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수자 Apr 22. 2024

어른을 위한 동화 10선

  5화 그 녀석 길들이기

   당돌한 녀석.

   내가 이 자리에 삼 년을 앉아있었는데 나에게 말을 거는 인간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

   그냥 동전 한 닢을 달랑 던져 놓거나 어쩌다 천 원짜리 하나가 불쑥 들어있는 날이면 운이 좋은 날이었다.

   장미가 담장마다 빨갛게 피어올라 푸른 잎과 나란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오월이었다. 가끔 내가 앉아 있는 그 지하도 계단에도 장미꽃잎이 두어 잎 날아와 내 눈앞에서 빙그르르 돌다가 누군가의 발자국에서 뭉겨져 버리면 꽃잎은 곧 누런 딱지처럼 엉겨 붙어 버리곤 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는 아름답다는 것이 얼마나 짧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왁자지껄 한 무더기의 아이들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내 눈앞으로 작은 걸음들이 종종 지나갔다.

   ‘소풍을 가는 아이들이로군.’

   ‘그럼, 한 푼도 없겠구나.’

   빨강, 파랑, 노랑 운동화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세다 세다가 그만두었다.

   녀석들은 나에게 셀 틈도 주지 않고 너무나 빠르게 조잘거리면서 걸어 나갔다. 내가 고개를 숙인 채 헤아리기를 그만두고 왼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하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저, 아저씨! 얼마 있으면 돼요?”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짙은 연두색 운동화 두 짝이 내 앞에서 멈춰 섰다.

   고개를 들어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이 나의 규칙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 놀이한 ‘그대로 멈춰라' 게임처럼 가만히 있었다.

   “아저씨! 얼마가 필요하냐 말이에요?”

   “뭐라고?”

   나도 모르게 내 규칙을 깨어버리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큰 키였다. 동글동글한 큰 눈에 피부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사내아이였다.

   “지금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밖에 없어요, 아저씨는 얼마가 있으면 되죠?”

   ‘호, 이 놈 봐라.’

   나는 그 녀석을 노려보았다. 눈을 세모꼴로 만들고 이마를 찡그리며 좀 무서운 얼굴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녀석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다시 물었다.

   “얼마가 필요한지 물었잖아요!”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기가 찼다. 꼬마 녀석이 나한테 얼마가 필요한가를 물었다. 아무리 내가 노숙자 신세라지만, 제까짓 것이 동전 오백 원 밖에 없는 녀석이 나한테 얼마가 필요하냐고?

   “빨리 가기나 해라.”

   나는 젊잖게 말했다.

   “제가 저금을 해서 아저씨에게 드릴게요, 지금 통장에 삼만 사천구백 이십 원 들어있거든요.”

   ‘삼만 사천구백 이십 원?’

   그 돈은 지난날 내 하루 저녁 밥값도 되지 않는 돈이었다. 녀석, 날 뭐로 보는 거야. 난 잠시 내 신세도 잊어버리고 발끈했다.

   “그 돈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난 말꼬리를 내리며 그 녀석을 길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좋아, 나에게 돈을 준다니 고맙지 뭐야, 많으면 많을 수로 좋겠지만, 오백 원이라도 좋아, 다 받아줄게.’

   "알았어요, 그럼 또 올게요.”

   그 녀석은 이미 끊어진 꼬리를 따라 급히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 끝까지 올라가서는 내가 앉아있는 지하도 가운데를 쓰윽 한 번 돌아보고는 사라졌다.

   녀석이 올라간 곳을 올려다보니 은행나무 푸른 잎과 장미 넝쿨이 보이고 정형외과와 피부과가 쓰인 빌딩 윗부분도 반쯤 눈에 들어왔다.

   나도 한 때는 저 빌딩 한 편에 내 사무실을 가지고 번쩍거리는 자동차에다 번들거리는 대리석이 깔린 거실에서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었다.

   누구나 다 성공했다고 부러워하고 나 또한 내 삶에 자신이 있었으며 동창들을 만나면 거들먹거리며 큰돈을 술값으로 내놓곤 했다. 그러면서 없는 사람들을 비웃고 잘 난 체 하며 뒷짐 지고 업신여기기도 했었다.

   욕심은 욕심을 불렀다. 더 이상 불지 않아도 될 풍선인데도 한 번 더 크게 좀 더 크게 불다가 내 사업은 ‘팡’ 하고 터져 버렸다.

   순간이었다. 내가 가진 번쩍 자가용도, 번들 아파트도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아내와 둘이 입은 옷만으로 아내 친정인 시골 마을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돈이 있을 때는 내가 좀 거들먹거려도 상관하지 않던 사람들이 빈털터리가 되자 모두 고개를 돌렸다. 사랑하던 아내까지 나만 남겨두고 어느 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 후부터 장모님 눈초리도 예사롭지 않아 난 챙이 넓은 모자를 꾹 눌러쓰고 무작정 열차를 탔다. 도착하니 깊은 밤이었고 부산역이었다.

