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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샘 Jun 07. 2020

고사리 볶음

코로나가 낳은 불효자

 진정세를 보이던 코로나 확진자 수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만나러 집집마다 방문하는 나로서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깨어보니 새벽 3시다. 속이 시끄러운 탓에 다시 잠이 들 것 같지는 않아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동생은 실버타운에서 일을 한다. 안 그래도 미국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무섭게 솟구치는 가운데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니 동생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실제로도 동생이 일하는 직장에서도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오고 있었다.


 "검사 결과는 나왔어?"

동생도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언니는 왜 안 자고?"

 "잠이 잘 안 오네."

 둘 사이에는 잠시 말이 없었다. 멀리 떨어진 혈육의 안전과 직업상의 어려움을 서로 염려하는 마음이 침묵을 대신했다.

 "요즘 자꾸 치매 환자가 늘어서 걱정이야."

동생이 일하는 실버타운은  시설이 좋은 곳이라고 했다.

 "산책도 잘하시고 단짝도 있으셨던 분들도 봉쇄가 강해지니까 증세를 보이시더라고."

 처음에는 건물의 일부 시설만 봉쇄를 하고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선에서 대면을 허용했다고 한다. 복도에서 일정 거리만큼 떨어져 있으면 대화가 가능했고 그때까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단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코로나는 심해졌고 산책할 수 있는 정원이 폐쇄되고 담소를 나누던 스낵바가 운영되지 않고 급기야 식사도 각자 원하는 음식에 체크하면 방으로 배달해주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움직임이 제한되는 상황이 치매의 촉매제가 된 것은 아닌지, 동생은 마음 아파했다. 혼자서 식사조차 힘들어지면 특별관리센터로 옮기게 된다며 동생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정말 멋진 할머니셨는데 갑자기 큰 여행가방을 꺼내서 짐을 싸시더라고. 사용하던 베개까지 둘둘 말아서 가방 위에 끈으로 고정하더니 나가겠다는 거야. 딸이 아래서 기다린다고. 딸은  약속 시간에 늦는 거 싫어하니까 빨리 가야 한다고 막무가내더라고. 그래서 얼른 음식을 준비해와서 식사하고 가시라고 했어. 가다가 배고프다고 하면 딸이 싫어할 거라고 했더니 그제야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데, 먹는 동안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려. 딸이 많이 보고 싶었던 걸까?"

 엄마, 아빠를 못 본 지 오래된 것은 동생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은 올해 5월에 한국에 들어 올 비행기 티켓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4월까지 사태를 지켜보다가 결국은 티켓을 취소해야 했다. 동생이야 미국에 산다지만 한 시간 거리의 부모님 댁을 네 달째 안 가보고 있는 내 마음은 이제 죄책감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부모님도 나도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가급적 살고 있는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싶었다. 코로나는 자식으로 사람 구실까지 못 하게 하고 있었다.


 동생과 통화를 끝내고 냉동실에서 말린 고사리를 한 움큼 꺼냈다. 몇 번 헹구고 물에 담가 두었다. 그리고 오후에 수업 나갈 교재를 챙겼다. 교재 한 권마다 한 아이의 얼굴씩 떠올랐다. 세상에서 둘도 없이 귀한 아이들을 만나러 가겠다고 지금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 맞는지 속에서 수많은 물음표들이 술렁거린다. 교재를 다 챙기고 냄비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올린다. 물이 팔팔 끓으면 고사리를 넣고 삶는다.

 건져낸 고사리를 찬물에 헹구어 낸 후 꼭 짜서 프라이팬 위에 올려둔다. 말린 표고버섯도 물어 씻어서 넣고 설탕 조금과 국 간장을 넣어 조물조물 주물러 놓는다. 양파도 잘게  다져서 넣어두면 고사리는 국간장에서 간을 받고 표고버섯이 몸집을 부풀릴 시간만큼 기다려주면 된다.

 고사리나물을 상에 올리기까지는 <틈틈이> 기다려야 한다. 말린 나물을 불리는 시간, 삶는 시간, 간이 배는 시간. 시간과 시간 사이를 잇기 위해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교재를 정리하고 쌀을 씻고 호박을 썰어 국을 끓인다.


 가스레인지 불을 중간으로 조절하고 그릇에  들깨가루를 덜어서 물 한 컵을 부어둔다. 프라이팬에서 자글자글 소리가 나면 고사리를 볶아서 한 가닥 맛을 본다. 간이 센 듯하면 들깨가루를 물과 섞어서 그대로 붓고, 싱거우면 굵은소금 몇 톨 넣어 들깨가루와 섞는다. 걸쭉한 들깨가루 물이 보글보글 거리면 크림 파스타처럼 돌돌 말아 접시에 덜어낸다.


 아빠는 들깨가루를 넣어 국물이 생기게 만드는 반찬을 좋아하셨다. 고사리 한 가닥씩 낚시질하는 나와 다르게 아빠는 숟가락으로 푹 떠서 입 안 가득 넣고 흡족해하셨다. 표고버섯의 쫄깃함과 고사리의 찔깃함이 들깻가루에 버무려져 고소하고 풍성했다. 오늘 아침 아빠의 식탁에 고사리 볶음 한 접시를 올려드릴 수 있다면,


 아빠는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 푹 떠서 드시고는

"싱겁다."라고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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