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향형 인간이다. 밖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어울리는 일을 꺼리지는 않지만 주로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좀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가끔은 타인과 대화하는 일이 하루에 다섯 번 이내일 정도로 극히 적은 날들이 있다. 아무런 스케줄도, 약속도 없는 오늘 같은 날이다.
내가 이렇게 침묵 속에 개인적인 시간을 원하는 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 부모님의 덕이 적지 않다. 나의 부모님은 스물여덟 먹은 딸내미를 여전히 당신들의 거주지에 머물도록 허락하여 집세 걱정 없는 안락한 삶을 제공 중이신데, 나는 이들과 생활 패턴이 달라 한 집에 살면서도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은 감사하게도 내게 크게 잔소리를 하거나 간섭을 하는 일이 없다. 때문에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자식들의 대표적인 스트레스 요인인 ‘그들과의 언쟁’조차도 그닥 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리 나 같은 유형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겐 꼭 하루에 배출해야만 하는 일정량의 문장이 할당되어 있는 걸까. 대학을 졸업한 후, 몇 년의 백수 기간을 거쳐 발화량이 급격히 줄어든 나는 그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기와 수필과 감상문을 썼고 때로는 글이라고 부르기 민망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글이 아니지도 않은 것들을 썼다. 쓰고 싶은 것을 썼고,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을 썼고, 쓰기 싫은 것도 썼다.
최근 들어 시작한 것치고 사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쓰는 것'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나의 쓰기에 대한 유의미한 기억은 중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내겐, 친구가 쓴 시를 보고 배 아파했던 기억이 있다. 그녀처럼 쓸 수 없음에 부러워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날의 감정. 그때의 나는 어떻게 해도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한동안 쓰는 것을 멈췄다. 글쓰기에 내가 그리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지 않다는 판단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그 판단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는 없었으므로, 대학을 가야 하고 시험을 쳐야 하고 마침 글쓰기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말들이 아주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다. 그랬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잘 쓴 글을 황홀해하는 동시에 질투에 사로잡혔고 그 마음을 애써 덮어두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다시 쓰기 시작한 시점은 막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딱히 드디어 써야겠다는 결심으로 생긴 일은 아니었다. 그저 나는 쓰고 있지 않아도 늘 쓰고 싶었고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새에 휴대폰 메모장엔 조각난 문장들이 쌓여 백 개 남짓 되었다. 그러나 어릴 적과 마찬가지로, 잘 쓰고 싶을수록 활자는 더 초라해졌다. 내게서 태어난 글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끄러워져 내가 아닌 타인에게 거의 읽히지 못했다. 읽히지 않는 글은 계속 쓰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연대가 있다 치면 현재 나의 글쓰기는 어느덧 세 번째 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바로 정황상 지금쯤이면 드디어 나라는 인간에게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빛나는 달란트(..)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무교라 그런가. 이제 와 기도를 드리면 지금이라도 주실지 모르겠으나 딱히 그럴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나는 여전히 내 모든 글이 초라하고 부끄럽다. 그런데도 나는 왜 계속 쓰고 싶을까. 보통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하지 않나.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쯤 되니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어 검색을 해보았는데, 대한민국 성인 평균 연간 독서량이다. 고작 4.5권. 21년 통계니 아마 지금은 더 낮을지도 모른다. 내가 웃기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책을 쓰는 사람은 점점 늘어난다. 남의 얘기를 듣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는데 말하고 싶은 사람만 많다. 그러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쓰는 것을 자주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남들처럼 무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나름의 소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굳이 나까지 써야 할까. 그러니까 생각할수록 내게는, 4.5권 중 내 글 한 쪽을 끼워달라고 설득할 재능이 없어서다.
그렇지만 구구절절 못 쓰겠단 투정을 부린 것치곤, 나는 이 얘기를 또 글로 쓴다. 매번 망설이는 마음에 부딪혀도 결국은 또 써버리고 말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떨어지면 화장도, 머리 손질도, 예쁜 옷도 필요 없을 거란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말을 떠올린다. 무인도에 가면 난 화장도 옷도 필요치 않겠지만 현재의 나는 정말로, 나 말고 아무도 읽지 않는대도 계속 쓰고 싶을 것 같아서.
그래도 언젠가 내 글이 기대보다 많은 이들에게 읽힌다면, 혹여 그중의 누군가가 '어쩜 주님께 이런 달란트를 받았을까..' 정도의 감탄을 해준다면. 말도 안 되게 달콤한 상상을 한다. 아무도 안 해준다면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진짜로 누군가가 달란트를 주실 때까지 계속 쓰는 수밖에. 쓰거나 쓰지 않거나. 그 외에 다른 방법을 딱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