   찬 바닥에서 눈을 붙이려니 허리가 아프고 잠도 오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그렇게 한 데 누워있어도 누가 손가락질하거나 수군거리는 사람 하나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입 안이 자꾸 마르고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일어나 앉아 양손을 주머니 속에 넣어 보았다. 아. 지폐 하나가 손에 들어왔다. 만원이었다. 벌떡 일어나 역 앞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락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니 그 보다 더 한 행복은 없는 것 같았다.

   “땡그랑!”

   오백 원짜리 동전 한 닢이 내 깡통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저 고개만 조아리고 있었다. 그런데 짙은 연두색 운동화 두 짝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

   그 녀석이었다.

   싱긋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 이거 준비물 살 돈이에요.”

   “뭐라고?”

   “준비물 살 돈이라고요.”

   그 녀석이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깡통을 뒤집었다. 그리고 말했다.

   “가지고 꺼져 버려!”

   사실 그 녀석을 길들여 얼마라도 고정적으로 내 수입이 생기는 것이라 은근히 좋아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빌어먹는 노숙자 신세지만 자존심은 있다. 그리고 내 아들 같은 녀석의 준비물 살 돈으로 내 배를 채우기는 싫었다.

   내 목소리에 놀랐는지 그 녀석은 날 한 번 쬐려 보고는 뛰어 올라가 버렸다.

   하지만 처음 만난 때처럼 계단 끝까지 올라가서는 내가 앉아있는 지하도 가운데를 쓰윽 한 번 돌아보고는 사라졌다.

   그 녀석만 만나면 나는 내 규칙을 잊어버리곤 한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들어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다.

   “녀석, 까칠하기는…….”

   나는 그 녀석이 던져놓고 간 동전을 왼쪽 주머니 속에 넣었다. 별 뜻은 없었지만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지하도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나가 버린다. 유월이라는데 나는 춥기만 하다. 무성한 은행잎과 은행잎끼리 이마를 마주하여 다정하게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초록 잎 가로수가 내 눈을 잠시 시원하게 해 주고 이곳까지 조심스레 내려온 햇살도 고맙게 느껴졌다.

   그 녀석을 생각하면 어쩐지 가슴이 따뜻해 온다. 엄마 품속 같은, 다스한 햇살이 내 얼굴을 간질일 때처럼 반갑다. 어쩐지 오늘을 점심을 걸러도 그 녀석만 생각하면 배가 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들도 컸다면 아마 저 녀석 또래쯤 되었을 거다.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가 심한 아들은 번쩍 대리석 집도 반짝 자가용도 소용없다는 듯이 일찍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그때만 해도 나는 자식은 또 낳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아들을 잃고 난 후부터 아이는 끝내 생기지 않았다.

   나는 잠시 졸았다. 눈을 떠 보니 깡통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녀석이 준 내 호주머니에 둔 오백 원이 오늘 내 수입의 전부였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으나 난 그 녀석이 준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참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를 꼴딱 넘겼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내 시간은 늘 같았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끊어지면 나는 내가 앉았던 자리의 빈 라면 상자를 들고 역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나와서는 컵라면이나 빵을 하나 사서 우둑우둑 먹고는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지하도 중간 지점에서 그 라면 상자를 깔고 가만히 앉는다. 기다리는 사람도 반기는 이도 없지만 난 그 자리에 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난 기다리는 사람이 생겼다.

   바로 그 녀석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무심하듯이 나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나는 힐끔힐끔 사람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빌어먹는 주제에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힘없이 앉아있어도 별로 가여워하는 사람도 없는데 고개를 반짝 들고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이란 내가 생각해 봐도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발걸음을 더 빨리 총총거리며 가버리고 어느 긴 머리 아가씨는 눈길을 피하며 핸드백으로 얼굴을 가리며 급하게 올라가는 것도 보았다.

   아내도 보고 싶지 않고 장모님도 생각나지 않는데 언제부턴가 그 녀석이 은근히 기다려졌다. 알사탕처럼 동글동글한 눈, 반짝반짝 윤나는 그 녀석의 두 뺨을 만져보고 싶었다. 어쩐지 그 녀석의 모습이 내 유년의 모습 같아서 추억을 보는 듯 나는 그 녀석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녀석은 그 후로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지하도를 건너서 학교로 가는 모양이던데…….’

   ‘혹시 아픈 걸까?’

   ‘아니면 이사라도 가 버린 것일까?’

