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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자 May 08. 2024

어른을 위한 동화 10선

7화 꽃님 이야기

  아주 드문 일이지만 날 때부터 엉덩이에 작은 꽃잎 흔적이 있는 개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수개미였지만 꽃님이라 불렀습니다. 

  꽃님은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개미들은 본래 부지런한 동물인데도 꽃님은 게으름쟁이였습니다.

  남들이 먹이를 나르고 집을 짓고 길을 고치고 있어도 꽃님은 나무 밑동에 비스듬히 누워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동네 어른들이나 친구들이 모두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도 꽃님은 발장단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면서 그들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마을 어른들은 꽃님을 꾸짖었습니다.

  “이 녀석, 내려오지 못해! 친구들은 모두 열심인데 넌 왜 그 모양이냐!”

  “쯧쯧, 멀쩡하게 잘생긴 놈이 속을 썩이다니…….”

  “저것은 분명 베짱이가 되려다가 잘못해서 개미로 태어난 것 같아.”

  그러면 꽃님은 슬며시 일어나 나뭇등걸 밑동 뒤로 가서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놀았습니다.

  나무들이나 풀잎은 꽃님을 잘 가려 주었고 바람이 불면 같이 노래하고 그를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꽃님에게 관심도 없었습니다.

  ‘아이 심심해. 저쪽이 놀기에는 좋은 곳인데 어른들의 잔소리 때문에 갈 수도 없고…….’

  등걸 뒤쪽에 누워 있던 꽃님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래. 떠나는 거야. 난 이 동네를 사랑할 수 없어.’

  꽃님은 무작정 걸었습니다.

  잘 움직이지 않았던 꽃님은 발이 부르트고 입술에는 이슬방울 같은 물집이 생겼습니다.

  ‘걷는 것도 힘든 일이야. 예서 좀 쉬어 가야겠다.’

  꽃님은 시냇물 근처에 있는 작은 돌 위에 앉았습니다.

  냇물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도 있었습니다.

  “얘들아, 좀 쉬었다 가. 나랑 이야기도 하고.”

  “쉴 틈이 어디 있니? 우린 할 일을 두고 놀지 않는단다.”

  냇물 한 자락이 큰 돌 때문에 바로 가지 못하고 한 바퀴 맴을 돈 후 꽃님을 흘끗 보면서 지나가 버렸습니다.

  “쳇, 일이 뭐 대단하다고 놀지도 않는담.”

  “어른들의 잔소리에서 벗어나니 얼마나 좋아.”

  꽃님은 두 팔을 머리에 괴고 벌렁 누웠습니다. 해님이 적당히 데워 놓은 작은 돌은 푹신하지는 않았지만, 꽃님이 한잠 자는 데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아! 잘 잤다!”

  자고 일어난 꽃님은 춥고 배가 고팠습니다.

  이미 사방은 어두워져 있었고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아 배고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습니다.

  집안에는 항상 알맞게 익은 강아지풀 씨랑 억새 씨앗이 창고에 가득 있었고 또 이름 모를 빨간 열매의 단물은 얼마나 맛있었던가요?

  ‘아 추워.’

  추위 또한 처음 만나본 감촉이었습니다.

  방마다 차곡차곡 개어 놓은 산비둘기 깃털이불, 민들레 꽃씨로 만든 폭신한 베개며 떡갈나무 장작은 얼마나 따뜻했던가요?

  꽃님은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기를 좋아했던 꽃님은 이렇게 많은 별이 하늘에 있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들어봐요, 별님. 난 지금 배가 고파요. 어디 먹을 것이 없을까요?”

  “아니, 부지런 동네에 살던 꽃님이 아닌가?”

  “맞아요. 전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먹을 것은 스스로 찾아야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 얘기하면 어떡하니?”

  또 하나의 별이 말했습니다.

  “그래, 넌 자랄 때부터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지? 그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크게 혼나는 것도 본 적도 있어.”

  “집 얘기랑 하지 말아요.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요. 그저 먹을 것이 있는 곳만 일러주세요.”

  “쯧쯧, 커 갈수록 태산이로구나. 네가 찾아봐. 알고 있어도 가르쳐 주기 싫구나.”

