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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Oct 04. 2023

장엄한 달


                                     

 지난 해 늦가을 일이다. 호숫가 둘레 길을 산책할 때다. 갑자기 후미진 곳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나쳐온 길을 되짚어 가보니 남녀 둘이 우산으로 감나무 가지를 후려친다. 이 때 수많은 감들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심지어 나뭇가지까지 부러졌다. 여자는 부러진 감나무 가지를 주워들고 남자는 땅에 떨어진 감을 비닐봉지에 부지런히 주워 담는다.
  그 옆엔 '공원에서 감이나 나무 열매 등을 따면 벌금을 부과 하겠다'라는 경고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런 문구 따윈 아랑곳 하지 않는 듯 두 남녀는 힘껏 감나무 가지를 우산대로 후려쳐 감을 따느라 여념 없다. 그 옆을 많은 이 들이 운동을 하느라 지나치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하긴 한국 사회에선 타인이 저지르는 그릇된 행위를 봐도 쓴 소리를 할 수 없다. 자칫 남의 일에 나섰다가는 오히려 낭패 당하기 십상 아닌가. 이런 탓인지 길거리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도 그 사람을 타넘어 갈지언정 어느 누구하나 관심조차 주지 않는 살벌한 세상이 되었다.
   어찌 보면 이기심이 가득한 세태이고 정의가 실종된 사회랄까. 이 때 어린 날 들어온 어머니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어디서든 옳지 않은 일을 보면 바른 말을 할 줄 알고 남이 안 봐도 보는 것처럼 행동하라" 이런 어머니 밥상머리 교육 때문인지 아님 오지랖이 넓은 탓인지 그릇된 일 앞에선 몸을 사릴 줄 모른다. 해서 그 두 사람을 향하여 감을 따면 안 된다고 만류 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멋쩍은  표정으로 부랴부랴 자리를 피했다.

 점심때면 근처 직장인들이 커피를 들고 이곳을 산책하곤 한다. 모르긴 몰라도 갑갑한 사무실에서 업무에 시달리다가도 잠깐이지만 이곳 호숫가를 거닐며 계절이 안겨주는 정감에 취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게 아니어도 주민들이 이곳을 찾으며 삭막한 도심지에서 벗어나 모처럼 자연의 정취를 만끽할 기회를 얻잖은가. 이를 염두에 둔다면 꽃 한 송이 풀 한포기도 모두 소중한 자연 문화재라면 지나칠까.
  호수 둘레길 후미진 곳에 숨어서 감을 따던 남녀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새삼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닌 숱한 가난의 역경 속에서도 엄격하고 반듯한 삶의 태도를 한 치도 흔들림 없던 분이다. 자식은 어머니의 혼을 가슴에 담고 산다고 했던가. 어머닌 평소 말수가 매우 적은 분이었다. 흔한 공부하라는 말씀 한마디 평소 자식들에게 하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 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무척 커보였다. 어린 날 친구들과 한창 고무줄놀이에 빠져 신나게 놀 양이면 저 멀리서, "영자야! 숙제 해야지 공부는 안하고 맨날 놀기만 하니?" 라는 격앙된 어조의 친구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었다.
  하지만 어머닌 달랐다. 친구들과 노는 일도 공부 중 한가지니 놀 때는 맘껏 놀고 단 시간을 정해 숙제 및 복습, 예습을 하라고 한 마디 할 뿐이었다. 그토록 놀이에 빠져있어도 관대함을 보이는 어머니였다. 그 때 나는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에게 당연히 그리 하는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훗날 결혼하여 세 딸을 키워보니 지난날 어머니가 남달랐음을 깨닫는다. 강요에 못 이겨 마지못해 아이가 책상 앞에 앉는다면 어머니 잔소리가 무슨 소용 있으랴. 이것보다는 아이가 맘껏 놀고 공부를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을 지혜로운 어머니는 일찍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도 가정형편이 넉넉한 친구들은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책으로 그 자릴 메워주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껏 아마도 한 수레의 책을 어머니가 사줘 읽었을 것이다.
  지난날의 이런 어머니의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탓인지 이즈막 헛발질하는 일은 가급적 경계한다. 편법 및 옳지 않은 일을 행하는 것은 스스로가 용납을 못한다. 어찌 보면 참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기도 하다.
   요즘은 원칙 및 의와 정을 지키며 정도를 걷는 사람이 손해 보는 세태이기도 하잖은가. 하지만 조경란 소설가가 자신의 어머니를 표현한 말처럼, 필자 역시 세 딸들에겐 장엄한 달을 닮은 어머니로 영원히 기억 되고 싶다. 어린 날 나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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