   별 걱정을 다하면서 나는 주머니에 든 동전을 꺼내어 다시 깡통 속에 집어넣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그 녀석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 뭐, 그 녀석인들 나한테 무슨 정으로 다시 찾아올 건가? 그냥 내 뺨을 스쳐가 는 바람 같은 존재인 걸.’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 녀석이었다.

   순간 반가웠으나 겉으로 나타내지 않으려고 다른 데 보는 척했다. 하지만 내 뜻과 달리 나는 벌떡 일어나 그 녀석의 손을 덥석 잡고야 말았다.

   꾀죄죄하고 시커먼 내 손이 잠시 부끄러웠다.

   “아저씨, 이 거…….”

   푸른 사과였다.

   녀석의 얼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사과 하나가 내 손안에 쏙 들어왔다. 동전이 아니었다. 내가 그 녀석을 길들이려 했는데 그 녀석이 날 길들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녀석이 나한테 처음 말을 건 순간부터 내 마음은 차분해지고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늘 삐뚤어져 있던, 꼬여져 있던 내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저, 아저씨! 엄마가 그러는데 아저씨한테 돈을 주면 안 된대요, 그러면 아저씨는 영영 혼자 일어날 수 없대요. 아기처럼, 그러니 이제부터 아저씨한테 돈 한 푼도 안 줄 거예요.  하지만 이 사과를 보니 아저씨가 생각나 달려왔어요.”

   난 사과를 꼭 쥐고는 그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늘 앉아만 있던 내가 일어서 그 녀석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녀석은 내 왼 손에 사과를 만져주고 황급히 올라가서 마지막 계단에서 흘깃 다시 한번 내려다보고는 마치 고양이처럼 사라져 버렸다.

   기분은 나빴지만, 맞는 말이었다.

   나도 언제까지나 빌어먹을 수 없었다. 어떤 기회가 오면 반드시 옛날의 나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 녀석이 날  바꾸어 놓을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아, 내 가슴속에서 봄바람 같은 작은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추웠던 가지에 꽃이 피고 새 싹이 마구 돋아나는 것처럼 포근한 생각이 퐁 퐁 샘물처럼 쏟아 올랐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인간에 대한 정인가? 잊고 있었던 잃어버렸던 따뜻한 마음이 자꾸자꾸 내 마음속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것은 눈물이 되어 내 눈시울을 적시고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한 편으로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정을 느끼게 해 준 그 녀석, 그 녀석이 날 길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그 녀석을 길들이려고 했었는데 그 녀석에게 내가 길들여지고 있었다.

   뾰족하던 내 마음을 둥글게

   날카로웠던 내 가슴을 부드럽게

   얼음 같이 차가웠던 내 손까지 따뜻하게

   꽁꽁 닫혀 있던 세상을 향한 문을 활짝 열어준 그 녀석.

   그 녀석이 내 마음을 둥글고 부드럽게 그리고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불끈 뭔가를 해야겠다는 욕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난 바닥에 있던 깡통과 펼쳐놓았던 라면 상자를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햇빛을 향해 걸었다. 어정어정 걷던 발걸음을 좀 더 활기차게 걸으려고 애썼다.

   우선 거리에 널브러져 있던 종이와 병을 하나하나 주웠다. 그리고 나만의 비밀 장소에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 모아 모아서 돈을 만들자. 이렇게 앉아서 손을 벌리고 남이 주는 대로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

   누구보다 푸른 사과를 닮은 녀석을 위해서 아니, 날 위해서 말이다. 그 녀석에게 보여주자. 내 멋진 윤기 흐르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늘 빌어먹고 지내던 내가 새삼 일을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폐휴지를 모은 것을 팔아보았자 이, 삼천 원을 넘기기 힘들었고, 굴러다니던 병아가리에 손이 베여 피가 나기도 했으며 상자를 한 아름 안다가 앞이 보이지 않아 넘어지기도 했다.

   마음은 또 나쁜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하루에 삼천 원은 넘을 텐데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깡통 속에 던져지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더 편하고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내 마음을 건드렸다.

   손을 ‘탁탁’ 털고는 다시 지하도 계단 중간에 상자 하나를 들고 내려가 깔았다. 던져두었던 깡통도 다시 내 앞에 놓고 가만히 고개를 수그리고 앉았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을 만큼 나 자신이 부끄럽고 미웠다.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내 마음이 깡통 안을 채우고 넘쳐흐르고 있었다.

   나는 지하철 화장실로 가서 손을 여러 번 씻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든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의자에 앉자마자, 호주머니 깊숙이 그 녀석이 준 동전 오백 원을 마치 보물처럼 꼭 쥐고 있는 날 보았다. 난 그 녀석이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빙그레 웃었다.



작가의 이전글 어른을 위한 동화 10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