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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샘 Jun 28. 2020

어쩔 수 없는 멍이지만

행복한 엄마와 딸, 이면 좋겠다.

  딸기를 들고 있는 내 손을 보며 약사가 말했다.

 "아토피가 있으면 유기농으로 먹여야 좋은데. 유기농 딸기 얼마 안 비싸요."

 죄책감이 들었다.


 큰 딸은 생후 한 달만에 아토피 증상을 보였다. 간지러워서 편하게 잠을 자지 못 했다. 아이를 긁어주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깨어보면 어린 딸은 방송이 다 끝나고 화면조정 이미지가 나오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아이를 긁어주다 화가 나서 남편을 깨울 때도 있었다. 내일 회사에 가야 할 사람이라고 머리는 알고 있지만 비명을 지를 곳이 필요했다. 하루 종일 애를 보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는 말과 나도 자야 회사를 가지 않겠냐는 대답이 새벽에 오고 갔다. 그때도 내 아이는 긁고 있었다.

 긁은 자리에는 상처가 생긴다. 진물이 흐르고 딱지가 생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아이 얼굴이 왜 이러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새벽까지 아이를 긁어주다 잠이 들었고 깨어보면 아침은 훌쩍 지나가 있었다. 급하게 밥을 먹이고 병원을 찾아다녔다. 어딘가에 꼭 우리 딸을 깨끗하게 치료해주실 의사 선생님이 계실 것 같았다.

 그날도 소문난 피부과에 갔다 온 날이었다. 기대와는 다르게 익숙한 연고 이름이 적힌 처방전을 받아서 병원을 나왔다. 약국에 가는 길에 과일가게를 지나면서 딸은 딸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사서 들고 있던 딸기가 너무 부끄러웠다.


 며칠 후,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요란했는지 남편이 같이 깼다.

 "아이가 긁어."

 남편은 아이를 살펴봐주고 "안 긁어. 어서 자."라고 했다. 다시 잤던 것 같은데 또 벌떡 일어났다.

 "아이가 긁잖아."

 남편은 다시 아이와 나를 살펴봤다.

 "좀 더 자. 응?"

 이상했다. 자려고 누우면 자꾸 아이가 생살을 벅벅 긁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바로 일자리를 알아봤다. 아이를 강하게 키우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라고 말한 사람 있었다. 나는 아이를 팽개치지 않았다. 다만 건강한 엄마가 될 수 있는 거리가 필요했다.

 열심히 일을 한 후, 보고 싶은 마음을 한 아름 안고 퇴근을 했다. 쉬는 날이면 보고 싶었던 마음이 만들어 준 에너지를 가지고 동물원, 미술관, 도서관, 각종 어린이 행사장으로 놀러 다녔다.

 고개를 자주 숙이던 아이는 자주 웃는 아이가 되었다. 경험이 많아지자 하고 싶은 말도 많은 아이가 되었다. 단시간에 아토피를 정복하려던 마음에도 스멀스멀 여유가 끼어들었다. 그래, 아토피는 꾸준히 관리해가는 거지. 여유는 방향을 바꾸게 했고 시선을 돌리자 행복한 아이가 보였다.


 입덧 때문에 임신 기간 내내 먹지 못해서 그럴까? 더 좋은 병원이 있는데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식단 조절은 잘해주고 있는 걸까? 나는 매일매일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 엄마 옆에서 긁고 싶지 않아도 긁을 수밖에 없는 아이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가 아프면 부모도 멍이 든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내 자식이 아픈데 어떻게 멀쩡하겠는가.  그래도 둘 다 행복하면 좋겠다. '긁지 마!'가 대화의 전부여서야 되겠는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서로에게 자주 물어보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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