔 돈 이천 원입니다.”
“됐네, 이 문짝 좀 높이지 못하겠는가? 원, 올 때마다 이마에 혹을 하나씩 달고 가니…….”
복 영감은 혀를 끌끌 차며 가고 난 후, 윤 씨는 가게 앞 좁은 땅에 씨를 뿌렸습니다.
앞쪽에는 봉숭아 꽃씨를, 뒤편에는 나팔 꽃씨를 뿌리곤 잠시 두 손을 모았습니다.
‘어서 싹을 틔우고 예쁜 꽃으로 피워다오.’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보았을 때, 붉게 물든 노을 위로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소나기는 안 와야 오늘 뿌린 씨앗이 흘러내리지 않을 텐데.”
윤 씨는 안으로 들어가 비닐로 덮고는 돌로 눌러 놓았습니다.
‘행여 소나기가 내리면 씨앗을 잘 덮어 주겠지.’
해가 꼴깍 넘어가자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비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윤 씨가 비닐로 씨앗을 덮어 주고 들어와서 젖은 머리를 닦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리 들어와. 여기서 비를 피했다가 가자.”
깨끗이 다려 입은 복 영감의 양복이 비에 흠씬 젖어 있었고, 머리에도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꽃님이도 꽃이 활짝 핀 원피스를 입었는데, 꽃들도 비를 맞고 울상을 짓고 있었습니다.
“이 망할 놈의 소나기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쏟아질 게 뭐람!”
“여보게, 여기 깨끗한 수건 두어 장 주게.”
“네 여기 있습니다.”
“꽃님아, 화장이 지워지지 않게 잘 좀 닦아라.”
꽃님이는 다소곳이 서서 수건을 받아 젖은 머리를 닦고는 미안한 듯이 윤 씨를 바라보았습니다.
“읍내로 가시는 길인가 보지요?”
“그래, 일곱 시에 선을 보게 되어 있는데 택시도 안 잡히고,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큰일이야.”
“제가 택시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자네가 그 몸으로…….”
“선보는 날인데 시간을 지체하면 되겠습니까?”
“제발……, 관두세요.”
꽃님이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말렸으나 복 영감은 얼른 갔다 오라는 눈짓을 하였습니다.
온몸을 비로 적신 윤 씨는 택시를 잡아 복 영감과 꽃님을 보내 놓고는 왠지 서글퍼졌습니다.
택시를 탈 때 돌아보던 꽃님이의 젖은 눈빛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내가 꽃님이를 꽃님이를……. 말도 안 돼.”
윤 씨는 세게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왠지 가슴에 큰 구멍이 펑 뚫린 것 같았고, 크렁크렁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오후였습니다.
햇살은 점점 따가워지고, 윤 씨의 작은 뜰에는 파릇파릇 귀여운 얼굴들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우무실에 사는 덕이 엄마가 밤톨이 머리를 깎으러 와서 길게 얘기를 했습니다.
“글쎄, 윤 총각, 꽃님이가 다 죽게 되었다네. 그 좋은 혼처에도 시집을 안 가겠다고 하고 따로 정해 놓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도 울기만 한다는구먼.”
윤 씨의 얼굴은 화끈거리고 가슴은 마구 방망이질했습니다.
이틀이 지난날, 이번에는 팔복이 아버지가 들어와 놀랄만한 소식을 안겨 주었습니다.
“아, 글쎄 꽃님이가 자네를 결혼 상대자로 생각하고 있었다는군.”
“넷? 무슨 말씀이세요?”
“자네를 사랑한다고 했다는구나. 그래서 이제는 복 영감이 자리에 누웠다는구먼.”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허벅지를 꼬집어 본 윤 씨는 ‘허허’ 소리 내 웃었습니다.
진정 마음에 둔 상대였지만, 오르지도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는데 윤 씨는 묘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저씨, 전 배우지도 못했고 돈도 없으며 다리까지 성하지 못한 나를, 당치도 않습니다.”
“많이 배우면 뭘 하나?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사람 몇 되던가?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 저세상까지 갖고 가는 것은 아니고, 다리는 일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잖은가?”
“하지만…….”
“꽃님이는 보통 사람과 다른 데가 많았어, 마음 씀씀이가 보통이 아니야.”
“아닙니다. 어떻게 저 같은 것이…….”
“자신을 너무 낮추지 말게. 지나친 겸손으로 행복을 놓치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야. 너도 꽃님이를 생각하고 있다면 기꺼이 나서 볼 일이야.”
잎을 단 봉숭아의 불그레한 줄기를 바라보고 있을 때 큰기침 소리가 났습니다.
“어르신네 나오셨습니까?”
“오늘은 머리를 깎으러 온 게 아니야. 네 놈이 우리 꽃님이를 언제 꾀었지? 순진하고 착한 내 딸이 절름발이 네 녀석이 아니면 결혼을 안 하겠다니……흑흑흑.”
그러면서 복 영감은 흐느꼈습니다.
“영감님, 전 따님을 마음으로 좋아하고 있지만, 어떻게 감히 제가…….”
윤 씨는 큰 죄나 지은 듯이 바닥에 꿇어앉았습니다.
“모두 제 분수를 모르고 있어!”
“그렇지만, 영감님, 전 꽃님이를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습니다.”
“네 놈이 무슨 돈이 있다고 내 딸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말이냐!”
“영감님!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만,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아니, 이놈도 미쳤어, 당장 이 동네를 떠나!”
복 영감은 문을 박차고 튀어 나갔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나팔꽃 덩굴을 타고 이발소 지붕 위로 기어오르고 불안과 초조한 마음 때문에 윤 씨의 해님 같은 미소가 사라졌습니다.
‘그래, 진정한 사랑이란 소유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떠난다면 꽃님이는 훌륭한 청년과 결혼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 윤 씨는 나팔꽃이 하나둘 봉오리를 달던 날, 아무도 모르게 가방을 쌌습니다.
“어딜 가는가?”
복 영감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네, 영감님.”
“머리를 좀 깎아 주게.”
“영감님, 그동안 분수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꽃님이의 행복을 위해서 제가 떠나려 합니다.”
“알았으면 됐네. 떠날 때 떠나더라도 내 머리를 깎아 주고 떠나게.”
복 영감의 목소리는 너무 힘이 있었으므로 감히 거절을 못한 윤 총각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낮은 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습니다.
“아이고, 아야!”
“그것 보게. 자네라고 별 수 있나. 내일 당장 집을 헐어 문이 높은 가게를 하나 짓게나. 그래야 내 딸 이마는 다치지 않을게 아닌가?”
“네―옛? “
창밖에 핀 나팔꽃들이 일제히 '따따따' 크게 나팔을 불어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