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권의 하루키

by 이든

현재 우리 집엔 세 권의 <상실의 시대>가 있다.

아마도 엄마가 내 나이 즈음 샀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려 1989년 초판의 오래된 책이 한 권, 내가 학부생 시절 경주의 한 서점에서 같은 작품임을 미처 알지 못하고 구매한 <노르웨이의 숲>이 한 권, 이 두 권의 존재를 잊고 얼마 전에 엄마가 도서관에서 대여해 온 또 다른 <상실의 시대>가 한 권.


그러나 사실 나는 이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조차 잘 알지 못한다. 지난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유구한 스테디셀러이자 하루키의 대표적인 작품인 이 소설은 나에게 그다지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 식사를 하던 중 이 책을 다 읽었다는 엄마의 말에 반사적으로 "그거 재밌어?"라는 질문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그거 지루해서 매번 중간에 하차했어,라고 덧붙이자 엄마는 "엄마도 네 나이 땐 재미없었어. 집에 있는지도 모르고 또 빌려온 거 보면 그땐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단 거겠지?"라고 했다. 나이를 좀 더 먹고 나니 이제야 그 책이 재밌더라던 엄마는 나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어릴 적 즐겨 읽었던 책들과 현재 좋아하는 책들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책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보는 것과 느끼는 것, 듣는 것과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시간에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앉은 채로 1970년과 2024년까지의 세월을 걸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 엄마와 다툴 때마다 반복했던, 난 절대 엄마를 닮지 않을 거라던 철없는 다짐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어느덧 엄마가 나를 잉태했던 나이보다 더 나이를 먹은 나는, 이제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마주한다.


내게도 <상실의 시대>를 다시 집어 드는 날이 올까.

엄마보다는 조금 더 빨리 재미있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극과 테스를 사랑했던 내 안에, 오만과 편견과 보바리 부인을 탐독하던 어린 날의 엄마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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