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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Oct 04. 2023

미치다, 봄 날에


                                               


 시끄러운 도시 소음에 익숙해진 귀다. 칼릴지브란 언술처럼 이런 귀로 어찌 들판이 부르는 노래를 듣겠는가. 그럼에도 자연이 들려주는 음音을 마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순간이 있었다. 

  며칠 전 봄볕이 따사로운 어느 날이었다. 한 폭 수채화처럼 봄빛이 무르익는 집 앞 호숫가 수변水邊 풍광이다. 이 정경을 대하노라니 왠지 처녀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호숫가 둘레 길 늪지대에 반쯤 밑둥치를 담근 채 한껏 온몸을 풀어헤치고 서 있는 버드나무다. 이것에도 눈길이 머물렀다. 그곳엔 나뭇가지마다 아기 젖니 같은 연둣빛 새순이 움트느라 녹색 털실이 한창 풀리는 중이었다. 어디 이뿐이랴. 창공을 날아오르는 새들이 나뭇가지마다 앉아 저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귄다. 새들이 지저귀는 청아한 새소리가 지닌 의미를 해독해 보려고 두 귀를 모았다. 경쾌한 새소리를 듣자 번잡한 도시 소음에 찌든 귀가 절로 한껏 헹궈지는 듯 했다. 이 때 어디선가 때 이른 개구리 울음소리도 들려온다. 모처럼 듣는 참으로 정겨운 자연의 소리다.

  그동안 봄이 찾아올 때마다 자연은 만물을 생동 시키느라 수선을 떨었을 법하다. 그런데 미처 그 현상을 감지 못하고 살아왔다. 지난날 코로나19 창궐 후 해마다 봄을 맞이하였건만 별반 봄답지 않아서다. 그 때도 올봄처럼 변함없이 아름다운 꽃들이 다퉈 피어나고 벚꽃이 그 자태를 뽐내었을 게다. 하지만 세상은 온통 코로나 19라는 회색빛 장막이 드리워져 그것에 갇혀서인지 음울하고 음습했다. 하다못해 그 당시엔 볼을 스치는 미풍도 애써 피해야 했다. 아름다운 새소리 및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꽃조차도 불어오는 훈풍도, 우울함의 당의정을 잔뜩 입힌 모습으로만 비쳤다. 역병 창궐 후 집 안에서 칩거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자 온몸을 웅크린 채 봄을 맞느라 여유롭게 봄의 정취에 취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 때는 오로지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그 날만이 희망찬 봄날이라는 생각만 간절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듯 희망찬 봄날을 맞이하며 그동안 멀쩡하다 생각해온 눈과 귀의 기능에 대해서도 의문이 인다. 헛된 욕심으로 점철된 탓인지 눈은 자연이 펼치는 봄의 향연도 외면 한 채 오로지 물질만 좇아온 듯해서다. 삶에 쫓겨 사계절 자연 현상 앞엔 무감각했다. 불의와 타협은 안했지만 추醜와 악惡을 가려내는 정의의 눈도 흐릿해졌다. 불의 앞에 불끈 주먹을 쥐기보다, ‘몸보신保身 하기 급급해 하지 않았나?’ 가슴에 손이 간다. 또한 요란한 문명의 소음에 젖은 귀 역시 자연이 내는 음엔 둔감했다. 무엇보다 달콤한 교언영색巧言令色엔 귀 기울였다. 이런 성찰에 이르자 왠지 얼굴이 화끈해진다.

 호숫가 둘레 길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이 생각에 잠길 즈음이다. 갑자기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 하며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탐탁히 여긴 적이 없다. 길조吉鳥가 아니라는 선입견에 의해서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평소 불길한 징조로 여겨온 까마귀 울음소리조차 정겹게 들려왔다. 이는 아마도 온천지를 물들이는 봄빛이 안겨준 넉넉함 덕분이다.

 요즘 코로나19에서 다소 벗어났다. 오랜만에 무서운 병마로부터 자유로움을 되찾자 몸과 마음이 홀가분하다. 지난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코로나 19 세균이 삶을 온통 옥죄어왔다. 끝내는 이것이 죽음의 나락까지 몰고 갈 줄 어찌 알았으랴. 이제 지난 시간 암울하고 두려웠던 불안의 긴 터널을 벗어나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이토록 눈부시고 화려한 봄날을 맞이하고 보니 심신이 깃털처럼 가볍다.

 이 봄 날엔 아무리 타인이 언짢은 언행을 행해와도 용서하는 마음이 부쩍 생길 것 같다. 날마다 짙어지는 봄빛만 바라봐도 왠지 뱃속이 든든하다. 또한 올 봄엔 화려한 옷을 차려입지 않아도 결코 남루하지 않겠다. 산하山下 곳곳에 피어나는 화사한 꽃물에 심신이 물들어서다. 

 뿐만 아니라 올 봄엔 무엇이든 아끼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곤 한다. 잠시잠깐이라도 동심으로 돌아가 그동안 찌든 가슴 속 속진俗塵을 죄다 털어내서다. 이렇듯 순연한 마음을 지녀서인지 하다못해 이웃집 반려 견 모습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솔직히 그 반려 견은 매우 험상궂고 사납게 생겨서 그 개만 보면 온몸을 도사리고 경계의 눈빛을 게을리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상하다. 일상에서 불편하고 힘들게 생각했던 일들이  이 봄 날엔 왜? 이토록 경이롭고 정감 있을까? 비록 하찮다고 생각해온 일들도 의미를 부여하면 다시금 선명하게 부각되기도 하나보다. 이 새로운 사실을 올해 봄날은 새삼 깨우치게 한다.   

 그만큼 올 봄은 의미심장하게 내 곁을 찾아왔다. 어디 이뿐인가. 봄 날이 지닌 진선미는 청맹靑盲인 나에게 혜안을 갖출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개안開眼토록 해주었다. 그래 우매함을 떨치려고 하루하루 봄날이 안겨주는 희열과 환희에 미치는 중이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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