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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Oct 04. 2023

비빌이 춤

           


  ‘떡비’라고 일컫는 봄비다. 봄비는 내릴수록 만물을 생동케 한다. 하지만 요즘 봄 가뭄이 심각하다. 농촌에선 머잖아 논에 모내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물 부족으로 농부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는 다 아다시피 예로부터 우리와 같은 농경민족에겐 생존의 근원이었다. 또한 국운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 논바닥이 마치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가뭄 땐 기우제를 지내곤 했다. 이는 고대부터 생존을 위하여 행해온 국가적 행사였다. 뿐만 아니라 나라에 가뭄이 심하게 드는 것은 왕과 대신에게 덕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가뭄 역시 하늘이 내리는 벌로 여겨서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나라에 가뭄이 심하면 왕은 곡기를 끊어 근신을 꾀하기도 했다. 죄인을 재심리하여 무고한 백성들을 풀어주는 선정善政도 베풀었다. 나라에 가뭄이 심각할 때 종묘사직, 구월산 등지에서 무당이 기우제를 지낸 것은 고려 때 일이다. 조선 시대에는 종묘사직, 한강, 4대문 등지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이렇듯 가뭄 시 기우제가 성행 한 것은 비 다스리는 일을 국가 존립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 일 것이다.

 봄 가뭄이 심한 요즘이다. 온난화 현상으로 이상 기온이 찾아온 것은 이미 오래 전일이다. 이런 기후 이변을 일으킨 것은 천재지변이기 보다는 인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문명의 공해가 지구를 병들게 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니던가. 날만 새면 거리를 질주 하는 수많은 차량들, 공장들이 내뿜는 연기, 생활 폐수, 일회용품 사용 등으로 자연은 몸살을 앓아온 지 꽤 오래다. 이런 형국이니 자연인들 온전하겠는가. 

 요즘처럼 가뭄이 심해지자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나?’ 라는 생각이다. 이 때 문득 어느 문헌에서 읽은 재미있는 내용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기우제는 지방마다 별의별 습속이 다 있는 듯하다. 내가 사는 고장, 청주 및 춘천에서 행해온 기우제 역시 인상 깊다. 특히 아들을 못 낳는 여인네들만 골라서이다. 이런 여인들에게 곡식 까부는 키에 강물을 담아서 키 틈으로 새어나오는 물을 온 몸에 맞게 하며 맹렬하게 비빌이 춤을 추게 하였다. 옥천 지방에서는 할머니로부터 며느리까지 3대 과부가 사는 집에 부녀자들이 모여 세 과부에게 솥뚜껑을 씌워놓고 둘러서서 물을 끼얹는 것으로 비 내림을 빌기도 했다.

 어디 이뿐인가. 곡성, 옥구, 장성 지방에서는 마을 아녀자들이 총동원 되어 가까운 동산에 올라가 일제히 오줌을 눔으로써 비 내리기를 빌었다. 또한 경주에서는 수십 명의 무녀들을 모아놓고 버들가지로 만든 모자를 쓰고 음탕한 춤을 추게 했다. 이 춤을 출 때 무녀들 행동이 해괴망칙 했다. 자신들의 속옷을 들추기도 하고 저고리 깃을 풀어헤쳐 젖가슴을 들썩이면서 강렬하고 요염한 춤을 추어서다. 이처럼 키 틈으로 새는 물, 그리고 방뇨 등은 비 내리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주술의 한 방편이었다. 비빌이 춤이나 요염한 춤은 음성인 여인으로 하여금 음기를 발동 시켜 양성인 가뭄에 도전한다는 뜻으로 여겼단다. 이로보아 조상들은 하다못해 기우제도 음양론을 염두에 두었음을 엿볼 수 있다.

 기우제 땐 하늘을 감동 시키는 수단이라고 여겨 여인의 깊은 한을 이용하기도 했다. 당시엔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이나 3대 과부가 지닌 원한이 크다고 여겼나보다. 현대로선 시대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즘은 아들 세 명보다 딸 셋이 더 낫다는 인식이 있잖은가. 설령 과부나 홀아비가 되었다손 치더라도 얼마든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기에 크나큰 한을 품을 정도는 아니다.

  특히 기우제에 여자들이 많이 등장 하는 것은 여자와 땅은 같다고 여겨서 일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남자와 하늘, 정액과 비를 상징성으로 해석하기도 했단다. 이 문헌에 의하면 땅인 여자는 하늘인 남자가 정액, 즉 비를 뿌리게 하는 흡인력을 지녔다고 믿었단다. 

 날씨가 건조한 이 봄 날, 들녘의 농작물들은 목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비는 적당한 강수량으로 내리면 단비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가뭄을 해갈 시키는 비도 홍수로 돌변하면 귀한 인명과 재산을 빼앗아가기도 한다. 지금처럼 가뭄이 지속된다면 곡식 및 식물들이 생장을 위협 받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머잖아 식수까지 걱정할 지경이다.

  필자 혼자라도 비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비빌이 춤’이라도 추어야 할까 보다. 비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비빌이 춤을 한바탕 추고나면 그야말로 주술적 힘을 발휘 할지도 모를 일 아닌가. 아마도 이 글이 독자 분들 곁 찾아갈 즈음엔 필자의 비빌이 춤 효력이 발현돼 봄비가 분명코 흠뻑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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