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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Oct 04. 2023

눈물 힘으로 깊어지는 생


                             


 지닌 것 전부를 잃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졸지에 잃었을 때 그 참담함이란 겪어보지 않았어도 미뤄 짐작할만하다. 며칠 전 애써 일군 재산 및 삶의 터전, 귀한 인명을 화마에게 빼앗긴 강원도 강릉 이재민들이다. 이 소식을 뉴스를 통하여 들을 때마다 그들이 겪을 삶의 애환에 연민이 인다.

 이들은 당시 덮쳐온 산불로 인하여 평생 일군 재산과 집을 전부 잃은 채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릴게 불 보듯 뻔해서다. 급작스런 화재에 모든 것을 잃어서 그야말로 그들은 맨 손의 삶이 아니던가. 빈주먹이나 맨 손을 적빈赤貧의 삶에 비유하기도 한다. 돈이 수중에 없는 것은 가난을 의미한다. 돈은 모든 문을 여는 열쇠이고 생계 수단이기도 하잖은가. 그래 자본주의 체제에선 어느 경우엔 돈이 권력이자 생존의 근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난날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은 내 스승이자 은인”이라고 역설 했다. 또한 가난 밑에서 배운 수백만 동문이 있는 이상 쉴 수도 후퇴할 수도 없다면서 경제 개발을 밀어붙였다. 그의 국정 동력원은 어찌 보면 가난인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긋지긋한 가난에 절치부심切齒腐心 하다 보니 국민들 등 따시고 배부른 게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전부였을 것이다.

 ‘가난’에 대하여 논하노라니 세간에 회자되는 ‘금 수저’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은 무엇보다 부와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쥔 부모를 둔 자식들에 대한 지칭이기도 하다. 평소 삶 속에서 결핍을 모르고 자란 그야말로 금수저들이다. 부모 덕분에 부유한 집안 환경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받은 일이다. 이런 사람은 마치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 자랐다는 말로 세인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잖은가. 

  금수저의 장점은 어지간해선 그 호칭을 쉽사리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와 가난도 대물림 한다고 하잖은가. 그래서인지 우리 세대 부모님들은 당신 자신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식 위해 헌신했다. 당신 자신은 흰 쌀밥 한 술 제대로 목으로 못 넘길망정 자식만큼은 배불리 먹이려고 애썼다. 또한 많이 배우지 못한 한은 자식을 무지에서 벗어나게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게 했다. 이런 부모님의 높은 교육열과 희생으로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다. 이게 아니어도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는 게 사실이다.

 며칠 전 건강검진을 위하여 서울 모 병원을 찾을 때 만난 여인의 경우 만해도 그렇다. 새벽 일찍 서둘렀으나 병원 근처 역에 내렸을 땐  병원 진료 시간이 임박해 왔다. 마침 역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병원 셔틀 버스가 눈에 띄어 그것에 승차했다. 아침 이른 시각이지만 셔틀 버스 안은 병원을 찾는 이들로 만원이었다. 셔틀 버스는 곧 병원 앞에 당도했다. 버스 안에서 내릴 때다. 필자 앞에 줄을 서 있던 초로의 여인이 거동이 불편한 듯 몸조차 가누기 힘들어 한다. 이를 보다 못해 그녀를 부축해 버스에서 내리게 했다. 숨마저 가쁘게 몰아쉬는 여인은 구부정한 자세로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다. 

 그녀를 부축해 함께 병원 채혈실로 갔다. 그곳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여인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불편한 몸으로 혼자 병원을 찾은 이유를 말한다. 자신에겐 젊은 날 입양한 아들이 한 명 있다고 했다. 일찍 남편을 잃고 시장에서 식당 및 건물 청소원, 공사장 잡부 등 온갖 고생을 하며 입양한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단다. 

 어렵사리 외국 유학까지 마친 그녀 아들은 아예 외국에서 그곳 여자와 결혼해 산단다. 그리곤 벌써 십 수 년이 넘도록 자신과는 연락을 끊고 지낸다고 했다. 슬하에 혈육 한 명 없는 그녀는 현재 서울 쪽방에서 병든 몸을 홀로 추스르며 지낸단다. 그녀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신을 찾아온 병마보다 쪽방 살이라고 했다. 여름철 폭염 및 겨울 혹한이 자신의 지병보다 무섭단다. 평생을 적빈의 굴레에서 벗어나본 적 없다는 그녀는 이 말을 마치며 두 볼에 굵은 눈물방울을 흘렸다. 그리곤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보다 돈이 없어 흘리는 피눈물이라며 한숨을 크게 내쉰다.

 그녀의 눈물은 그동안 이기심으로 가득 찼던 메마른 필자 가슴을 흥건히 적시우고, 쇠붙이 같은 세상을 녹이는 힘마저 지녔다. 그 눈물은 얼음장처럼 냉랭했던 필자 가슴에 온기를 돌게 하여 동정심을 자극해서다. 그러고 보니 이 여인 뿐만이 아닐 것이다. 오늘도 서민들은 삶이 안겨주는 고통을 느낄 때마다 흘리는 짜디짠 눈물 힘으로 일상을 버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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