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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Oct 09. 2023

소금

 중학생 때 귄터 그라스 작 ‘양철북’을 감명 깊게 읽었다. 주인공 오스카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 있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아슴아슴한 기억은 아마도 어머니 자궁 안에 고인 양수 속에 떠 있을 때 일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바다에서 수영하는 느낌처럼 평화롭고 안온한 느낌을 의미 한다. 그래서인가. 오스카는 부드럽고 따뜻한 그 기억 속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희구했다.

젊은 날 인간 태생胎生 시원始原이라 할 그 따뜻하고 넉넉한 바다가 내 안에서도 늘 출렁거렸다. 에로스와 평화가 공존하여 달마다 몸속에서 생성된 씨 톨이 유영하는 신비한 힘을 지닌 바다였다. 그 바다는 한 달에 한번 나를 마술에 걸리게 하는 마법도 지녔었다. 이것이 온몸을 지배할 때마다 들숨 날숨을 제대로 간수 하곤 했다. 고요히 수면 위 물결을 잠재운 채 가슴 속에서 만 파도를 일렁이게 이끌었다.     


 하지만 생명력은 그리 길지 못하였다. 50대 초반 달 걸이가 끝날 즈음에 이르러 그 바다는 서서히 메마르기 시작했다. 내 안의 푸른 바닷물이 메마르자 짭조롬한 소금기는 멀쩡하던 육신 이곳저곳에 탈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얼굴이 후꾼 달아오르고, 사소한 일에도 오감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몰아붙였다.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생에 대한 허탈감 및 우울함을 안겨주기 예사였다. 갱년기 후유증은 소심 줄보다 더 질겼다. 어디 이뿐이랴. 수 년 전 담낭에 생긴 종양 및 간 일부 절제 수술은 그토록 자신만만하고 패기 넘치던 삶을 내 안에서 충일 했던 바다 속 깊이 침잠케 하였다. 이로 인해 허약해진 심신은 모든 일로부터 열정과 희망마저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인생은 어짜피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란 심오한 진리를 이 때 비로소 터득했다. 젊음이 충만할 땐 심리적으로도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청춘이라 믿었던 내안에 바닷물이 메마르다 못하여 한껏 졸아서 나중엔 이것이 짜디짠 소금이라는 결정체를 마지막으로 남겼을 때 절망감이란…. 그 소금은 심신을 절이다 못하여 물기란 물기는 모조리 결정체에 흡인케 하는 수순手順을 잊지 않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루하루가 생성生成보다는 소멸消滅, 혹은 상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게 숙명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영원불멸은 없기 때문이다.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고 믿어온 철석鐵石도 흐르는 세월에 깎이고 녹이 슨다. 그토록 달콤하게 영원을 약속했던 사랑도 그 시효가 짧으면 3개월, 길면 3년이라 했던가. 태어나서 수십 년을 부려온 심신인들 어찌 온전할 수 있으랴. 어디 멀쩡하지 못한 게 이 뿐이랴. 이성과 지성, 교양의 저장고라 할 뇌 전두엽도 지난날 눈을 통하여 수없이 들어온 온갖 흑과 백 정보들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키기 예사 아닌가. 이로 인해 가슴 또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뒤척였던가.     


 이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불로장생을 꿈꾸는, 자신만큼은 노화로부터 유리遊離 될 것이라는 이 배리背理는 인간만이 지닌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젊은 날부터 늘 바다를 동경 했고 그리워했다. 바다 앞에 서면 끝없이 펼쳐진 그 무한한 자연의 품새에 매료돼서다. 수많은 생명체를 품은 바다는 경이롭기 조차 하다. 어머니 품속처럼 생명들을 아우르면서도 결코 바다는 교만하지 않다. 오로지 해조음을 통하여 수많은 자연의 언어를 우리들에게 무수히 들려줄 뿐이다.     


 다만 우매한 우리가 그 음을 온갖 소음에 길들여져 미처 듣지 못할 뿐이다. 요즘 내안에 바다는 청춘 시절 밀물과 썰물로 다가올 때만큼 생동감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이 최후로 남긴 투명한 알맹이는 오롯이 현재도 가슴 깊이 남아 영롱한 빛을 발하는 중이다. 이제는 이것이 안겨주는 맛에도 익숙해졌고 심지어는 이것을 삶의 표상으로 삼고자 한다.     


 아무리 인간이 슬픔에 겨워 흘리는 눈물이 이것처럼 짜다한들, 어찌 소금이 지닌 순수한 순도純度만 하랴. 썩고 무르는 것도 방지하고, 이것이 부족하면 우린 죽음까지 이르잖은가. 그래 이제부터 이 소금처럼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 어떤 위협 및 압력에도 굴하지 않으며, 소금 같은 펜 끝으로 세상사를 통찰하련다. 뿐만 아니라 속진俗塵으로 훼손된 정의를 증언, 혹은 복원하고자 노력하련다. 창작한 글 한 자 한 자가 독자들에게 유익한 활자로 다가가는 일에도 힘쓸 것이다. 청정한 바다가 선물해준 소금 같은 문인으로서, 시대를 관통하는 다양한 사유와 관조로 창작한 편 편의 글이 독자 곁에 영원히 남기를 바람 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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