  별들은 꽃님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배가 너무 고팠던 꽃님은 돌 위에서 내려와 풀잎 사이를 헤치며 먹을 것을 찾아 나섰습니다.

  “흠흠,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꽃님은 멀지 않은 곳에서 노란 씨앗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반쯤 껍데기가 벗겨져 있어 먹기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꽃님은 입맛을 다시며 막 입가로 가져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놈 잡아라.”

  “날마다 창고에 넣어둔 것이 없어져 누군가 했더니 바로 너였구나.”

  “우리가 열심히 모은 것을 넌 밤마다 몰래 가져가더니…….”

  “아니에요, 난 부지런 동네에 사는 꽃님이예요. 배가 너무 고파서…….”

  “부지런 동네라고? 그 동네에 사는 개미들은 열심히 일할 뿐 아니라 절대 남의 것을 가져가는 일이 없어.”

  많은 개미가 꽃님을 에워싸고는 억새 줄기 몽둥이로 가슴이랑 팔다리를 두들겨 패고, 노란 씨앗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꽃님은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코피가 났고 엉덩이의 꽃잎 무늬에 붉게 물이 들어 한 송이 꽃이 더 핀 것 같았습니다.

  꽃님의 눈에 가득 물이 고였습니다. 배고픔보다 부끄럽고 창피스러워 빨리 몸을 숨기고 싶었습니다. 또 온몸에서 열이 나고 팔다리가 아파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꽃님은 흩어져 있던 억새 줄기를 잡고 겨우 일어나 떡갈나무 밑으로 가서 다시 쓰러져 버렸습니다.

  다음 날, 해님이 하늘 한가운데 와 있을 때 꽃님은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곁에는 오색나비 한 마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꽃님을 내려다보고 말했습니다.

  “좀 어떠세요? 너무 앓고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어요.”

  보랏빛 예쁜 날개로 그늘을 만들어 주며 말을 이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깨어나니 마음이 놓입니다. 참나무 숲에 사는 신선나비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는데 그냥 지나치면 죽을 것 같아서…….”

  “고마워요, 아름다운 마음씨 잊지 않을게요.”

  “그럼, 몸조리 잘하세요.”

  오색나비는 보랏빛 날개를 펄럭이며 바삐 참나무 숲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꽃님이 곁에는 도토리 뚜껑 그릇에 맑은 물이 가득 들어 있었고, 맛있는 억새 씨앗도 떡갈 나뭇잎 소쿠리에 담겨 있었습니다.

  꽃님은 물을 마시고 그것을 꼭꼭 씹어 먹고 기운을 차렸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태어날 때부터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거야. 어릴 때는 일을 배우고 커서는 부지런히 일하며 늙어서는 일을 가르쳐야 한단다.”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서 쟁쟁 울리고 있었습니다.

  꽃님이 몸은 힘이 없었지만, 마음은 뭔가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그래, 일을 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돼.’

  며칠이 지난 후, 꽃님은 볕이 들고 물이 잘 빠지는 흑갈색 땅에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힘들었지만 쉬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부터 깨끗하게 치우고 창고와 방도 두 칸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오후였습니다.

  “참 열심히 하시네요,  부지런한 분이 우리 마을에 와 주셨군요.”

  “그때는 정말 미안했습니다.”

  개미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꽃님 이가 집을 짓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유난히 허리가 날씬하고 윤이 나는 피부를 가진 예쁜이는 알맞게 익은 과일즙과 따뜻한 빵부스러기를 고운 보에 싸와서는 꽃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꽃님이 자는 방에 잠자리 날개 커튼을 달아서 아름답게 꾸며 주었습니다.

  집이 완성된 날, 꽃님은 부지런 동네에 사는 부모님께 빛깔 고운 단풍잎 편지를 띄웠습니다. 보름달이 둥실 뜨는 가을날 밤에 큰 잔치를 연다는 즐거운 초대장이었습니다.

 혹시, 숲 속에서 개미들 행렬을 본 적이 있나요?

 개미들의 작은 손을 자세히 보세요.

 모두 예쁜 선물을 하나씩 들고 갈 거예요.

 아마, 부지런 동네 개미들이 꽃님이 새집을 구경 가는 모습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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