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할 게 없으니 쓰게 된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글을

by 정번영

2025년 들어서는 일기를 한 자도 쓰지 않았다. 지면에 일기를 쓸 때는 되든 안 되든 아무 말이나 쏟아놓는다. 아무 말이나 적다 보니 문장엔 의미가 희미하고, 다시 들춰봐도 거의 늘 같은 이야기뿐이다. 사실 다시 들춰보지도 않는다. 일기도, 상념도, 시나리오도 한 자도 쓰지 않는 날이 많다.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며 살고 싶은데 글 쓰는 게 무서워졌다. 재미있는 이야기, 의미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강박이 조금도 출발하지 못하게 나를 끌어내린다. 오랫동안 다닌 학교를 마치기 위해 졸업영화를 찍고,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2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지 5년이 됐다. 5년 중 2년 동안은 졸업영화를 준비하고, 코로나 규제가 풀리길 기다리고, 촬영하고, 후반 작업을 하며 보냈다. 고작 30분짜리를 만드는데 2년이 통째로 걸렸다. 얼마나 좋은 영화를 만들었는가 하는 질문은 보류하고 어쨌든 창작의 시기였던 2년을 빼고라도 지난 3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동문의 작업자들 중에는 1년에 장편을 한 번씩 뚝딱 만드는 사람도 있고, 미디어 관련 회사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친구도 있고, 몇 달 동안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쓰는 진또배기도 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냐 하면 글(시나리오)을 쓴다 하면서 실은 아무것도 안 하는 류의 한량이다. 생활비는 학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충당했다. 베드타운에 있는 학원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고, 영화과 입시학원에서도 강의를 했다. 학원은 짧은 시간 일하며 내 시간 갖기 좋은 알바자리를 제공한다. 문창과 비스무리한 학과를 졸업한 소설 주인공들이 왜 종종 학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지, 아마도 작가 자신이 변변한 수입이 없을 때 학원에서 일했던 건 아닐지 학원으로 출근하며 이따금씩 생각해 본다. 학원 알바가 많을 때는 일주일에 네 번 출근하며 하루 6시간 이상 일을 하고, 학원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수업 배정을 못하면 올 6월처럼 아무 수업이 없기도 하다. 아무 수업이 없으면 수입이 없다. 다음 수업료를 받을 때까지 카드 리볼빙이 계속된다. 이룬 것 없이, 한 것 없는 자가 생활고에 시달리며 아무것도 할 게 없으면. 쓰던 시나리오가 막혀 조금도 진척이 없으면. 결국 일기라도 쓰게 되는 모양이다.


지면에 매일 일기를 쓰면, 무료한 일상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오늘은 몇 시에 일어났고, 그 시각이 늦을수록 더 길어지는 후회 담긴 문장들이 그 뒤를 잇고, 가끔 누굴 만나 밥이라도 먹으면 그 대화가 어땠고 하는 내용들이 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마지막 문단은 주로 내일은 꼭 작업에 집중하겠다는 다짐으로 끝난다. 에세이 위주의 책을 펴내는 인스타그램에 떠오르는 젊은 작가들이나 기록에 대한 유튜브를 운영하는 유튜버들은 일기 쓰기가 어떻게 그들의 일상을 정돈시키고, 커리어를 이끌었고, 삶을 구원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일기 쓰기에는 별로 해당하지 않는 듯한 기록의 의미.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가지고 처음과 끝맺음이 있는 글을 안 쓴지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몇 해 전, 독립출판을 하는 친구의 요청으로 짧은 글을 썼는데 출판된 책으로 읽으니 상당히 별로였던 기억.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이 오히려 나에 대한 오해를 자아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데 기록으로 남는 글쓰기는 오죽할까. 내 인생을 점점이 남기고 싶으면서도 그 남아있는 점들이 무수한 거짓과 왜곡, 오해의 흔적으로 읽히는 게 싫다. 문장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한 훌륭한 소설들을 읽노라면, 이야기와 아름다운 문장을 읽는 기쁨은 잠시, 나는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울적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 위대한 작가 혹은 창작자,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어떤 종류의 창작을 하든, 어떤 예술을 하든 중요한 것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다. 시덥잖은 유희거리가 아니라 역사에 남는 작품을 탄생시킬 거라고. cut to 20년 후. 이 사람은 시덥잖은 어떤 꺼리도 쓰지 못하는 백수한량이 되어있다. 짤린 건지, 진짜 사정이 있는 건지 수업 배정을 못 받은 6월.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어서 오랫동안 잤다. 눈을 떠도 날 일어나게 하는 이유가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시나리오는 막혔다. 막힌 시나리오 때문에 벌떡 일어나기에 나는 의지가 매우 박약한 사람이다. 나처럼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 과연 매일 10시간 동안 작업을 하는 저 무시무시한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까? 어쨌든 개는 산책시켜야 해서 저녁이 다 될 무렵에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 치킨나이트 행사가 시작하는 9시에 KFC 치킨을 사서 공원에서 처먹었다. 개한테 익힌 닭뼈를 주면 안 되지만 쿠팡에서 파는 가성비 사료를 먹는 나의 개를 위해 닭의 관절뼈를 준다. 불쌍한 나의 개.


산책 겸 일단 집을 나섰으니 집에서 조금 떨어진 아파트 상가 단지에 있는 무인카페로 왔다. 주차장에서 작은 바퀴벌레 서너 마리를 봤다. 끔찍하다. 나는 무인카페를 싫어한다. 멋도 없고… 멋도 없다. 내가 그리는 작업 환경은 밝고 정갈한 카페. 신선한 원두로 내린 맛좋은 커피를 파는. 잘 차려입고 같이 온 동행과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거나 각자의 일에 몰두해 있는 손님들을 구경하는 재미. 헤밍웨이가 동시대에 살고 있다면 매일 찾아와 한 구석에서 소설을 쓸법한. 하지만 이 늦은 시간에(지금은 11시 50분이다.) 거리를 배회하다 찾을 수 있는 문 연 카페는 무인카페뿐이다. 가사 없는 보사노바 피아노 재즈가 무료하게 흘러나올 뿐 아니라 반복되고, 테이블은 덜거덕거리고, 손님이라곤 시험을 앞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정도. 커피도 맹맹하다. 같은 모양의 굿즈를 한 선반에 세 개씩 모아놓는 게임을 두 세 판 하다가 뭐라도 쓰지 않고는 내 스스로가 끔찍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쓰고 있자니 오 이렇게 한심한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또 다른 오해를 생산하고 싶지 않아서 첨언하자면 난 매우 긍정적이다 못해 낙천적이고,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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