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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자 May 08. 2024

어른을 위한 동화 10선

10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니? 당신 미쳤소!”

  강 영감이 동그라미 열 개가 넘는 엄청난 돈을 으뜸대학에다 기부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강 영감의 부인 차 여사였습니다.

  여태 까지 돈이 아까워 점심도 오천 원 이상 넘는 것은 사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구두는 뒤축을 갈아서 신은 지 오 년이 넘었고, 한 벌 뿐인 양복은 깃을 몇 번이나 뒤집어 수선한 옷이었습니다. 항상 해보다 먼저 일어났으며 달과 함께 늦게 까지 일했습니다.

  남들 같으면 근사한 자동차에 운전사까지 둘 만도 한데 강 영감은 손수 모는 소형차 빨간 티티 한 대가 전부였습니다. 그것도 기름 값이 아깝다고 될 수 있으면 걸어 다니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강 영감은 구두쇠, 구두쇠 영감!”

  주위 사람들은 강 영감 하는 일에 모두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강 영감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돈은 차곡차곡 모여 은행에서는 강 영감만 나타나면 은행장은 물론이고, 청소하는 아줌마까지 깊게 허리를 굽혔습니다. 누가 인사를 하든 말든 강 영감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모아서 큰돈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우리도 벚꽃 놀이 한 번 가봅시다.”

  “벚꽃 놀이? 오며 가며 구경하면 되지 일부러 꽃을 보러 간다는 게요? 다음에 가요.”

  “다음에 언제요?”

  “어린애 같이 보채기는, 이번 일요일도 나가봐야 하니까 그냥 오며 가며 봐요.”

  “저기, 걸려있는 고운 옷 한 벌 사줘요.”

  “당신은 저런 거 입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소, 다음에 사주리다.”

  “다음에 언제요?”

  “점점 아기가 되어가는구려, 이 번 것만 잘되면 두고 봅시다.”

  “하나뿐인 조카 대학 등록금은 우리가 내 줍시다. 설마 또 ‘다음에’라고 하지 않겠 죠?”

  “힘들다고 봐주면 계속 남을 의지하게 돼, 어떻게든 자신들이 알아서 하도록 당신은 상관 말아요.”

  차여사의 의견은 목련꽃이 지듯 허무하게 동강동강 떨어져 나갔습니다.

  차여사가 꺼내는 말마다 거절되거나 무시당했으므로 가슴 가득 늘 불만이었습니다.

  가진 것은 많았지만 주머니는 비어있었고, 늘 고팠으며 항상 모자랐습니다.

  그렇다고 강 영감을 나무랄 수도 없었습니다. 자신을 위하는 일에도 철저히 근면하고   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강 영감이 어마어마한 돈을 선뜻 대학에 준다고 하니 믿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차 여사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 어마어마한 돈의 천 분의 일, 아니 백 분의 일이라도 써야 할 때 썼더라면 이렇게 가슴 아프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여태까지 품어만 왔던 불만덩어리가 큰 울음으로 터져 나와 차 여사 자신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혀를 ‘끌끌’ 차며 무시했을 강 영감도 그날은 아무 말 없이 티티를 몰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차 여사에게 너무 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벚꽃이 흩트려지게 피었다가 팔랑팔랑 날리고 있었습니다. 봄이 되면 항상 꽃놀이 가자고 졸라대던 차 여사의 가냘픈 몸짓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창을 열고 달리니 벚꽃이 마치 분홍 나비처럼 차 안으로 날아들었습니다. ‘흐음’ 하고 코를 벌름거리니 냄새까지 향긋했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여유였고, 행복이었습니다.

  꽃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이렇게 사람 마음을 환하게 하는지 몰랐던 강 영감이었습니다.

  공원 주변에 차를 댄 강 영감은 공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길가에 줄을 선 벚꽃이 떨어져 솜사탕처럼 부풀어있었습니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모습은 마치 바람이 혓바닥으로 솜사탕을 핥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구름이 무늬를 이룬 하늘이 아름다웠습니다. 공원에 놀러 온 사람들도 모두가 잘나 보였습니다. 세상이 아름다웠습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강 영감은 두 팔을 서서히 올렸다 내리며 내쉬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만치 비어 있는 알록달록 무지개 색 긴 의자에 앉았습니다.

