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웃으며 사과한 진짜 이유

by mean

요즘 내 외출의 목적은 커피다.

산책길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지나가다 서서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집에만 머물다 보니 불면증에 시달렸다. 억지로라도 햇빛을 쫴야 했다. 커피를 사 와야 한다는 명분을 만들어 귀찮아도 옷을 껴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모자까지 눌러쓰고 나서야 집을 나선다.


그동안 이디야의 넛츠크림라테, 마시그레이 아이스아메리카노, 어느 카페의 밀크티 등 여러 커피점을 다니며 다양하게 마셨다. 한 번은 구글 AI에게 동네에서 가까운 아메리카노 맛집을 물어 찾아갔더니 그 집 대신

다른 카페가 들어서있었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까지 간 김에 아인슈페너를 연하게 포장 주문했다.


결제하는 짧은 시간 낯선 감정과 부딪혔다.

다른 커피숍에서 결제할 때 체크카드는 긁어서 한 기억이 났다. 그래서 "이거 체크카드인데 긁어야 하지 않나요?"라고 묻자 사장처럼 보이는 분이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점원에게 결제를 미루었다. 그냥 꽂으면 된다 해서 카드를 꽂았는데 잠시 후 들려오는 알림음에 카드를 중간에 뽑아버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점원에게 감정을 쏟아낼 틈을 열어주었다


"어머, 죄송해요."라는 말과 함께.


은연중에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말해주길 기다리기도 했다.


기대와 달리 미간을 구긴 표정만이 돌아왔다. 다시 결제 한 뒤 상황이 마무리 됐지만 점원은 자신의 '기분 나쁨'을 음료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하면서 끝을 힘을 주어 길게 늘어뜨리며 말하는 것으로 티를 냈다. 애써 허공으로 눈을 돌려 그 감정을 거부했다. 벽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커피를 기다렸다.


커피에 빨대가 안 꽂혀있어 물어보려다가 더 말 섞기 싫어서 그만두었다. 빠르게 커피를 챙겨 나왔다. 집에 와서 보니 아인슈페너라테는 원래 빨대 안주는 메뉴였다.


그 일을 AI에게 물었더니 내가 실수한 민망함을 혼자 이겨내지 못하고 점원에게 전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나의 웃음이 상대에게는 '감정을 쏟아내도 좋다'는 허락으로 해석되었을 수 있으며, 결국 내가 나를 용서할 권리를 타인에게 양도해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곳엔 다시 가지 않기로 했다. 그 정도 일도 웃으며 넘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의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고 마주하고 싶지 않다.


실수한 스스로를 용서 못해 남이 괜찮다 해주길 바란 마음도 부모님의 영향이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내 감각의 둔함을 '둔하다'라고 나무라고 울음을 달래주기보다 '툭하면 운다'라고 비난했다.

아빠도 잘못을 지적한 적이 많다. 최근에는 잔치국수에 달걀지단 너비를 넓게 썰었다고 가늘게 써는 건 기본 아니냐 했다.

그날 지단이 너무 얇게 부쳐져서 넓게 썬 것뿐인데 그걸로 혼나니 억울했지만 다음엔 신경 써서 가늘게 썰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나의 거울 속에는 차가운 지적만 있었을 뿐, 실수해도 괜찮다는 따뜻한 이해는 비치지 않았다. 결핍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 나의 당혹감을 타인의 친절로 씻어내려 미소 지으며 내 감정의 짐을 상대에게 넘겼던 것이다.


이제 나에게 말해준다.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라고.

내 실수에 너그러워지고 실수했을 때의 감정도 스스로 책임질 것이다.


타인의 용서를 구걸하는 웃음기는 빼고, 당당하게 "아, 다시 할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