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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샘 Jul 12. 2020

부산에서 무지개를 찾다.

코로나, 빨래를 삶게 하다.

 부산에 가고 싶다.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마스크를 벗고 수업할 수 있는 것만도 행복하겠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고 싶다. 이바구 길을 찾아가 모노레일을 타야지. 무지개가 출렁이던 모노레일. 모노레일을 타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산장 아파트를 만날 수 있다.  정확하게는 산장 아파트 옥상을 만날 수 있다.


 산장 아파트는 머리에 주차장을 이고 있다. 차도를 따라 난간으로 둘러싸인 그곳에 차 한 대가 통과할 수 있는 입구가 있다. 난간 너머에는 <산장아파트>라고, 어릴 적 동네 슈퍼마켓 간판과 흡사한 필체가 보인다. 초록색 방수 페이트 위로 하얀색 주차 라인이 선명하다. 도로 옆, 이 주차장이 산장 아파트의 옥상이다. 그 밑으로 살구빛 페이트가 시멘트 주름을 감추고, 벼랑과 벼랑 사이 같은 곳에서 허리 굽은 이가 열쇠로 문을 잠그며 나오는 아파트가 있다.


 산장 아파트가 생각난 것은 많이 울었던 날이었다.

 우리 동네 첫 확진자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나왔다. 소문은 빨랐고 아파트 안내방송으로 확진자 소식을 들은 후 오 분 후부터 당분간 수업을 쉬고 싶다는 학부모님들의 연락을 받기 시작했다. 다들 서로를 걱정하고 이 시기가 무사히 지나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도 함께 전하셨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중요한 과제였고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수업을 쉬고 싶어 하는 마음도 당연했다. 내가 수업을 가는 집 중에는 아프신 노모가 계신 곳도 있었고, 이제 막 돌을 지난 동생이 있는 곳도 있었다.

 머리로는 다 이해하는데 수업 취소 문자를 받을 때마다 시간표에 표시를 하던 것이 2/3를 넘어가자  마음이 무너졌다. 왜 하필 내가 사는 아파트였을까. 나는 확진자가 아닌데 왜 수업은 갈 수 없을까. 누구를 원망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했는데, 막막했던 모양이다.

 

 토요일에 확진자 소식을 듣고 일요일까지 학부모님들 연락을 받고 나니, 월요일이 되었는데  수업을 갈 곳이 없었다. 맥이 풀렸다. 오전 내내 핸드폰을 들고 코로나 소식만 찾았다. 세상은 코로나로 시끄러웠고 내 속도 그랬다.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갔다. 처음 나온 확진자의 가족이 확진을 받았고, 개학은 계속 연기되었다. 수업이 정상화되지 못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에 있는데 쉬어지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무엇을 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날도 코로나 확진자 수를 검색하다가 작년에 찍은 산장 아파트 사진이 보였다.


 도로 밑으로 절벽처럼 이어지던 아파트, 그 아파트가 도로 쪽으로 만든 문이 옥상 주차장이었다. 나는 넘어져 있는데, 무릎이 깨져서 울고 있는데, 산장 아파트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토닥여주는 듯했다.

 <그럴 수도 있지.>-힘들 때가 있지.  넘어질 수도 있지. 얼른 못 일어날 수도 있지.

<그런데>라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다.-꼭 주차장은 1층이나 지하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니? 집 앞이 어렵다면 머리 위에라도 만들면 되지. 찾아보 길은 어떻게든 만들어진단다.


 어디쯤에 출구가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다만 오랜만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빨래 바구니에서 수건을 추려서 욕실로 가지고 들어갔다.

 바지와 소매를 걷어올리고 빨래 비누를 꺼냈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빨래 비누는 비쩍 말라서 갈라져 있었다. 바빠서 액상 비누를 넣고 세탁기만 돌렸었다. 한 번은 삶아야겠다고 생각한 지 몇 계절이 지나도 여전히 세탁기만 돌렸었다. 마른 비누를 따뜻한 물에 불려 가며 수건을 빨아 통에 넣었다. 약한 불에서 오래오래 삶았다. 삶아서 세탁한 수건은 뽀얗고 맑았다. 미루고 미루던 일이었다. 속이 후련했다.

 빨래를 하겠다고 움직이니 몸이 한결 가벼웠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몰라 미루던 일이 있었다. 학부모님들께 전화를 걸었다. 미루고 있는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를 해야 했다. 전화나 화상으로 수업을 해보면 어떨지, 혹 수업이 어려우시면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전화기 너머로 반겨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몸 어딘가로 바람이 들어왔다. 바늘만 한 구멍에서 한숨을 길게 내보내고 살랑거리는 바람도 슬쩍 들어와 줬다.

아, 좀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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