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꽃

by 김혜식



재래시장 안은 몹시 혼잡했다. 많은 인파와 어깨를 부딪치며 시장 안을 둘러보았다. 코로나19도 어느 정도 수그러진 듯해서인지 호떡집도 오랜만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호떡집 앞에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꽤나 길다. 그 옆엔 싱싱한 고등어자반이 시퍼런 등을 뽐내며 가지런히 손수레 위에 엎어져 있다.

이 때다. 목청껏 외치는 소리가 시장 안에서 쩌렁쩌렁 울려왔다. 귀 기울여보니, “1,000원에 두 켤레, 날마다 오지 않으니 오늘 싸고 질긴 질 좋은 양말 한보따리 사가세요.”라며 노점 상인이 호객 행위를 한다. 그 소리에 이끌려 걸음을 재촉했다. 필자뿐만 아니라 질 좋은 양말을 싼 가격에 판다는 소리에 금세 사람들이 트럭 주위로 벌떼처럼 몰렸다.

필자 역시 사람이 운집한 장소로 갔다. 그곳 장바닥엔 알록달록한 색깔이 염색된 양말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양말을 골라 바구니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하긴 아이들 과자 값 만도 못한 단돈 1,000원에 멀쩡한 새 양말을 두 켤레에 팔잖는가.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누구인들 구미가 안 당기랴. 어느 사이 서녘엔 노을빛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상인들은 벌써 파장을 서두른다. 하지만 양말장수의 목쉰 외침은 그칠 줄 몰랐다. 시장 한복판엔 해가 이우는 줄도 모른 채 양말을 고르는 많은 사람에 의해 북새통을 이룬다. 한 쪽에선 한 여인이 사람들이 고른 양말을 검정 비닐봉지에 담으며 계산을 하느라 분주하다. 이렇듯 한바탕 소란이 끝나자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였던 양말이 순식간에 다 팔렸다. 눈대중으로 어림잡아도 스무 켤레 정도만 남았을 뿐이다. 어느 사이 양말을 고르던 사람들이 밀물처럼 빠졌다. 이 때 휑한 시장 안엔 갑자기 불어온 꽃샘바람만이 바닥에 널브러진 비닐봉지를 이리저리 허공으로 날렸다.

비로소 제정신이 들어 양말을 몇 켤레 골랐다.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종전의 여인이 양말을 비닐봉지에 담는다. 표정이 무척 환하다. 그녀는 오늘 양말을 잘 팔아 필자에게 특별히 덤으로 준다며 한 켤레를 더 넣어준다. 이 말을 하며 기분이 좋은 듯 여인은 누런 이를 한껏 드러내며 함박 웃는다. 그 말에 ‘벼룩의 간을 빼먹지’ 싶어서 공짜로 받은 양말 값 500원을 다시 건네자 여인은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그 때 얼핏 보니 그녀 손등이 마치 거북이 등 같았고 왼손은 조막손인 게 눈에 띄었다. 손뿐만이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도 피부가 매끄럽지 못하다. 남편 역시 눈꺼풀이 눈썹과 거의 붙었다. 입술도 인중이 없다시피 하여 잇몸이 벌겋게 드러난다. 그들 모습을 보자 갑자기 측은지심이 일었다. 해서 10,000원 짜리 지폐 2장을 말없이 여인 손에 쥐어주자 여인은 화들짝 놀라며, “저희는 양말 값 외엔 더는 안 받습니다. 양말을 박리다매로 팔았으니 개의치 마십시오.”라며 거절한다.

그녀 말에 적은 금액으로 동정심을 전하려 한 듯하여 갑자기 얼굴이 화끈했다. 한편 양심 바른 상도덕(商道德)을 지닌 그들이 남달라 보였다. 겨우 양말 한 켤레 당 100원 이문만 남기고 있단다. 무엇보다 양말장수 부부가 돋보이는 것은 험악한 세상이어서인가 보다. 요즘 타인 밥그릇 넘보는 일이 부지기수 아닌가. 뿐만 아니라 물질에 눈이 멀어 혈육도 해하는 세태다. 얼마 전 아들이 보험금을 노려 아버지와 여동생을 고의로 자동차 사고를 내어 목숨을 잃게 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어디 이뿐이랴. 자신 빚 때문에 친모도 화학 약품을 먹여 살해한 딸도 있잖은가. 인면수심에 의한 사건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그래 양말장수 두 부부가 더 돋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양말을 헐값에 파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지난날 불의의 화재로 모든 것을 잃어 이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화재로 아들을 잃고 간신히 부부만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 젊은 날 아들을 등에 업고 거리에서 노점상을 했단다. 그 때 등에 업힌 아들 발이 겨울철마다 동상에 걸리기 예사였단다. 화재로 잃은 아들이 어려서 동상을 걸리게 한 게 마음에 맺혀 양말 파는 장돌뱅이가 됐다고 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여인 눈에 한이 스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녀 말을 듣노라니 왠지 가슴이 묵직했다. 시장을 떠나려 할 때다. 무심코 바라본 트럭 옆면에 붙은 현수막에 눈길이 멎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빛바랜 현수막엔, ‘마누라는 짜고, 남편은 팔구’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쓰여 있어서다. 이 문구에서 양말장수 내외가 지닌 양심을 쉽사리 읽을 수 있었다. 아내가 직접 짠 양말처럼 이문을 줄이고 싸게 판다는 뜻이 그 문구에 내재된 듯해서다.

따뜻한 보온성을 지닌 노란색 양말이다. 이것을 착용하노라니 그날 양말장수 여인 얼굴에 피었던 웃음꽃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자 갑자기 양말장수 여인 미소가 모나리자 미소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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