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란비
오란비가 추적인다
연두의 여름을 밀어낸다
파들거리는 초록 잎새는
연두빛 시간을 지키겠노라고
짙어지는 초록 내음 속에
나는 망설인다
잊어야 하는 건데 잊지 못한 채
후드득후드득— 빗소리에
어느새 제철도 아닌, 여름도 아닌
또 하나의 계절이 나를 가로막는다
세월은 이정표 없이 흐른다
이런 걸까, 그런 걸까
애초에 그랬을지도 몰라
나만 홀로 눈치채지 못했을 뿐—
그렇게 또 그렇게
오란비는 한바탕 나를 밀어내고
이울어가는 자취만 남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