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시간이 너무 빠르단 말을 달고 산다. 얘는 내 인생 위에 얹혀사는 무형인 주제에 나를 안 데리고 가고 그냥 지 혼자 저 멀리 성큼성큼 뛰어가 .. 따라가기가 아주 벅차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뒤에서 씹뜯맛즐 하면서 느긋하게 걷기로 했는데 그것도 참 쉽지 않네요? 가끔은 조급해서 미쳐버릴 것 같고 또 가끔은 뭐 어때 나는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 여행자야 싶고.
결국 이도 저도 아니고 걷다 뛰다 인터벌 러닝 하는 중.
내가 유독 시간의 흐름에 대해 예민하게 구는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그건 아마 내가 아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 듯하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한참이라 나는 늘 스스로가 부족해서 갈증이 나는데 그 상태로 시간은 자꾸만 가니까. 근데 그런 것치고 게으름은 최고 수준이다. 그러니까 시간은 또 빨라. 악순환의 반복,,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컵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매장에서 사용하는 컵입니다.'
얘는 자기가 카페에서 사용되는 컵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까. 뭐 이런 희한한 생각을 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결국 어딘가에 효용성이 있어야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이니까. 존재만으로도 충분해. 이런 말이 난 예전부터 별로 안 와닿았다. 우리는 어쨌거나 어디든 쓰이기 위해서 그렇게 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고 아등바등 살잖아요.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쓰이려고'. 그런 맥락에서 저 컵은 자기가 쓰이고 있는 일상이 만족스러울까.
내게 잘 살고 싶다는 말은 더 잘 쓰이고 싶다는 말이랑 비슷하다.
엄연히 물건 아니고 사람으로 태어난 주제에, 잘 '사용'되고 싶다는 생각 따위를 하는 건 좀 이상한가? 잘 모르겠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원래 나처럼 멘탈이 약한 애들은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그래. 나도 처음이야. 같은 류의 위로에 살살 녹는 경향이 있다.
그 드라마에 고양이와 신피질 얘기가 나온다. 신피질은 두뇌에서 시간 개념을 담당하는 부위인데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게 신피질이 없다고. 그래서 매일 똑같이 사료를 먹고 똑같은 일상을 보내도 지루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는단다. 스물, 서른, 마흔. 이렇게 시간을 분초로 나누어 자신을 가두는 건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다는데, 이게 신피질의 재앙이다.
하긴, 고양이는 신피질 같은 게 있을 필요가 없지. 걔의 효용은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니까. 그냥 존재하면 된다. 존재만으로 충분히 효용을 인정받는 삶이라니. 황홀하기 짝이 없네. 고양이가 부러워진다.
주방에 새로운 식재료가 눈에 띄면 엄마한테 늘 물어본다.
엄마 이건 어디에 좋아?
양배추 차의 효능, 블루베리의 효능, 강황 가루의 효능.. 그렇담 내 효능은 뭘까?
별난 고민을 하다가 시간이 또 말도 안 되게 빨리 흘러서 주말이 다 갔다.
시간의 흐름을 별로 느끼고 싶지 않을 땐 취하는 게 참 효과가 좋아서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 평생 우유랑 아메리카노랑 맥주를 마시다가 28년이 갔잖아. 그래서 그냥 안 마시고 참았다.
떡국 안 먹으면 1살 더 먹는 거 아니라고 우기는 마음으로.
이건 신피질의 재앙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