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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김 Jul 05. 2023

아고똥하니 여여하게 사는 이유

하하할매는 이렇게 말하셨지(여여별곡 제6화)

때는 2018년 10월 가을철 어느 날, 고딩 친구가 진안 시골마을에 이사했으니 한번 놀러오라기에 짬을 내어 들린 적이 있다. 때마침 귀촌하여 전원생활을 꿈꾸었던 터라, 주말에 들렸더니 이웃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게 아닌가? 

 삿갓봉아래 병풍처럼 둘러싼 산골마을에 풍광도 좋고 바람결이 시원한 약 400미터 고원마을인지라,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바로 계약을 했던 곳이다. 그렇게 이곳에 둥지를 튼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내 인생 후반전에 산골마을로 오게 된 것은 어릴 적부터 산을 좋아했고, 산자락 골짜기에 논두렁을 일구어 농사짓던 시절의 향수도 한몫했을까? 아마도 인생전반전을 지혜를 갈망하는 삶을 살았다면, 인생후반전은 어진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관조섞인 생각도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고상하게 말하자면, 공자님의 말씀인“지자요수(知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의 뜻을 새긴 셈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랑 막내누나로부터 이런 얘기를 자주 들었다. 우리집은 딸만 넷인지라, 대들보인 자식이 없어 별명도 ‘딸금이’였단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구림면 오정자에 있는 고조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가 아들 하나만 점지해달라고 밤새 기도를 드리다가 산속에서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얼마후 아들이 태어났다는 얘기다. 그렇게 내가 태어난 고향마을은 순창군 금과면에 있는 별똥별 떨어진 큰별동네 란다. 그런데 세월 탓인지, 파란의 인생 탓인지, 지금은 고향을 떠나 제2의 타향마을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아무튼 시골에 살고 보니, 마을도 공동체인지라 회사조직처럼 이장을 중심으로 영농회장, 노인회장, 부녀회장, 반장, 새마을지도자까지 있다. 

 시골마을은 이야기할 때마다 재미있게도 동네사람들끼리 거의 별명(닉네임)으로 통한다. 하하할매,  몸빼할배, 용담댁, 깨똘이아재, 깻잎아지매, 농반장, 삥빙할매, 아고똥씨(*필자의 별명) 등등...

 시골 역시 사람사는 데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다. 우리마을도 아니나 다를까 시끌벅적거렸다. 겉보기와는 달리 시골마을은 뒷담화 투성이다. 마을사람들끼리 비밀스러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비밀도 없는 것 같다. 마을에선 금세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정자나무아래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누구네 집은 이러쿵 저러쿵, 친하게 잘 지내다가도 줏대없이‘이리붙었다 저리붙었다’부화뇌동에, 뭔일이 터지면 배신때리기 일쑤다. 그래도 새참 때면 회관앞 정자에 모였다 하면, 시골 할매들은 손맛도 좋고, 말빨도 쎄고, 한바탕 웃기도 잘한다. 이처럼 산골마을은 우여곡절도 많고 때론 정겹기 그지없는 곳이지만, 낭만과 현실너머에 숨겨진 시골살이의 참다운 정서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시골살이에 정착하는데, 여러모로 가장 큰 조력자는 바로 이웃집 ‘하하할매’였다. 언젠가 정자나무 그늘에서 마주친 할머니는 시골생활에 딱 어울리는 조언으로 이렇게 말하셨다. 

“시골에선 우쭐해선 안돼야. 절대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 한당게. 그래야 무탈하게 살 수 있제...” 

 지극히 당연하지만, 더불어 촌부처럼 살아간다는 게 뭔가를 깨우치기엔 더없이 소중한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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