  다스한 햇살이 강 영감의 얼굴 위로 마구 쏟아졌습니다. 살랑 지나가는 봄바람도 싱그러웠습니다. 보라 빛 제비꽃이 발밑에서 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강 영감은 빈 옆자리가 어쩐지 허전해 왔습니다. 봄이 되면 항상 꽃놀이 가자고 졸라대던 차여사가 갑자기 그리워졌습니다. 아까 차 여사를 달래서 같이 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주머니에서 손 전화를 꺼내 번호를 꾹꾹 눌렀습니다.

  “여보세요!”

  “...... .”

  “여, 여보세요! 차 여사 당신이오?”

  강 영감이 다그치듯 목소리를 높였으나 들려오는 것은 뜻밖에 낯선 여자였습니다.

  “반갑습니다, 하늘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갑자기 손 전화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아리따운 여자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들려왔습니다. 잘못 누른 것 같아 얼른 끊으려고 했으나 뚜껑은 닫혀지지 않았고 소리는 계속해서 새어 나왔습니다.

  “누구라도 여기에 오면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있습니다. 자, 나룻배에 타십시오.”

  목소리만 계속 흘러나오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강 영감은 말 잘 듣는 일 학년 아이처럼 나룻배에 올라 두 손을 양쪽 무릎에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당신은 현재를 팔아서 미래를 산 사람이군요.”  

  “현재를 팔다니요? 전 그저 부지런히,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모은 재산을 모두 으뜸대학에다 기부했고요, 난 죽으면 좋은 데 갈 겁니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좋은 데가 어떤 곳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룻배는 노를 젓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나아갔습니다. 드디어 건너편에 있는 온통 새하얀 집 앞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손잡이 하나만 검정 색종이를 동그랗게 오려 붙인 듯 달려있었습니다.

  “들어가 보십시오, 당신이 좋다고 하는 세상입니다.”

  강 영감이 문을 열자, 흑과 백으로만 칠해진 아무것도 없는 빈방이 나타났습니다.

  “내가 말하는 좋은 데는 사철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며 맛있는 음식과 편하게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궁전 같은 곳이지, 이런 곳은 아니요!”

  강 영감은 다소 서운하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당신이 산 세상입니다. 흑과 백만 있는 삶 말입니다. 당신은 색깔 있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무지개 일곱 색은 당신의 꿈이 아니랍니다. 평생을 돈만 위해 산 당신, 여기가 당신이 말하는 좋은 뎁니다.”

  두껍게 굳은살이 박인 손을 저으며 강 영감은 몸서리쳤습니다.

  “무슨 소리요, 젊어서 한 고생은 돈을 주고 산다는 말도 있지 않소! 어쨌든지 열심히 벌어서 마지막에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했는데…….”

  “사람의 삶이란 돌아오지 않는 강과 같습니다. 고기를 품고 수초를 기르는 따뜻한 가슴 없이 자꾸만 바다로만 내친다면 강의 존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강 영감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같은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정말 바보같이 살았군.”

  “정말 바보같이 살았어.”

  “그래도 마지막엔 큰마음을 내어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었으니 색깔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드리겠습니다.”

  “네, 그래요?”

  대답을 하자마자 바로 강 영감 눈앞에 흑백 공원이 펼쳐졌습니다.

  그러더니 금방 파랑새가 날아오르고 하늘이 파랗게 물들더니, 벚꽃이 흩날리고 있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손 전화를 떨어뜨린 것도 모르고, 다사로운 봄볕에 졸다가 퍼뜩 고개를 든 강 영감은 두어 번 눈꺼풀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는 알록달록 무지개 색 긴 의자에 기대서 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입맛을 ‘쩍’ 다셨습니다.

  그때,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차 여사, 내가 잘못했소! 그만 화 풀고 벚꽃 구경 갑시다. 내 곧 가리다.”

  황급히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강 영감을 따라 분홍 꽃나비 떼가 팔랑팔랑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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